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지금은 기도할 때(3) 막 14:37-40
결국 그리스도인은 기도라고 하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만남을 통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해답은 없습니다. 정답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의 간청이 시간이 가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요구가 시간이 가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처럼 쉬운 것도 없고 기도처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꼭 달리기 같습니다. 달리기는 신발과 반바지만 있으면 되는 운동이 아닌가요? 그래서 처음에는 달리기를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달리기가 만만치 않은 것을 알게 됩니다. 운동화 가격이 만만치 않고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도도 처음에는 쉬운 것 같은 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려운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리처드 포스터라는 사람은 기도를 막는 요인 중에 가장 큰 요인은 기도자가 기도에 대하여 완전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쉽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내 기도의 동기가 올바른 것인지, 내 기도가 위선적이지는 않는지를 걱정해서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 좁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중성이 있고, 이중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를 용납할 만큼 위대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구원이나 은혜는 우리가 어느 정도 믿음이 충만하거나 갖추고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오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이제 기도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있는 모습 그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시간에 장로님의 기도, 권사님의 기도, 목회자의 기도를 들으면서 위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가장 단순한 기도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단순한 기도는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 안에는 좋은 것, 나쁜 것, 흉한 것 모두가 섞여 있습니다. 이 단순한 기도를 뛰어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위선적인 기도가 됩니다.
둘째로 지금 있는 상황과 장소에서 시작하십시오. 기도는 어디에서 해야 하는가요? 교회에 와서 기도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신앙적 입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존재는 어디에나 계십니다. 단지 교회가 기도하기에 더 편한 것은 분위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작은 방, 아니면 여러분이 오가는 버스, 기차 아니면 운전대를 붙잡고 기도하는 그곳에서 기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런 어리석은 기도를 합니다. “내가 대학에 가면, 내가 사업이 잘되면, 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섬기고 기도할께요”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내가 그 자리에 올라가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지금 위치에서 시작하고 지금의 자리에서 기도하십시오.
여러분들이 변화하고 싶습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부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대해보시길 바랍니다. 아내에게… 남편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새롭게 대해보세요. 그렇게 되면 주변의 사람들이 새롭게 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끔 비행기를 타면 승무원들끼리 사용하는 언어를 주목해보았습니까? 승무원들 사이에는 상하지위를 불문하고 서로 간에 존칭을 사용합니다. 왜 그런가? 처음에 자신들끼리 서로 반말을 하고 하대를 하니까 승객들이 자신들을 무시하고 하대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서로 자기들끼리 서로 존칭을 해주기로 약속을 하고 서로간에 존중을 해주니까 승객들도 그때서야 자신들에게 존칭을 사용하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무엇인가를 시작하면 내가 변화를 했을 때 주변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기도도 내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면 주변이 변화되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십시오. 기도를 하다보면 늘 내 중심입니다. 내가 요구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대로 되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산타클로스에게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자판기도 아닙니다. 기도는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원하는 단순한 기도로 시작하면서 시간이 가면서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응답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필립 얀시는 기도의 단계를 3가지로 설명합니다.
1단계가 요청의 단계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무조건 배가 고프면 밥 달라고 하고, 자기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울기도 하고 떼를 씁니다. 그리고 가끔 가뭄에 콩나듯이 ‘고맙습니다’라를 말할 뿐 먼저 와서 인사하거나 반응도 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미숙아 단계입니다.
2단계가 묵상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요청의 단계에서 내용이 달라지는 단계라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먹을 것만 달라고 하다가 이 단계가 오면 먹는 것 보다 더 소중한 관계를 갖기를 원하는 단계라고 보면 됩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물고기를 달라고 하는 단계에서 물고기를 잡는 단계라고 보면 좋을 듯 싶습니다.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부자보다 사랑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단계입니다.
3단계가 순종의 단계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36절) 예수님은 자신의 뜻으로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요청의 단계였습니다. 그러나 그 단계에서 머무르지 않고 묵상의 단계로 갔습니다. 만약에 내가 이 십자가를 거부한다면 구원의 문제는…그리고 그 다음에 순종의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이것을 리차드 포스터는 이것을 기도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의 중심이 나에게서 하나님으로부터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유진 피터슨의 말처럼 “기도는 사람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는 경우가 절대 다수이다”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우연찮게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캄보디아에 선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친구를 돕기 위하여 왔다가 결국은 캄보디아의 선교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캄보디아에 오자마자 얼마 안되어서 너무도 힘든 일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차를 끌고 시내에서 역주행을 하는 오토바이와 부딪쳐서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오토바이에 탄 캄보디아인 가운데 한 명은 피를 흘리고 쓰러져서 선교사님이 놀라서 이 사람을 차에 싣고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잠시 후에 경찰들이 들이 닥쳐서 선교사님의 신분증,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압수해가지고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항변을 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찰들은 만약에 당신이 잘못하지 않았으면 왜 이 사람을 병원으로 옮겼느냐라고 추궁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그냥 내버려두냐고 하니까 당신이 분명히 잘못을 했으니까 데려왔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캄보디아 모든 사람들이 선교사님이 잘못을 했다는 것으로 증언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언어가 제대로 통하지 않지 도와주는 사람은 없지…너무도 막막하고 화도 나고 분통도 터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하나님에게 항변도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나라를 사랑하기 위하여 왔는데 이들이 왜 저를 이렇게 힘이 들게 합니까?”
사실 선교사님은 배신감도 맛보고 상처도 받았습니다. 그 누구도 선교사님을 도우거나 협조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부터는 숙소에 있어도 경찰이 자신을 끌고 갈 것 같고, 사람들은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어서 선교사역을 하는데 무척이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언제 선교사님이 회복되었느냐면 어느 날 조용히 기도하는 데 갑자기 하나님이 이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나도 사랑하다가 아팠다”
이 땅을 너무도 사랑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낸 이 아들을 세상은 어떻게 했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이 땅에 왔다고 했는데 그 분을 욕하고,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게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다가 아팠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의 인생에 무엇을 시작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고 하면 이제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한 주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사랑하여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새해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는 금방 열정도 사라지고 처음 마음도 사라질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기도를 주셨습니다. 이 기도함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처음 마음, 그리고 열정의 마음을 주시어서 한 해 동안 늘 새롭고 신선하게 시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해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지금은 기도할 때임을 믿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살아가는 많은 연약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기도하며 담대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희망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