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경제윤리 연재기획6 : 자본/대부에 관한 기독교경제윤리
빚 문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나(2)
성경은 이자 자체를 금하는가
빚에 대한 성경의 전체적인 느낌은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다. 빚을 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는 느낌이다. 구약의 율법서(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와 예언서(에스겔), 느헤미야, 시편, 지혜서(잠언), 신약의 복음서(누가복음)에서는 모두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라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자 자체를 금하는 것일까?
구약 율법은 같은 이스라엘 동족에게서 이자 받는 것을 금한다. 이자 금지 규례는 이방인이 아닌 오직 같은 이스라엘 동족에게만 적용된다. 대부분의 성경 말씀은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이방 사람에게 준 빚은 갚으라고 할 수 있으나 당신들의 동족에게 준 빚은 면제해 주어야 합니다(표준새번역)”라는 신명기 15:3 말씀과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 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라는 신명기 23:20 말씀은 이방인(타국인)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허용한다.
성경에는 같은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씀은 많지만 이자를 받으라는 말씀은 신명기 15:3, 신명기 23:20 두 구절뿐이다. 또 꾸고도 갚지 않는 것에 대해 나쁘다고 말씀하는 것은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라는 시편 37:21 한 구절뿐이다.
신명기 23:20에 나오는 이자를 받아도 되는 이방인(타국인)은 이방인을 뜻하는 세 가지 히브리어 게르(ger), 토샤브(tosab), 노크리(nokri) 중에서 노크리에 해당한다.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게르)이나 우거하는 자(토샤브)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레 25:35~37)”는 말씀 중에서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되는 이방인은 객(게르)과 우거하는 자(토샤브)다. 게르와 토샤브에게서는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되고 노크리에게서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는 말이다.
구약학자 시릴 로드(Cyril S. Rodd)는 <Glimpses of a Strange Land: Studies in Old Testament Ethics>(Edinburgh: T&T Clark)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사는 게르와 토샤브와는 달리 노크리는 잠시 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거나 지나가는 외국 상인이라고 해석한다. 이스라엘 거주자가 아닌 상업을 목적으로 온 이방인(노크리)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는 해석이다.
이스라엘 동족을 비롯해 게르, 토샤브가 아닌 노크리에게서는 이자를 받아도 되고 이들은 빚 탕감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또 시편 37:21은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준다고 말씀하는 동시에 갚을 수 있는데도 꾸고 갚지 않는 것은 악한 것이라는 채권자와 채무자 양쪽의 윤리를 말씀한다.
가난한 사람을 ‘물어뜯는‘ 이자와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이자
롤랑 드보(Roland de Vaux)는 <구약시대의 생활 풍속>(대한기독교서회)에서 이자를 뜻하는 히브리어로 네쉐크(neshek)와 타르비트(tarbit) 중에서 네쉐크는 ‘물어뜯다’, 타르비트는 ‘증가’를 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네쉐크는 출애굽기와 신명기, 시편 55:5절에서만 나타나고, 후기 시대의 문서들에서는 네쉐크가 타르비트와 나란히 사용되며 두 의미의 구별을 어렵게 한다고 드보는 말한다.
드보는 채무자가 빚 문서에 60세겔을 빚졌다고 쓰고 실제 빌리는 돈은 40세겔일 때 20세겔은 채권자에게 이미 ‘물어뜯긴(네쉐크)’ 것이고, 만기일에 60세겔을 되갚을 때 ‘증가(타르비트)’된 20세겔을 갚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눅 16:1~8에서 빚진 사람의 빚 문서에서 빚을 줄여 주는 불의한 청지기를 오히려 지혜롭다고 칭찬하신 것은 이런 상황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네쉐크를 뜻하는 이자는 가난한 사람을 물어뜯는 부정적인 의미를, 타르비트를 뜻하는 이자는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이자인 것으로 보인다. 가난한 사람을 ‘물어뜯는’ 이자를 받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이자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이자를 금지하고 모든 부채의 탕감을 말씀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어려움을 통해 이자 수익을 얻는 건 비윤리적
상업을 목적으로 온 타국인이 돈이나 재화를 빌리는 경우는 생활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본을 빌려서 더 많은 이윤을 남길 목적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성경은 암시한다. 만약 누군가가 생활이 어려워서 빌리는 것이 아닌 이윤을 남길 목적으로 남의 자본을 빌려서 사업을 하여 더 많은 이윤을 남겼다면 이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것은 정당하다는 말이다.
예수님도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눅 19:23)”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사업을 위한 대부에 따른 이자는 정당한 것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사업을 위해 필요한 자본을 빌려 주고 상호 유익을 도모하는 것은 좋은 일이며 이런 자본 대부에 따른 이자는 자연스럽고 정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난과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서 이자를 받으면서(물어뜯으면서) 이들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과 파산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이다.
구약에서 빚을 지는 사람은 땅을 잃은 가난한 사람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평등하게 땅을 분배받고 자기 노동의 열매를 누리며 사는 상태에서 빚을 지게 되는 사람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불가피한 이유로 인해 노동을 할 수 없어서 자기 땅을 희년까지 다른 사람에게 팔고도 가난에 처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불가피한 이유로 인해 노동할 수 없는 사람은 일단 자기 땅의 일부 혹은 전부에 대한 사용권을 희년까지만 팔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땅을 팔았어도 친족(고엘)이나 자신이 다시 무르기를 할 수 있었다. 친족도 자신도 무르기를 할 수 없으면, 모든 이스라엘 사람은 희년까지만 땅의 사용권을 팔 수 있기 때문에, 희년이 되면 다시 땅을 돌려받게 된다.
구약 이스라엘에서 빚을 지게 되는 사람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희년까지 땅의 사용권을 다 팔고 난 후에도 생계가 어려워 다시 빚을 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희년까지 땅을 팔아 버린 사람은 빚을 갚지 못하면 이스라엘 동족의 품꾼이 되거나 최악의 경우 이방인의 품꾼이 된다. 이런 사람에게 꾸어 주고 이자를 받는다는 것은 같은 동족을 품꾼이나 종의 상태에 계속 빠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런 가난한 사람에게서는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희년까지 땅을 팔아 버리고도 생계가 어려워 빚을 진 사람에게 이자를 받게 되면 다시 일어서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가난에 처한 이스라엘 동족에게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씀은 가난한 사람이 다시 일어서서 자기 땅과 가족을 회복하고 자유인이 될 수 있도록 이자를 받지 말라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고영근 / 희년함께 사무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