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27강 그리스도를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2) 빌 3:4-9
4.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은 당시에 존경 받았던 율법 학자요 바리새인으로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로마의 철학과 학문을 배운 당대의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가문과 타고난 재능과 종교적인 지위와 특권을 누리며 살아갈수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나서 이러한 모든 것들이 배설물과 같이 무가치하다고 오늘 본문에서 선언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시간에 7절의 말씀을 설명하면서, 한글 성경에 나오는 ‘유익’과 ‘해’라는 두 단어는 원문에 의하면 ‘이익’과 ‘손해’를 가르키는 상업적인 용어들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NIV영어 성경에서도 이익과 손해를 의미하는 ’profit’ 과 ‘loss’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도 드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었던 자신의 업적과 종교적인 특권들, 특별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붙잡었던 과거의 모든 율법주의적인 생활들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는데 손해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다 내려 놓았습니다.
특별히 3장 8절에 나오는 ‘배설물’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스퀴발론’ (σκύβαλον)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서 나오는 ‘배설물’이나 혹은 ‘음식찌꺼기’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을 보면 ‘Rubbish’ 즉 ‘쓰레기’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과거에 자신이 신뢰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자신의 업적들과 특권들을 쓰레기로 취급하면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에서 ‘안다’는 단어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 예로, 창세기 4장 1절을 보면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동침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야다’ 인데 그 뜻은 ‘안다’입니다. 즉, 이 단어의 의미는 부부의 성관계를 통하여 즉 ‘경험에 의하여 서로를 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그래서 NIV영어성경은 문장의 의미에 알맞게 ‘함께 누웠다’고 의역하고 있지만 KJV 영어 성경은 단어의 원래 뜻 그대로 ‘알았다’ 즉 ‘Knew’ 로 직역하였습니다.
헬라어로 ‘그노시스’ (γνῶσις)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안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 역시 ‘경험적으로 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한 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알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안에서 얻어진지식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해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영적 경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구원의 지식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오래동안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식적으로 알아 갈수 있고 혹은 신학교에서 체계적이고 학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배워서 알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그런 지식적인 차원을 넘어서 아는 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가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을 통해서 그분을 알게 될때 그것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는 것이 바로 구원이요, 영생입니다. 요한복은 17장 3절을 보면 예수님께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여기서도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진정으로 아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말씀합니다. 즉 이러한 구원의 지식은 단순히 성경의 지식을 배워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는 영적인 경험을 통하여 그 진리를 깨닫고 경험함으로서 알아가게 되는 참된 영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단적인 가르침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교회 안밖에서 활동하면서, 자신들이 구원에 이르는 특별한 영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신자들을 미혹했습니다. 이러한 이단적인 가르침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일때 성령께서 내안에 찾아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이요 그것이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3장 9절을 보시면 사도 바울은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 즉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말씀합니다. 다시말해서, 사도 바울이 얻은 최고의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얻게 되는 의’에 대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라고 합니다. 칭의란 쉽게 말해서 ‘의롭다고 칭한다’ 혹은 ‘의롭다고 인정해 준다’는 말입니다. 다시말하면 ‘칭의’란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붙잡고 예수를 믿게 될때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롬3장 20-22절과27-28절; 갈2장 16절 참조).
즉, 사도 바울은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고 율법을 지키는 열심으로는 따라갈 자가 없었던 사람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구원이 다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도바울은 율법을 잘 지킨다고 했던 자신의 자랑거리가 오히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손해가 되었고 장애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을 알았을때 자신이 가졌던 세상적인 특권과 자신이 추구했던 율법의 행위들을 다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곧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얻게된 ‘구원과 영생의 길’을 의미합니다. 이 인간의 구원과 영생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이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믿는 경험적인 지식이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최고의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이 인간의 영혼과 마음을 온전히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이 최고의 지식을 발견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잡고 이 복음의 지식을 전파하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다 쏟아 붇는 사람들이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보도 더 위대하고 더 귀한 지식은 없습니다. 그안에 구원과 영생의 길이 있습니다 .그 안에 우리의 삶을 풍성케 하시는 부요함이 있습니다 . 여러분의 삶이 그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