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1강 바울의 인사에 담긴 교훈(1) 롬 1:1-7
1.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롬 1:1-7]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온통 나쁜 소식과 슬픈 소식들이 뒤덮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들어도 가장 좋은 소식, 가장 기쁜 소식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놀라운 소식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 (εὐαγγέλιον)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영어로 Good News또는 Good Message 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소식’ 혹은 ‘좋은 메세지’가 바로 복음입니다.
이 복음의 내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하나님의 선언 앞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자 하나님께서 이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굿 뉴스(Good News)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메세지가 바로 굿뉴스입니다. 더 나아가서 인간의 죄로 인한 고통과 불행과 문제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문제 해결책이 있다는 사실이 굿뉴스입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이요 복음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복음을 위해서 사도로 부름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의 편지 형식을 보면 편지를 쓰는 사람을 먼저 소개하고 편지를 받는 사람을 나중에 쓰는 것이 당시의 인사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이라고 먼저 자신을 소개 한 뒤에 7절에게 가서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을 살펴 보면, 본문 1~7절 까지의 내용이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쓴 13권의 서신중에서 가장 긴 인사말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문안 인사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문안 인사가 이렇게 길어진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교회가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고 또 바울이 이전에 한 번도 방문해 보지 않은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자신을 자세히 소개하는 긴 안부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즉 아직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던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종’이라는 표현은 기독교인들에게 익숙한 용어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여 부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렸던 사람들과 같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 이러한 ‘하나님의 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당시 로마의 문화적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말은 사도 바울 자신이 ‘예수님의 노예’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종’이라는 신분은 로마사회에서 가장 비천한 노예를 의미합니다. 물론 로마시대에 4명중에 1명이 노예였기 때문에 그 노예들의 역할에 따라서 어느 정도 다른 대우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가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노예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처럼 자신을 하나님의 선택받은 종이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주권과 자유를 철저히 포기하고 오직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종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헬라어 ‘아포스톨로스’ (ἀπόστολος) 즉 ‘보내심을 받은자’ 라는 단어와 ‘둘로스’ (δοῦλος) 즉 ‘종’이라는 이 두 단어가 곧 보냄을 받은 종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사도 바울은 택함 받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신분 의식과 사명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이 종이라는 말은 주인의 소유를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6-7절을 다시 풀어서 말씀드리면 이런 의미입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여, 당신들은 이제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당신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들의 주인이십니다. 당신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요 나의 당신의 종입니다’라는 고백은 사도 바울이나 목회자들이나 선교사들과 같이 특별한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할 고백입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라고 불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입니다. 우리는 용서 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종 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6장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또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 7-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성도들은 자신를 위하여 사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위해서 죽는 자가 바로 성도들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실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자들은 장차 예수님이 누리는 그 영원한 나라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 7절에서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 는 축복의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은혜와 평강’을이 표현은 사도 바울이 기원하는 모든 축복을 포함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먼저 ‘은혜’(카리스:Χάρις)는 사도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 헬라적인 표현이입니다. 반면에 ‘평강’(에이네레: εἰρήνη)은 ‘샬롬’이라는 히브리적인 표현입니다. 이 ‘샬롬’ 즉 평강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단순히 마음의 평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샬롬은 굉장히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영혼의 평화뿐만 아니라 건강과 복지등 삶의 축복을 누림으로써 경험하는 넓은 차원의 평화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은혜’란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의미하고 ‘평강’은 그 구원의 결과 우리가 누리는 영혼의 참 평화를 의미한다고 이해할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은혜와 평강은 우리가 매일의 삶속에서 경험하게 하고 누리게 되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차원에서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로마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 모두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