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11강 공평하신 하나님(롬 2:12-16)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다루시고 심판하시는 근본적인 죄의 뿌리는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2:4-5). 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고 참고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존귀와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2:6-10).
앞에서 살펴본 이 말씀들은 문맥의 흐름을 잘 살피지 않으면, 하나님은 믿음과 상관없이 인간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하거나 혹은 믿음과 행위가 똑같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오해하기 쉬운 본문입니다.
하지만 ‘믿음과 행위는 분리될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전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벗어나 구원받기 위해서 선행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믿음의 결과로 그리고 믿음에 의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 하나님이 진정으로 받으시는 선행이라고 바울은 뒤에가서 말씀합니다 (롬 14: 23).
그러므로, 사도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며,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는 말씀(약2: 20-22) 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자가 천국에 간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cf. 마7: 18-21). 이렇게,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는 진리를 계속해서 선언하지만, 그 믿음은 행위와 분리 될수 없다는 사실도 동시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앞에서 설명한 ‘믿어 순종하게 한다’ (1: 5; 16: 26)는 말씀은 순종의 행위가 믿음과 관계가 있고 그래서 믿음과 행위는 뗄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cf.롬 14:10, 23). 이러한 차원에서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2: 13)라고 사도 바울은 씀합니다.
특별히, 헬라어 성경과, 영어 성경을 살펴보면, 2장 13절이 한글 성경에는 없는‘왜냐하면’ 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13절 말씀 한구절만 따로 떼어서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고 주장한다면 로마서 전체의 주제와 사상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본문의 문맥적 흐름에 대한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이방인들이 너희들보다 더 낫다’고 유대인들을 책망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2장 14-16절에 가면, 율법 없는 이방인도 자신의 양심 (마음에 새긴 율법)의 따라 살아간다고 말하면서 모든 사람들의 심판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게 될 것이라고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심판은 결국 믿음에 근거한 심판이요, 그 믿음은 순종의 행위가 포함(동반)된 행함이 따르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즉, 이 말씀은 믿음과 행위가 하나임을 말씀하고 있는 야고보서 2장의 말씀과 일치하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된다’고 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롬 1:17; 3:24, 28; 4: 3, 25; 5:1,9; 갈 3:11,24).
이렇게 사도 바울은 ‘너희들도 이방인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이2장 12-16절의 내용에서 계속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들이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 율법을 듣을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너희가 그 율법을 듣기만 한다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다’ (2:13)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이방인들이 너희들보다 더 낫다’고 유대인들을 책망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장 14-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다시말하면, 비롯 이방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행위가 의로운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수 있도록 양심이 하나님의 율법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 나오는 로마서 2장 12절에서는 ‘율법이 없지만 그 양심이 율법이 되어 살아가는 이방인들은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을 가지고 있으면서 범죄하는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결론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나서 2장 16절은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사람의 보이는 행위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의 은밀한 생각까지 드러내시고 심판하실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노력과 행위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숨겨진 모든 것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4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4: 12- 13).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날선 검보다 예리하게 우리의 영혼을 찔러 쪼개는 능력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결산을 하게 될 마지막때에 우리 마음의 은밀한 생각까지도 드러나게 하시고 판단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이나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방인들에게나 동일하게 공평하신 분입니다. 물론 이 세상의 현실만을 바라본다면 불공평한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세상에는 태어날때부터 신체적인 장애나 혹은 정신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나서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은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먹을 물과 음식이 없고 병이 들어도 치료할 약이 없어서 일생동안 어려움과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자신의 친척이 남한으로 탈출 했다는 이유로 평생을 사상범 수용소에 갇혀서 짐승과 같이 학대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인간의 불행과 불공평한 현실을 보면서 무신론자들은 ‘신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 할수 있느냐’고 종종 반문합니다. 그들은 인간이 심은 죄와 그 죄의 씨앗이 거둔 열매가 바로 우리가 겪는 불행임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비난하고 하나님께 책임을 돌립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겪는 온갖 불행은 바로 인간의 죄악이 가져다준 열매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게 되고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행위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