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지금은 변화 할 때입니다(3)
– 고후 3:12-18 –
우리는 왜 변화해야 할까요? 많은 이유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 변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어떤 사람은 사랑받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청년사역을 하는 목사가 왜 나이든 청년들은 어린 자매들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왜 나이든 청년들은 자기 연령에 맞는 자매를 선택하지 않고 어린 자매들을 선호하는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나이든 형제가 어린 자매를 선호하는 이유>
1)어린 자매들은 감동을 잘 받는다.
어린 자매들은 어디에 데려가도 우아~~넘 좋다. 작은 선물을 주어도 너무 감동이야요라고 감동을 잘 받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든 자매들은 감동을 잘 안 받습니다. 다 알고, 다 가보고, 다 먹어보았기 때문에 경지에 오른 도인 같기 때문입니다.
초신자들은 은혜와 감동을 잘 받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교인들은 감동을 잘 안 받습니다. 도인 같습니다, 다 알고 있는 것인데, 다 뻔한 이야기인데 하고 감동을 안 받습니다. 누구를 좋아하겠습니까? 감동받는 사람을 좋아하겠지요? 우리가 변화 받아야 할 이유는 늘 새로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감동을 잘 받으면 사랑받습니다.
2)어린 자매들은 반응을 잘한다.
별것도 아닌 것에 웃어주고, 깔깔대고 반응을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매들은 아무리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썰렁해짐니다. 누가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겠습니까? 강의나 설교를 해도 반응을 잘 하는 공동체는 늘 강의하고 싶고, 설교하고 싶지만 반응이 없는 곳에서 설교나 강의는 벽에다가 강의하는 것 같아서 빨리 끝내고 싶어합니다. 반응을 잘하면 사랑받습니다.
3)어린 자매들은 자기를 잘 꾸민다.
약간의 어색한 화장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름답게 꾸미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고연령 자매들은 꾸미는 것조차 헛되고 헛되다라고 하면서 무심해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 안에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모를 본다는 사실을…하나님과 사귀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자신을 꾸미고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받습니다.
4)자유로움이 있다.
고연령 자매들은 만날 때부터 부담감을 주면서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어린 자매들은 만날 때에 결혼이나, 기타의 부담감이 없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습니다.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위축되지도 않고 당당하다는 의미지요 신앙생활하면서 오래된 사람들은 많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늘 새로운 것을 기대하여 그래서 늘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새가족은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에 감사해 합니다.
우리가 왜 변화해야 하는가요? 가족으로부터 주변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 지금 그대로 살아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변화를 해야 합니다.
둘째가 절박하기 때문에 변화해야 합니다.
변화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 꼭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변화하지 않습니까? 절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아직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습니까? 절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월드스타 비는 18번이나 오디션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오디션에 이거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오디션을 볼 때에 한 번도 쉬지 않고 총 다섯 시간을 내리 춤췄다고 합니다. 죽자 살기로 춤을 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오디션에 합격했습니다. 왜 술 담배를 끊지 못하는가요? 죽을 만큼, 술을 끊을 만큼 절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훗날 정말 절박할 때에 끊고 변화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미리 절박함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내가 변화한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셋째가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변화해야 하는가요?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사실 왜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자유함이 없는 것일까요? 어둠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변화가 두렵고 자유함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본문에서는 이것을 수건이 눈을 가렸기 때문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자유하고 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14절 후반절에 “그 수건은 그리스도안에서 없어질 것이라”16절에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의 변화를 시작하는 것은 수건이 벗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수건은 어떻게 벗겨지는가? “주께로 돌아가면 수건이 벗겨짐니다.”우리가 왜 고정관념에, 무지함에, 불신앙으로 살아가는가요? 수건이 앞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수건이 벗겨지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자유함이 생깁니다. 이제 보인다, 이제 무엇을 해도 자신이 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자유함의 시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변화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것인 무엇인가요? 자신을 내려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자신을 비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변화가 가능하고 자유함이 찾아옵니다. 내게 있는 것, 내 성품, 내 의지, 내 것을 붙잡고는 변화도 자유함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올 한해에 어떻게 변화를 시작할 것인가요?
지금이 바로 변화할 때이다. 우리가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면서 꼭 읽어야 할 기도문이 한 편 있습니다. 그것은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변화 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냉정함을 주시고, 내 힘으로 고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변화 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분별 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소서.
여기에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변화할 수 없는 것, 변화시킬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냉정함, 평안함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안 되는 것 가지고 목숨 걸고 기도하지 마세요,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변화될 수 있고 고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변화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이 고칠 수 없는 것인지, 변화될 수 있는 것인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갖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지금이 바로 변화할 때입니다.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