금주의 말씀
지금은 기도할 때(2) 막 14:37-40
오늘 본문은 지금까지 예수님이 했던 기도의 패턴과는 아주 다른 기도의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도 겟세마네 동산에 와서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얼마나 기도하느냐면 땀이 핏방울이 되어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목숨을 건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기도를 하실 분이 아니지 않은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하나님에게 “하나님! 이거 안됩니까?” 한 번 요청하고 하나님이 “안돼”라고 말을 하면 “잘 알겠습니다”라고 순종하면 쿨하고 멋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번 기도는 그게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기도는 혼자 기도하러 가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고 외로우면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겠는가? 한 번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대화하고 내려와서 “야, 이제 됐다. 내려가자”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요? 그런데 내려와서 제자들에게 제자들아 “내가 너무 많이 힘들다. 너희는 여기 머물면서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지 않겠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서 목숨을 건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이 잔을 그냥 지나가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 이것만은 피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이 기도가 응답되었나요?
놀랍게도 응답이 안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고 분노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목숨을 건 기도가 “왜 아직까지 응답되지 않습니까?”라고 소리치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을 두고 개입하시며, 또 인간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해서 참고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시면서 끝까지 입 밖으로 내지 않으셨던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감옥에 갇힌 요한을 기적을 통해서 구출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유다가 자신을 팔려고 하였을 때에 그의 마음을 바꾸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던 날 밤에 천사들을 동원하여 로마군대를 무찌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침묵 때문에 다행히 인류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전쟁을 치루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하는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의 솔직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 솔직한 기도와 하나님의 뜻이 충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잔을 옮기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은 네가 이 잔을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본심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하였습니다. 이게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가 무엇인가?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과의 치열한 싸움이다.”
우리는 기도를 보통은 대화라고 대답을 합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도는 대화입니다. 그런데 늘 대화하는가요? 늘 부부간에 대화하는가요? 어느 지역의 사람들은 세 마디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는?, 밥도!, 자자!” 그런데도 무리 없이 부부가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일상적인 대화를 많이 한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부부가 아기자기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문제가 있는 부부라고 단정을 해서도 안 됩니다.
어떤 분은 매일 하루에 8시간씩 기도하는 분이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그리고 많은 기도제목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렇게 하루에 8시간씩 기도하는 분들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과 그렇게 아직도 의사소통이 안 되었는가? 연애할 때에는 처음에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호구조사도 하고, 취미도 묻고 그러다가 어느 정도가 되면 “아는? 밥묵자, 자자” 해도 다 의사소통이 됩니다. 어느 정도 하나님과 신뢰관계가 되면 기도가 쉬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 하면 우리는 어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어하면 우리는 아하면 됩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대화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 마디만 하고 사는 사람도 갑자기 대화가 많아질 때가 있습니다. 언제인가요? 싸울 때입니다. 부부싸움을 할 때에 세 마디만 하는 부부는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로간의 갈등이 생기면 그때에는 대화로 풀어야 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지금까지 별 무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이해하고, 나도 이해하고 지금까지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에게 따지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늘 도와주시고 지켜주셨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개입하셨습니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개입하신 것이 아니라 안 좋은 쪽으로 개입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기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과 내가 논쟁하는 것이 기도의 의미입니다.
모세가 40년의 들판에서의 삶을 마칠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야 너가 출애굽을 할 지도자라고 이야기했을 때에 모세는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하나님과 진지한 대화가 시작되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새벽에 나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무슨 이야기인가요? 하나님과 거룩한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나는 빨리 가고 싶은데 하나님은 나를 멈추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씨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아들이 좋은 대학을 보내고 싶은 데 하나님은 꿈쩍도 안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흔들어 깨우고 싶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내 사업장을 확장시키고 싶은데 하나님은 나에게 기회를 안주십니다. 그래서 나는 또 하나님과 씨름을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이기든 하나님이 이기시 든입니다. 누가 이기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는 먼 훗날 깨닫게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방식을 이기려고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권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인하여 방랑생활을 시작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의로 애굽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40년 들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또 모세는 자신의 혈기로 반석을 많이 내리쳐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다고 했을 때에 막는 순간에 “사탄아 물러가라”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내가 이기는 것은 결코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기도의 승리는 내가 지는 것입니다. 내가 고집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다 응답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도도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분노나, 욕설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어느 호스피스 병원에서 정서적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어젯밤에 병실에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욕한 것에 대한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립얀시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어요, 형제님은 하나님께 무관심하지 않았어요, 도리어 하나님에게 정직하게 말씀드렸던 것이어요 어젯밤에 그렇게 부르짖었던 것을 기독교에서는 바로 기도라고 하는 것이어요. 형제는 어젯밤에 하나님에게 밤새 기도한 것입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런데 월리엄 템플 대주교의 말처럼 “기도하면 우연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하였습니다.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는 게 그저 우발적인 일이라면 꾸준히 영적인 훈련을 거듭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선생이 “그것은 우발적인 일이 계속 일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대답을 하였다. 우연의 일치란 하나님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지금 인생이 계속 어긋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기도할 때 입니다. 왜 어긋나는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어긋나는 것을 고쳐주시지 않는다. 대신에 그 어긋남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시기를 원하신다.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기도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비전을 주시고 우리에게 나아갈 길을 열어주십니다. 지금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지금 내가 너무 잘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어느 순간에 길을 잘못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하십니까? 지금 기도할 때입니다. 무엇을 준비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고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 너무도 바쁘십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더욱 기도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바쁠수록 판단력과 결정을 잘 해야 합니다. 바쁜 만큼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지금 이해가 안되십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과 깊은 씨름을 해야 합니다.<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