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1) (빌2: 5~11)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람들은 흔히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이나 혹은 교회 일에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혹은 신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이고 내 삶의 주인이라는 신앙 고백이 있는 사람이요, 더 나아가서 그러한 자신의 신앙 고백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는 변화되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개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시만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종의 자리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래서 본래 하나님이시지만 스스로 사람이 되셨고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심으로서 십자가에 서 죽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을 본받아 살아가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2장 1-4절의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겸손을 본받아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씀한 후에, 오늘 본문2장 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말씀합니다. 즉 사도 바울은 앞의 말씀과 계속 연결해서 우리가 본받아 살아가야 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빌립보 교인들에게 소개합니다.
먼저 본문 2장6-7절을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지만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진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분명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시기 전에 본래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서 사도 요한이 말한 ‘말씀’ (the Word) 은 헬라어로 ‘로고스’ (λόγος)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킵니다. 다시 말해서, ‘로고스’는 ‘말씀’ (word) 그리고 ‘이성’ (reason)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로고스” (λόγος) 는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으로, 그리고 헬라인들에게는 우주의 질서를 주관하는 ‘보편적 이성’(신적 이성)으로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일수 있는 적절했습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로고스로 소개하면서 그분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동시에 그분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은 본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다’고 사도 바울은2장 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비운다’는 헬라어 단어는 ‘케노오’(κενὸω)인데, 그 뜻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nothing:NIV 또는 no reputation:KJV)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에 근거해서 18세기 독일 신학자 토마시우스는 예수님이 신성을 포기하고 인성만 소유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케노시스(Kenosis) 이론’은 결국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실제로, 복음서들(특히 요한복음)을 읽어 보면 예수님의 신적능력(신성)을 보여주는 기사들이 자주 언급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여전히 신성을 가시신 분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지신 분이요, 그것이 서로 혼합되거나 분리되지 않고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또, 우리말 성경의 6절에 나오는 “본체”와 7절에 나오는 “형체”는 원문에 의하면 같은 한 단어입니다. 다시말해서, 6절에 나오는 ‘본체’는 헬라어로 ‘모르페’(μορφῃ)이고 7절에 나오는 ‘형체’도 헬라어로 ‘모르페’(μορφῃ)입니다. 그래서NIN 성경은 둘다 “nature”(속성)라는 단어로 번역했고, NKJV성경은 둘다 “form”(형태)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한글 성경만 보고 ‘본체’와 ‘형체’를 구분해서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원문을 모르는 결과에 따른 오해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사실은 곧 하나님의 본체와 종의 형체는 예수님이 변하지 않은 신성을 지니신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하나님과 동등한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2장 8절을 보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로마시대의 십자가형은 가장 치욕스럽고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죄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위해 손목과 발에 못이 박히면 그 십자가를 수직으로 세우는 과정에서 죄수는 십자가에 자신의 온 몸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근육이 늘어나고 어깨는 탈골되고 그 못박힌 상처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는 엄청난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는 짧게는 3일 길게는 한 달이 가도록 십자가위에서 매달려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형벌은 로마시민이 아닌 사람에 한하여 강도, 살인,반역등 가장 무거운 죄를 저지른 노예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형벌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가장 낮고 천한 자리로 오셔서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그 자체가 바로 최고의 사랑과 최고의 겸손을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3장1절에서 말씀합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한 후에, 히브리서 12장2절에 가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합니다.
미국의 여성 수영 선수였던 ‘조니 에릭슨’ 은 꿈많은 십대 소녀였지만, 1967년 7월의 어느 여름날, 해변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머리가 돌에 부딛쳐서 한순간에 사지가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그후 조니는 죽을 생각만 하면서 3년간의 세월을 눈물로 보내던 어느날, 신디라는 친구가 침대 옆에 앉아 이렇게 외쳤습니다.
“조니, 예수님은 너의 마음을 알고 계셔. 너는 혼자가 아니야. 왜냐하면 그분 역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때가 있었거든…예수님은 채찍에 맞으셔서 등에도 상처를 입고 계셨고 자세를 바꾸거나 몸을 편하게 할 수 없었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서 움직일 수가 없으셨거든.”
그순간 조니는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온 몸이 마비되는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결혼하여 남편이 그녀의 손과발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빨로 펜을 물고 그림을 그렸고 연설자가 되었고TV와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생각하며 살아갈때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이러한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매일의 삶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고 권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고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 공동체 생활과 삶의 현장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