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17강 구원을 이루라? (2편) (빌 2:12-13)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 기독교 (개신교) 안에는 구원의 문제와 관계해서 전통적으로 크게 두가지 다른 주장이 있어 왔습니다. 그 중 하나는 ‘구원 받은 신자가 하나님을 떠나서 타락한 생활을 할수 있으며 그 결과 구원을 잃어 버릴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우리는 ‘알미니안주의’ 라고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를 믿고 한번 구원 받은 신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 구원을 잃어 버리지 않는다’는 견해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짜 성령을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연약함으로 죄를 지을 수는 있어도, 구원을 잃어 버릴만큼 타락의 길을 걸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칼빈주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두가지 다른 주장들 사이에 그 논쟁이 점점 가열되면서 이 문제를 검토하고 토론하는 역사적인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1618년 11월, 당시에 유럽 지역(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독일, 스위스, 프랑스, 스코틀랜드 등)을 대표하는 교회지도자들과 신학교 교수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함께 모여서 6개월간의 대 총회를 열었습니다. 그 결과 알미니우스의 주장은 성경에 위배된 주장으로 결론을 내렸고,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여 정리한 것이 도르트 신조(Canons of Dort)입니다.
지금도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하는 알미니안주의 구원론에 영향을 받은 교회 지도자들과 신자들은 본문2장 12절의 의미를 ‘믿음 생활을 잘못하면 (영혼) 구원을 잃어버릴수 있다’는 가능성의 근거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 12절에서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개인 구원의 상실 가능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헬라어 단어(소테리아)가 ‘건강’ 또는 ‘온전함’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구원을 이루라’는 말의 의미가 ‘교회 공동체의 건강(온전함)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소개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의미를 단지 건강(온전함)으로만 해석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보다 더 바람직한 주장은 있다면, 그 것은 이 구원을 ‘교회 공동체의 종말론적 구원’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구원은 교회라는 공동체 전체의 궁극적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문장의 앞뒤 문맥을 보면, ‘다툼과 분쟁을 일삼지 말고 겸손과 사랑으로 서로 돌아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는 교회 공동체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저는 개혁주의(신학)에서 전통적으로 말하는 개인의 ‘성화적 구원’ (종말에 나타날 구원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여전히 지지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러한 개인의 성화적 구원은 ‘교회 공동체의 종말론적 구원’ 이라는 의미와 대립 되거나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씀 드렸습니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개인의 신앙 성숙(성화적 구원)은 결국 교회공동체의 종말론적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점에서 우리는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에 광야에 있게 하신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풍요로운 가나안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 인도하지 않고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머물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래동안 애굽에서 살았던 생활 방식들, 즉 타락한 애굽문화와 세상적인 죄의 습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답게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훈련하시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바로 들어가게 되면. 400년간 애굽의 종살이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고 타락하고 음란한 가나안 문화와 우상 숭배에 쉽게 물들어 갈수 밖에 없음을 아셨기에 광야의 삶을 통해서 율법과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한 삶을 훈련시키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부르셨고 그 결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은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 살아갈때가 있습니다. 영혼은 거듭난 신자이지만 우리의 생각과 습관은 여전히 거듭나지 못하고 세속적인 생각과 욕망을 쫒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러한 세상 속에서 구별되고 거룩한 삶을 살아 가도록 이 땅에 교회(공동체)를 세우셨고, 교회를 통하여 신자들의 영혼이 성숙해져 가고 온전해져 가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협력하여 신자의 거룩함을 이루어 가도록 이끄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신자들이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영화로운 구원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성화적 구원의 과정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오늘 본문 2장13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한글성경에는 번역이 안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헬 “갈” γάρ)과 영어 성경(“for”)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뜻의 접속사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 한글 성경은 본문 13절에서 문장이 끝나지 않고 14절까지 포함해서 한 문장을 이루고 있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13절에서 한 문장이 끝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원문대로 12-13절을 해석하면, ‘…너희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어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의 선한 목적 (기쁘신 뜻)을 위하여 할수 있도록 너희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라는 의미입니다. 다시말해서,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것이 나의 의지와 나의 노력으로만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룩한 갈망을 주시고 또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공급해 주시는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고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것들 까지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마음과 생각을 주시고 또 그렇게 할수 있도록 은혜와 힘을 주셨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우리안에 하나님을 경외하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한 주시고 우리가 그러한 믿음의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봉사와 헌신의 삶, 그리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인도 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은혜 안에서 종말에 누릴 영화로운 구원의 그날이 오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데 힘쓰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곧 신자 개인의 성화적 구원이요 동시에 종말론적 교회 공동체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믿음의 경주를 하는 날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