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39강 향기로운 제물(빌 4:14-20)
14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우리는 지난 시간에‘내가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씀하면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한 사도 바울의 고백을 나누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사도 바울이 ‘이제는 더 이상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한 말은 아 니었습니다.
오늘 본문14절의 내용을 보면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사도 바울을 돕고자 빌립보 교인들이 보낸 사랑의 헌금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자신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는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함께 참예하였다’는 ‘쉬그코이네 산테스’(συγκοινωνήσαντές)라는 단어는 “쉰” (함께) +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ᾳ)라는 단어의 합성입니다. 사도 바울은 1장 5절에서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 (“코이노니아)하고 있다’고 이미 언급하 바 있습니다. 즉,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ᾳ)라는 단어가 ‘친교, 교제, 봉사, 나눔, 헌금’ 등의 다양한 뜻으로 쓰여지고 있으니 본문 4장 14-19절의 문맥에서는 ‘참여’ 또는 ‘상호협력’ (participation/partnership)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본문 4장 15- 16절 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은 여러 지역에서 교회들을 세웠지만, 그가운데 오직 ‘빌립보 교회만이 특별히 나를 생각해 주었고 나의 쓸것들을 공급해 주면서 나의 고난에 참여했다’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교회를 통하여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고 섬김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말씀하시기를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누가복음 10장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8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선교지에서 자신의 생계 유지를 위해서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비량 선교를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자비량 선교를 했습니다 (살전 2: 9).
하지만, 고린도전서 9장 12-14절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권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교회에서 받아야 할 정당한 댓가를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도 복음을 전하는 수고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받지 않는 이유는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이 당시의 철학자들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자신들의 가르침이 훌륭하고 그래서 교사로서 자격이 있다고 인정을 받게 되면 그 지역에 머물러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진리를 가르쳐 주는 댓가로 먹을 것과 급료를 얻게 되는 것이 당시에 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교회의 신자들이 이러한 세상적인 사고 방식으로 사역자에게 급료를 지불하면서 주인행세를 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서 생명을 전한는 복음이 돈의 값으로 매겨지면서 싸구려 진리 취급을 받는 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후서 11장 8-9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즉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그 교회로부터 생활비나 사례비를 받지 않았지만 그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사실 너희들이 나의 생활과 선교활동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는 것이 마땅한데 그러지 못해서 다른 여러 교회에서 도움을 받은 것은 마치 내가 남의 것을 빼앗는 것처럼 큰 부담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자비량 선교를 한것은 단순히 교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신자들의 믿음이 약하고 성숙하지 못해서 그들의 신앙 생활과 복음전파에 장애가 될까봐 스스로 조심스럽게 처신한 것 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들을 세우고 그곳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동안에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보내준 헌금을 받아서 필요한 것들을 보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빌립보 교인들의 헌신과 사랑이 사도 바울에게는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17-1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풍족하고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헌금이나 어떤 선물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바울이 더 바라는 것은 성도들의 삶이 믿음의 열매로 가득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보내준 빌립보 교인들의 헌금은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향기로운 제물’ (a fragrant odor and sacrifice:NIV) 은 구약시대에 짐승을 잡아서 불에 태우는 제사와 관련된 말입니다 (레 1:2-23). 이처럼 성도들의 믿음과 헌신이 담겨 있는 헌금과 예물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성경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을 향한 우리의 모든 선행과 구제도 이러한 제사라고 말합니다 (히13: 16). 그러므로, 교회안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누어 주는 삶을 사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제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잠언서 11장 24-25절에서는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계산적으로 생각해 보면 구제하고 나누어 지면 더 모자라고 부족해 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나누어 주고 구제해도 더 풍족해 지는 은혜의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4 장19절의 말씀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 또 이웃을 위해서 사용할때 그 보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의 모든 쓸 것을 풍성하게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모든 것”은 물질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글 성경은 “쓸 것”이라고 번역했지만 헬라어 “크레이아” (χρεία) 는 ‘필요’ (Need)라는 의미입니다. 즉 물질주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행복의 열쇠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교회와 이웃을 섬기고 베푸는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그것들을 향기로운 제물로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될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주시고 그로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빌 4:20).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