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28강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신앙생활(빌 3:7-11)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우리는 지난 시간에 본문 8절을 중심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오늘 조금 더 살펴 보면, 여기서 ‘아는 지식’이라는 이 표현은 헬라어 원문에서 ‘그노시스’ 즉 ‘아는것’ 이라는 한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원문의 뜻 그대로 번역하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아니라 ‘ 그리스도를 아는 것’ 바로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는 창세기 4장 1절의 말씀을 통하여 ‘안다’는 말의 의미를 설명드렸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장 25절을 통해서 한번 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 25절을 보면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고 했다’는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동침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원문에서 ‘안다’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1장 25절에서 ‘동침하지 않았다’는 이 말씀을KJV 영어 성경은 ‘알지 못했다’고 번역하고 있고 NIV 영어 성경은 ‘연합하지 않았다’고 문자 그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부부가 서로를 안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친밀한 연합의 관계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아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안다’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차원을 넘어서 인격적이고 실제적인 관계를 통하여 이해하고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한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음으로써 얻게 되는 구원과 영생을 포함하는 말’이라고 지난 시간에 설명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사도 바울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는 말의 의미를 좀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래전에 ‘사도 바울도 세상 지식을 배설물처럼 여겼는데 대학교를 가면 뭘하느냐 신앙 생활만 잘 하면 된다’고 말씀한 사모님이 있었습니다. 몇년전에는 어느 교회의 장로님과 여전도사님이 ‘세상 학문은 쓸데 없으니 신앙 생활만 열심히 하라’고 청년들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학문과 지식을 쓸모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오늘 본문의 가르침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배운 학문과 지식을 활용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13권의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17장 18절의 내용을 보면 사도 바울은 그리스 아덴에서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들과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을 만났을때 자신이 가진 지식들을 사용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배설물과 같이 여겼다’는 말의 의미를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다시말해서, 사도 바울이 자신의 학문과 세상 지식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다’는 말은 이전에 자신의 종교적 학문적 배경을 자랑했던 자신의 삶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적인 지식이나 세상적인 학문도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 과는 비교 될수 없는 배설물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가 배운 지식과 세상 학문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용되어 질때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10-11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한국어 성경은 10절과 11절이 두 문장입니다. 그러나 헬라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을 보면 10절과 11절은 두개의 문장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문장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10절을 보시면, ‘기노마이’ 즉 ‘ 알고자 하여’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8절에 나오는 ‘그노시스’ 즉 ‘아는것’ 이라는 단어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8절과 10절에 나오는 두 단어들은 모두 ‘알다’는 의미를 가진 한 동사에서 나온 단어들입니다. 이 두 단어가 강조하는 차이점을 생각해 본다면8절에서 ‘아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영생의 지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10절 말씀에서 ‘알고자 하는 것’은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10-11절의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부활 신앙을 가지고 매일의 삶속에서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권능을 통해서 예수를 알아간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린도 전서 15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임을 믿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먼저 고린도 전서 15장20절을 보면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말씀합니다. 그 다음 15장 51-52절을 보면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나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결론인 15장 57-5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사도 바울이 내리는 결론은 ‘그러니까 우리가 흔들리지 말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한 모든 수고는 장차 우리가 부활해서 주님앞에 갔을때 하나도 헛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이 부활의 능력은 우리가 세상의 유혹과 죄를 극복할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12-13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너희들도 세상의 죄가 너희 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부활을 확신하는 신자들,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죄의 유혹과 시련들 가운데서도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경험하고 더 깊이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난에 참여함으로써 예수를 알아간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때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9-30절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것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막8:34).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정직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손해보고 있다면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다가 오히려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면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경험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 생활은 어떻습니까? 말씀과 기도의 삶을 통해서 문제 앞에서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면서 살아가십니까?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인격적인 만남의 교제를 통하여 삶의 한 가운데서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소난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가는 신앙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