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35강 주안에서 누리는 기쁨(1) 빌 4:4-7
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스코틀랜드의 ‘제이니’라는 교수는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면서 그리스도인의 기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 했습니다. “기쁨은 일종의 깃발과 같은 것입니다. 성에 깃발이 걸려 있다는 것은 그 성에 왕이 머물러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얼굴에 기쁨이 있는 것은 그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다는 표시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그 생활이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4장에 불과한 빌립보서 편지에서 ‘기쁨’이라는 단어를 16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빌립보서 3장 1절에서는 “주안에서 기뻐하라” 고 말씀한 후에, 오늘 본문4장 4절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뻐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서 이 편지를 기록하였습니다. 내일 일을 알수 없는 불안과 초조함속에 있을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내적인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기쁨에 대한 글을 쓸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기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사도바울은 그 기쁨의 원천을 “주 안에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1절에서 ‘주안에 서라’고 말씀하고 있고, 4장2절에서는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4절에 가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한 후에, 10절에서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 안에 있는 신자가 기쁘게 살아갈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요한복음 15 장 4절에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주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또 이 기쁨은 갈라디아서 5장의 말씀과 같이 말씀과 같이 우리 영혼에 충만하게 임하신 성령의 열매로서 나타나는 기쁨입니다. 이러한 기쁨이 오직 예수님 안에 거할때만 누릴수 있는 영원한 생명의 기쁨이요 천국의 기쁨입니다. 하지만 사단은 우리가 주님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기쁨을 빼앗고자 수많은 장애물 놓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두려움과 근심과 유혹과 환란을 통하여 끊임 없이 기쁨의 통로를 막고 있습 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혼의 기쁨은 잃지 않으려면 하루 하루를 믿음에 굳게 서서 기도와 말씀의 삶을 살아가야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영혼의 기쁨을 잃어 버리는 요소들 중 하나가 바로 인간 관계를 통하여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합니다.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인간 관계속에서 우리는 종종 쉽게 오해와 불신을 갇기도 하고 서로에게 원망과 불평과 미움을 갖게 됨으로서 기쁨을 잃어 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사도 바울은‘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오늘 본문 4장 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한글성경에서 ‘관용’이라고 번역한 이 단어는 헬라어로 ‘에피에이케스’ (ἐπιεικὲς)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에 대한 나쁜 감정을 절제하는것, 그리고 그러한 상대방을 너그럽게 받아주고 친절을 베푸는 행위’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NIV 영어성경에서 ‘gentleness’ 즉 ‘온순함, 부드러움’ 등의 의미로 번역하고 있고 KJV 영어성경은 ‘moderation’ 즉 ‘ 중용, 즉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절제된 마음이나 태도’를 의미하는 단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상대방의 실수와 허물에 대해서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이해해주고 받아주고 친절을 베풀어 주는 것이 관용입니다. 이러한 관용이 베풀어질때 상대방에게 그리고 자신도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 5절은 우리가 마음을 넓혀서 관용을 베풀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1]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The Lord is near” (NIV). ‘주께서 가깝다’는 이 말은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두가지 차원에서 해석이 가능한 문장입니다.
다시말해서 장소적인 개념으로는 ‘주께서 가까이 계시다’ 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고, 시간적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날이 가깝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용을 베풀어야 할 이유는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주님께서 용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악한 자들을 친히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뻐할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또 우리가 마음을 넓히는 관용의 마음을 가질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기도입니다. 이 사실은 본문 4장 6-7절을 통하여 알수 있는데,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기도는 기쁨의 통로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근심과 염려와 두려움을 내보내고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을 우리 안에 흘러 들어오게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 장16-18절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뻐하는 생활과 기도 하는 생활과 감사하는 생활은 서로가 뗄수 없는 상관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을 할때 관용의 마음을 가질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관용의 마음을 가지고 항상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물론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들만 바라보면 감사하기 보다는 불평을 하게 되고 그래서 기도할 수 없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감사하면서 기도하게 된다면 거기에 은혜와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는 천국의 소망안에서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안에서 즐거워한다’(롬5:2-4)고 말씀하고 있고, 사도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 . (벧전 1 :8-9)고 말씀 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육체적인 쾌락, 성취감, 우월감, 소속감, 동질감 등등 다양한 종류의 기쁨이 있고 사람들은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기쁨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종류의 기쁨들을 넘어서는 영혼의 기쁨이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외부의 환경과 상관없이 주님과 동행하며 누리는 기쁨입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관용을 베품으로써 누릴수 있는 기쁨이요, 감사하는 마음의 태도와 기도의 삶을 살아갈때 누리는 기쁨입니다. 이러한 기쁨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6장13절에서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관용의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