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10강 인간의 죄와 심판의 기준(롬 2:6-11)
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10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11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지식이 있고 교양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혹은 사회적인 지위가 높거나 더 잘살고 있다 이유때문에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이런 성향이 인종적인 우월감과 인종적 편견으로 혹은 종교적 적대감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앞에서 옳지 않은 태도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교만의 죄입니다 이러한 경향이 유대인들에게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깊은 인종적 우월감과 편견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성에서 나오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의 결과이고, 모든 인류가 하나님앞에서 똑같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2장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믿는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공평하신 심판 아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장 1절에서 ‘남을 판단하는 너희들 이 같은 일(죄)를 행한다’고 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지적했습니다. 그리고나서, 2장 11에 가면,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외모로 취함’이라는 이 단어는 헬라어 원문에서 프로소포렙시아 (prosopolepsia)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 편파심, 차별대우, 편견’ 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편애(favouritism: NIV)와 편견(partiality: NKJV)이 없다’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각 사람이 행한대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장 6-8절을 보면, 바울이 구약 성경의 말씀들을 인용해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시고 불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cf. 시편 62편 12절; 잠언 24장 12절).
이 말씀은 하나님이 선악의 행위를 따라 심판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고 선행을 쌓아야 천국에 들어 갈수 있다는 말씀으로 오해 될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관한 바른 신앙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이러한 말씀을 접할때 혼란을 느낄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과 행위는 뗄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선행을 쌓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결과로써, 믿음에 의해서 선행이 이루어 지는 것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본문의 앞뒤 내용(1장과 3장) 과 로마서 전체의 흐름을 볼때 분명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4장 23절을 보면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사도 바울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을 갈수 있기 때문에 선행은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신자들의 도덕과 윤리성은 세상 사람들보다 못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또, 이러한 신자들에 대해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며,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약2: 20-22). 그러므로, 믿음과 행위는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 믿는척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자, 그래서 신앙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진짜 천국백성이라고 말씀했습니다 (cf. 마7: 18-21).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 구원에 이르는 진짜 믿음은 그 사람의 삶의 모습으로 증명이 됩니다. 하나님을 진짜로 바로 알고 진짜로 바로 믿게 되면 그 하나님의 뜻을 기쁨으로 순종하고 따르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5절을 보면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라고 바울은 말씀했고, 로마서 16장 26절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즉, ‘믿는 것’과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결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하여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 사실을 계속해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그 신앙의 행위로 증명이 된다는 사실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행위를 분리시키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됩니다. 구원이 보장되었으니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다 용서해 준다고 믿으면서, 양심의 별 가책을 느끼지 않고 편안히 죄를 짓는다면 그는 결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 다음, 2장 9-10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여기서 바울은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라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두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회개의 기회를 가졌지만 그들의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때문에 환난과 곤고가 임하는 심판을 먼저 받을수 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을 따라서 선을 행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자,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12절에서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은 젊은 목사인 디모데가 구원을 받지 못할까봐 영생을 얻기 위해서 믿음의 싸움을 싸우라는 말이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 누릴 구원의 날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는 말씀도 같은 의미입니다. 이말은, 우리가 예수를 믿을때 받은 구원이 불완전 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성화적인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다시말해서, 바울은 예수를 믿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는 칭의적 구원, 그리고 현재의 성화적 구원, 그리고 미래(천국)의 영화적 구원이라는 큰 틀안에서 구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종종 교회를 다니고 봉사도 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하는 거짓 신앙을 가질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외적인 행동을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시고 공평하게 심판하시는 분임을 로마서2장1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짜 구원받은 신자들은 분명히 다른 모습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땅에서 믿음의 선한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진짜 구원 받은 신자들은 이땅에서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참 신자들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함께 할 것입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