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푯대를 향하여 달려갑시다(2) 빌 3:12-16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아주 오래전 러시아에 한 가난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인생 목표는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수 있는 값비싼 외투 한벌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열심히 돈을 저축해서 자신이 원했던 값비싼 외투를 샀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다가 강도를 만나서 그 비싼 고급 외투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날 이후 그 노인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외투」라는 단편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열심히 달려 가다가, 인생의 종착지에 와서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사람이다’라고 고백하면서 후회없는 인생의 목표를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3장 1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인생의 내적 목표와 외적 목표를 동시에 의미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시말해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은 구원과 그 구원의 은혜를 누리면서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내적 목표와, 동시에 ‘주 예수께 받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외적 목표를 향하여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신앙의 경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의 경주를 위해서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달려가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과거에 얼마나 헌신적인 신앙의 삶을 살았든지, 혹은 우리가 과거에 얼마나 부끄러운 신앙의 삶을 살았든지 간에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신앙의 경주를 계속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본문 3장 15절을 보면 ‘누구든지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사실상 이 문장은 그 원문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온전히 이룬 자들”은 누구를 누구를 의미하는지 우리는 문장의 컨텍스트(상황)를 통해서 추측해 볼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때 우리가 한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헬라어 ‘텔레이오스’(teleios)라는 단어가 ‘완성된, 온전한, 성숙한’ 이라는 뜻이 있는 단어이고, 그래서 어떤 단어의 의미로 번역하는가에 따라서 문장의 의미가 달라 질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떤 해석자 (Hawthorne)는 ‘텔레이오스’ (teleios)를 ‘완전한’ 혹은 ‘온전한’ 이라는 의미로 번역해서 율법을 지킴으로서 스스로 완전하다고 여겼던 유대인들로 해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이 사도 바울 자신을 포함한 문장으로서 12-14절에 대한 결론(“그러므로”)으로 이해할때 다소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 (RSV, NKJV, NIV…)은 ‘텔레이오스’(teleios)라는 단어를 ‘성숙한’(muture)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3장 14절의 의미는 ‘누구든지 우리와 같이 성숙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자들 또 그와 같이 다른 일들을 생각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그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실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아무튼 이 말씀을 보면, 아마도 빌립보 교회 안에는 사도 바울과 같이 스스로 성숙하고 온전한 신앙인이라고 생각한 신자들이 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그러한 것들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친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3장16절에 가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던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사실 신자들은 그 신앙의 성숙도에 있어서 각자가 다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신앙이 어떤 수준에 이르렀던지 거기서 중단하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의 경주를 하는데 있어서 더 멀리 달려간 신앙의 경주자도 있고 이제 막 출발선에 있는 신앙의 경주자도 있지만 그것들을 상관하지 말고 각자 최선을 다해서 신앙의 경주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요, 그분의 ‘거룩함과 온전함’을 향해서 신앙의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분명한 삶의 목적 의식과 신앙의 목표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분명한 삶의 목적 의식이 있어합니다. 뚜렷한 신앙의 목표의식을 가지고 인생을 달려 가야합니다.
신앙 생활은 잠시 쉬어가는 휴식처나 피크닉 장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앙 생활을 영적인 전투로 묘사하고 있고, 일하는 농부로 묘사하고 있고, 경기장에서 달음질 하는 선수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뚜렷한 목적이 있고 생명이 다할때까지 최선의 노력과 인내심이 요구되는 경건의 생활이 바로 신앙 생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뚜렷한 신앙의 목표를 가질때 우리의 신앙은 유혹에 빠지지 않고 방황하지 않습니다. 이 뚜렷한 신앙의 목표를 가질때 고난과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하늘의 상을 얻기 위하여 달려가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3장16절에서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신앙의 단계에 와 있든지 우리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달려가야 합니다. 매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경건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 의식이 없는 신앙 생활은 마치 구약에 나오는 삼손의 모습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삼손은 태어날때부터 하나님의 선택받은 나실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는 하나님께 받은 초인적인 힘이 있었고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사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신앙 생활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나실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신앙의 목적 의식도 없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으로 부터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 의식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 하루를 즐기는 삶에 만족하면서 방종에 가까운 삶에 빠져 들다가 결국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서 두 눈이 뽑힌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시대에도 삼손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지만 그 사명을 잊어 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영적인 권세와 영적인 힘을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한채 이 세상을 살다가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들은 단지 구원의 문을 넘어섰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목적의식도 없고 신앙의 목표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뚜럿한 목적의식 속에서 이 땅에 교회들을 세우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부름의 상을 얻고자 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고자 달려갔습니다. 그러면서1장 21절에서 고백하기를 ‘내게 살아 있는 것은 그리스도 뿐이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는 것이 나의 유익’ 이라고 고백했습니다(1장21절). 이와같은 사도 바울의 삶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따라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려는 외적인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내적으로는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품에 이르도록 계속해서 성장하고 성숙해 가야 합니다.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하늘의 상을 바라보면서 달려 가는 여러분의 신앙 생활이 되시길 바랍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