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나의 구원과 삶의 목적 (빌 1:19-21)
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신약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소테리아’는 질병이나 재난, 혹은 전쟁의 위험등 모든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들을 다 포함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예로 사도행전 27장 33-34 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로마로 호송되어 가는 도중에 폭풍을 만나서 배가 완전히 파선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배안에 있던 군인들과 죄수들 276명은 열나흘이 되도록 풍랑과 싸우느라 먹지도 못한채 기진 맺진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서 이러한 생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될 것을 ‘구원’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것입니다.
오늘 본문 1장 19절에서도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줄 아는 고로” 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라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바로 앞에서 말씀드린 현세적인 구원의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죽음의 감옥에서 나오게 될 사건을 생각하면서 ‘구원’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특별히 1장 25-26절을 보시면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내가 살것,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것,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라는 이 표현들은 모두 사도 바울 자신이 감옥에서 풀려나서 빌립보 교인들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을 확신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서 나오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는 이유는 두가지 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나를 위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중보 기도’가 있기 때문이요, 두번째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19절). 즉 너희들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감옥에서 구원 받게 될 줄을 나는 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중보의 기도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기도보다 더 큰 능력이 있습니다. 중보기도는 자신의 욕심을 위한 기도가 아닌 순수한 사랑의 동기를 가지고 기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이 중보기도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장 1-2절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에게 ‘주의 말씀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라고 중보 기도를 요청합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적으로 잘 전파되도록 기도를 해주고 복음 전하는데 있어서 악한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중보의 기도를 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18-19절에서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에게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해달라’는 중보의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은 중보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사역자들은 성도들을 위해서 그리고 성도들은 목회사역과 교회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 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섬기는 선교사님들과 이웃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사명과 특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도 바울이 죽음의 감옥에서 구원받게 될 것을 확신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라고 표현한 것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에게 보내신바 되었기 때문이요, 또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8장 26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에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친히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 할 때에도 성령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오늘 분문 19절에서 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구원’ 이란 말의 의미는 죽은 이후에 천국을 가는 종말론적인 구원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원’이란 단어의 의미가 항상 이렇게 두가지 면에서 동시에 해석할수 있다고 생각 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오늘 본문의 경우, 말씀의 앞뒤 문맥과 여러가지 정황을 살펴볼때 사도 바울이 이 두가지 차원의 구원을 동시에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종말론적인 구원의 의미는 빌립보서 1장 20-21절의 말씀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고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라는 표현들을 사용함으로써 사도 바울 자신이 죽음에 대한 생각도 품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도 바울은 전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1장 20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처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살든지 죽든지 그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나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나오기룰 갈망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결백이 증명됨으로써 당시에 떠돌던 반사회적인 기독교에 대한 나뿐 소문들이 잠재우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였음을 충분히 짐작해 볼수 있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나오기룰 갈망했던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한 1장 24 절에 있는 말씀처럼 빌립보 교인들의 신앙에 유익을 끼치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우리의 삶의 기쁨도 세상의 환경에 따라 변할수 밖에 없고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줄로 믿습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55편 16절에서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속에서도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뜻하지 않은 재난들이 찾아 올 때 우리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며 믿음으로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삶을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나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삶, 이것이 인생의 목적이 될때 우리는 담대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수 있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