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16강 구원을 이루라? (1편)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
제가 고둥학교시절 작은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교회 사모님이 저를 불러서 ‘너 그렇게 신앙 생활해서 구원받겠어’ 하는 일종의 책망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제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게 신앙 생활이 잠시 소홀해지게 되었는데 그런 저를 지켜 보시던 사모님이 저의 신앙 생활이 염려가 되어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는 이 말씀은 마치 ‘네가 신앙 생활을 잘하지 못하면 받은 구원을 잃어 버릴수 있으니 신앙 생활을 잘하라’는 경고의 의미로 오해하기 쉬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린 아기가 막 태어나면 그 아이가 말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하고 인격은 발달하지 않았어도 분명히 한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아기는 반드시 자라서 성인이 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우리의 영혼이 성령으로 거듭나면 우리는 분명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구원받은 신자의 영혼은 성장해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숙한 신앙 생활을 하게 될때 그 사람이 진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러한 신자들은 장차 하나님 나라에 갔을때 완전한 구원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고 하는 전 과정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28-30절을 다함께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라.”
먼저 29-30절 말씀을 보면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목적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맏아들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때 하나님은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고 그렇게 구원받은 신자들이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갔을때에 영화롭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29-30 절의 내용을 가만히 살펴 보면 과거에 하나님이 선택하여 구원받게 하셨다는 과거의 사건과 동시에 미래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화로운 구원을 누리게 될 미래의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구원이 현재라는 시간속에서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를 28절을 통하여 알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이 말씀은29절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다시말해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과 시련과 아픔들까지도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 가도록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선하게 사용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구원의 사건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걸친 전 과정을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에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은 사건을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적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또 그렇게 구원 받은 백성의 신분을 가지고 현재 거룩한 삶을 추구해 가는 삶을 ‘성화적 구원’ 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장차 하늘나라에 갔을때 우리가 누리게 될 영원한 구원을 ‘영화로운 단계의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2장 12절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이 말은 ‘너희가 구원받았어도 잘못하면 버림을 받고 지옥에 갈수 있으니 두려운 마음으로 신앙 생활을 잘 하라’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또 너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를 잘 믿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살면서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그런 의미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미 받은 구원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 있는 성화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너희가 거룩한 삶을 살아라’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인데 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렇게 말했을까요? 성경에 나오는 ‘구원’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소테리아’인데 그 뜻은 영혼의 구원 뿐만 아니라 질병이나 재난 등 현재의 위험에서 벗어나 평안하고 건강한 생활을 하는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1장 19절에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줄 아는 고로” 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사도 바울이 그 당시에 감옥에 있는 상태에서 앞으로 감옥에서 나오게 될 사건을 ‘구원’이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최근의 일부 성경 학자들은 2장 12절의 의미가 개인의 영혼 구원과는 상관없는 ‘교회 공동체의 건강(온전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예: WBC 주석의 저자 호돈). 즉 이 구절은 개인 구원(영혼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분열하여 병든 교회 공동체의 건강함(공동체 구원)을 이루어 가라고 촉구하는 내용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고든 피와 같은 신학자는 ‘교회 공동체의 종말론적 구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앞의 내용2장3-4절을 연결해서 이해할때 설득력을 있어 보입니다. 여기서 저는 고든의 견해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호돈의 견해에는 동의히지 않습니다.
특별히 2장12절을 보면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는데 여기서 ‘항상 복종한다’는 것이 누구에게 복종하라는 말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말은 “카도스 판토테 휘페쿠사테” (…, καθὼς πάντοτε ὑπηκούσατε,), 즉 ‘ 너희들 서로 순종(한글:복종)하고 잘 지내라’는 말이 아니라 ‘너희들이 서로 항상 순종해 온 것처럼’ (as you have always obeyed)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순종” (한글:복종)이 교회 공동체에 대한 것이라고 보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변함없는 순종’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적합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를 보면, 사도 바울은 실제로 ‘순종’을 구원의 의미와 직접적으로 연결해서 사용합니다 (cf.롬 1:5;15:18, 살후 1:8). 마찬가지로 본문 2장 12절도, 문맥의 앞뒤에 내용에 맞추어 구원이라는 의미를 ‘공동체의 건강’이라는 의미로 해석 하기 전에, 이 문장 자체의 의미가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곧 구원의 여정 가운데 있는 성화적 삶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의 여정 가운데 있는 성화적 삶(성화적 구원)은 교회 공동체의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구원’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번 정리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개혁주의(칼빈주의) 전통에 서있는 사람들은 빌립보서 2장 12절이 ‘성화적 구원’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알미니안 주의 전통의 사람은 ‘잃어버릴수 있는 개인의 영혼 구원’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서 최근의 일부 성경 학자는 개인의 영혼 구원과는 상관없는 교회 공동체의 온전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교회 공동체의 종말론적 구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제가 확신하는 바로는 개인의 ‘성화적 구원’과 ‘교회 공동체적 종말론적 구원’은 서로 대립 되거나 분리될수 없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 개인의 신앙 성숙(성화적 구원)은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앞뒤 상황을 보면,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 사이에 일어날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면서 너희들이 다툼과 분쟁을 일삼지 말고 겸손과 사랑으로 서로 돌아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서로간에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예수의 마음을 품고 거룩한 생활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12절 말씀을 바꾸어 표현하면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이여, 당신들은 내가 있을때나 없을 때나 항상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완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오’ 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오늘 본문 2장 12절의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현재 생활속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화적인 구원을 이루라는 것이요 이것은 곧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져 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가 병들면 내 영혼이 병들고 교회가 건강하면 내 영혼도 건강해 질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 영혼이 병들면 그것이 전염되어 교회 공동체가 병들수 있고 내 영혼이 건강하면 그 영향이 교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할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은 교회 공동체와 뗄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 생활이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복된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