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편) (빌 1:15-18)
15.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사도 바울은 몸은 비록 감옥에 있었으나 그의 마음과 영혼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감옥은 복음전파를 위한 또 다른 선교의 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로마의 감옥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하기 약 십년전인 AD 52년경에 빌립보 감옥에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행 16장 참조). 하지만 한 밤중에 찬송과 기도를 드렸을때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나면서 그 감옥을 지키던 간수와 가족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결국 감옥을 지키던 군인의 전 가족이 예수 믿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 있었고 그곳이 곳 선교의 현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다시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감옥은 밖에서 만날 수 없는 왕족과 귀족들 그리고 황제의 친위대원들에게 복음을 전할수 있는 선교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이 감옥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일로 인하여 핍박과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던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용기를 얻었습니다 (1장12-14절).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들이 어떠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를 원하고 그 사건들 가운데 복음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될때 우리는 어려운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 15절을 보면,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로마에는 바울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8장 15절을 보면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이르렀을 때 거기 있는 형제들이 소식을 듣고 마중을 나와서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이나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은 모두 로마에 있는 신자들 가운데서도 앞장서서 일했던 일꾼들 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해서 질투심과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투기와 분쟁 즉 질투심과 적대감을 가진 경쟁 의식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나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이렇게 “투기와 분쟁” 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을16절에서는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툼은 헬라어로 ‘엘리데이아’ (ἐριθεία) 입니다. 이 단어는 본래 일할때 받는 ‘품삯’ 즉 임금과 관련된 단어인 ‘엘리도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엘리데이아’ (다툼)를 자기 이익 추구와 관계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여기서 말하는 다툼은 ‘‘자신의 이익과 관계된 이기적인 야망이나 혹은 경쟁적인 다툼’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NIV성경은 selfish ambition 즉 ‘이기적인 야망’이라는 뜻으로, 그리고 KJV 영어 성경은 contention 즉 ‘경쟁적인 다툼’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는 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기적인 야망’이나 혹은 ‘경쟁적인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모습이 이와같은 이기적인 야망’이나 혹은 ‘경쟁적인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유익을 먼저 구하고 성도들의 신앙 성숙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와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데 더 관심을 갖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안의 직분자들이 이와같은 모습으로 주의 일을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5:19-23절을 보면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술 취함과 방탕함과 같은 것들은 성령열매와 반대되는 육신적인 죄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죄의 열매를 맺는 자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사단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라고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부 사역자들은 사도 바울을 복음의 동역자로 여기기 보다는 자신의 권위가 도전받는 경쟁상대로 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앞으로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아주 불확실한 상황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이 앞섰다면, 자신을 깍아 내리고 투기와 분쟁을 일으키는 일부 사역자들로 인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진행될 재판을 기다리면서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재판을 기다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본문1장 1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안위를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모든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는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χαίρω· ἀλλ ὰ καὶ χαρήσομαι) 는 이 말은 ‘지금 나는 괴롭고 힘들지만 그래도 기뻐해야지’ 하는 결심의 말이 아닙니다. “기뻐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로” (χαίρω)는 ‘직설법 현재 능동태’로서, 이 말의 의미는 ‘나는 지금 기뻐한다’ 혹은 ‘나는 지금 기쁨의 상태 가운데 있다’는 사실적인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기뻐하리라”는 헬라어로 “카레소마이” (χαρήσομαι)로서 ‘직설법 미래 1인칭 단수형’입니다. 그래서, “I will rejoice” (KJV영어 성경)로 직역할수 있지만, 문맥의 의미상 “I will continue to rejoice” (NIV영어성경), 즉 ‘나는 지금부터 앞으로도 계속 기쁠것이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도 바울이 처한 상황은 전혀 기뻐 할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계속적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기회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기뻐할것이라는 확신에 찬 고백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데 있어 참으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비록 우리의 상황이 전혀 기뻐할수 없을 만큼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을 지라도 그 가운데 하나님의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닫게 될때 우리는 우리 기뻐할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교회를 섬길때 불필요한 경쟁의식이나 투기와 분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도록 항상 겸손과 사랑의 섬김으로 행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 이와같이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할지라도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두고 그 모든 부정적인 모습들을 믿음의 시각으로 바라볼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기뻐하고 기뻐할수 있습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