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15강 우리가 더 나은 사람입니까? (롬 3:9-18)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3:9-18).
세계적인 건축물중 하나인 미국의 수정 교회는 긍정적 생각과 번영신학을 목회 철학으로 삼았던 로버트 슐러 목사에 의해서 건축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꿈의 사람’(Dreamer)이라고 부르며 존경했고, 매주일 전국적으로 방영되는 TV설교를 통하여 1만명이 모이는 초대형 교회를 이루었지만, 로버트 슐러 목사의 은퇴와 함께 재정 상태가 악화된 수정교회는 가톨릭교회 대 교구에 팔리고 말았습니다. 그 로버트 슐러 목사는 강단에서 죄에 대하여 설교하지 않았고 죄인이라는 용어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듣기 좋은 설교와 긍정의 생각을 불어 넣는 설교를 함으로써 대형교회를 이루는 목회자가 되었지만, 사실상 그는 바른 복음을 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고, 죄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구원의 복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도 자신이 정말 죄인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말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신자들에게 로마서라는 이 편지를 쓰면서 로마서 1장 18부터 오늘 본문 3장 18절까지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특별히, 로마서 1장18부터 3장 8절까지 이어지는 내용의 결론이 바로 오늘 본문 9절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있다”고 3장 9절에서 선언합니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본질적으로 더 나은 것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구약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증명합니다. 특별히, 바울은 본문에서 시편 말씀과 전도서와 이사야서를 합쳐서 모두 7군데의 구약성경 말씀들을 엮어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첫째 부분은 3장 10~12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전도서 7장 20절과 시편 14편 1-3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인간의 악한 본성, 다시 말해서 인간의 죄성에 대해서 말하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완전한 의인은 없다고 말씀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죄성을 타고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왕은 자신이 우리야 장군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하고 자신의 충신 우리야 장군을 살인하는 범죄를 저지른 후에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시51 :5).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고백하는 말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로마서 3장 13~14절입니다. 이 말씀은 시편의 세 군대 말씀을 함께 엮어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시편 140편 3절입니다.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그 다음에 시편 5편 9절입니다.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마지막으로 시편 10편 7절입니다.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죄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악하고 무서운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무덤이 열려 있어서 악취가 나는 것처럼 입을 열면 불평과 원망의 말을 쏟아내는 것이 죄로 물든 인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혀가 비록 부드러워 보이지만 때로는 마치 독사의 독과 같이 남을 욕하고 비방하고 거짓말을 해서 남을 죽이는 인간의 입이라는 사실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영혼이 거듭날 뿐만 아니라, 말과 인격도 거듭나야 합니다. 일생동안 이러한 변화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과연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불평과 원망과 비방과 저주의 말들을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감사의 말을 하고 위로와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하는 천국 언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본문 로마서 3장 15~17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라는 구절은 이사야 59장 7-8절을 인용한 말입니다.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사 59:7-8). 여기서 사도 바울은 죄의 본성을 가진 마음과 생각뿐만 아니라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한 인간의 악한 행동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 18절에서는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시편 36편 1절에서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악해질 수 있는 이유는 죄의 본성과 함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되어서 신의 존재와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시대가 되어서 죄의 기준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죄라는 용어조차 들어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죄’라는 단어가 듣기 싫어서 ‘상처’라든지 ‘성향’ 또는 ‘질병’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말하기 때문입니다.
동성애는 양성끼리 좋아하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성향일 뿐이지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그 사람은 정신병자이지 죄인이 아니라고 변호합니다. 자식을 죽여 놓고도 ‘우울증’ 때문에 그런 것이지 죄가 아니라고 변명합니다. 어린 아이를 성추행 하고 다른 여자를 강간하고도 성도착증이지 죄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우리가 과거에 죄의 범주에 넣었던 것들을 하나의 성향이나 병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더 이상 죄의 문제도 아니고 부끄러워 할 문제도 아니라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마저 지지 않으려는 경향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죄의 문제이고 근본적으로 영혼의 문제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경험하거나 보게 되는 많은 병적인 증상들은 인간이 죄 아래 있으면서 영혼이 병들어서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2장 9절에서 “죄 아래에 있다”는 말은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죄를 짓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죄의 권세(힘)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강력한 죄의 영향력 아래 있고, 그래서 죄의 노예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 9절을 보면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사도 바울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유대인과 헬라인은 실제로 그 당시의 유대인과 헬라인을 가르키는 말이지만 동시에 유대인은 모든 종교인들을 그리고 헬라인은 지식과 철학과 과학을 신봉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역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신자들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죄의 본성을 억누르고 있고, 성령의 은혜로 우리들의 죄의 욕망이 갇혀 있을뿐, 우리의 본성이 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신자들은 설교를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삶을 살아가도 ‘그저 잘 하고 있다’고 칭찬과 격려와 등을 두드려 주는 교회들을 찾아 나서는 교인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재미나는 유머와 성공 철학이 들어 있는 그런 설교의 내용들을 듣고 그것을 은혜라고 말하는 교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자신의 죄를 살피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려고 하기 보다는 그런 것들도 포장되기를 원할때 이미 죄의 길에 가까이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죄를 감추고, 지은 죄를 변명하고 합리화 시키면서 하나님의 뜻과 먼 길로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내가 죄인임을 날마다 깨달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 내 안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라는 고백이 날마다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죄된 모습에 대한 아픔이 있고 그 죄의 무게로 인해 영혼의 무거운 고통이 느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진실로 깨닫고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이 연약한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