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7강 죄와 하나님의 진노(롬 1:18-23)
“18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18-23)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광범위한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중에 하나는 전통적인 가치관, 권위, 도덕과 윤리, 그리고 절대 진리와 같은 기존의 가치들을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정신이라고 말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아 결혼전 동거나 이혼, 혹은 동성애와과 같은 일들이 이제는 개인의 자유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받아 들여지는 세상이 되었고 더 이상 죄에 대한 절대적 기준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또 어떤 신자들은 죄에 관한 이 내용들이 불신자들에게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바울이 죄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 약 3장에 걸쳐서 자세히 다루고 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죄가 인간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고 인간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드는지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인간의 죄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얼마나 진노하고 영원한 형벌을 받기에 마땅한 것인지 깨닫게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결과,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복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바울은 1장17절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고 말하고 나서, 18절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부터 나타나나니’라고 대조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글 개역개정 성경과 NIV영어 성경은 17절과 18절을 연결하는 접속사가 빠져 없지만, 헬라어 원문에서는18절을 시작하면서 ‘갈’이라는 접속사를 사용하고, RSV와NKJV 성경은 접속사 (For:왜냐하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1장 18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라는 이 내용은3장 23절까지 이어지는 죄에 관한 내용에 대한 서론입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선언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죄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를 용서할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에서 나온 것이고, 죄에 대한 의로운 심판에 이르게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는‘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18절). 여기서 ‘불의로 진리를 막는 다’는 말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부하면서 죄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진노가 지금 현재 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법적으로 말하면 현재 진행형 수동태 문장으로서,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지금도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고 해석되는 문장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이세상 사람들에게 지금 현재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세가지로 설명할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진노는 바로 인간의 죽음과 피조물의 탄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을 읽어 보시면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인간의 온갖 질병과 죽음을 불러왔고 땅의 저주와 자연의 대재앙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이렇게 말씀합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롬 8: 22). 이 말씀과 같이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에 지금까지 인간의 죄로 인하여 온 우주 만물은 다 함께 고통을 겪으면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현대문명과 과학도 결국은 우리 자신들에게 재앙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진노는 죄인들을 버려 두는 그 자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은 인간이 허망하고 어리석어져서 점점 타락해 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 그 자체입니다. 잘못한 자식에게 부모가 내리는 가장 무서운 형벌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부자지간의 인연을 끊고 더이상 상관하지 않고 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1장 24절, 26절, 28절을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의 정욕대로, 그들의 부끄러운 욕심대로, 그들이 하나님 두기를 싫어 하는 마음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는 말씀을 세번에 걸쳐서 하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의 진노는 이러한 모든 일시적인 재앙과 비교할수 없는 영원한 형벌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후서 1장 8-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생명의 빛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습니다 (cf.시편 7편 11-13절).
그러나 동시에 지금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자 준비하신 은혜의 때입니다. 그래서 이 순간이 지나고 어느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게 될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를 내어주신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무서운 진노와 영원한 형벌을 통하여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죄를 짓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형벌을 피할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수 없습니다. 1장 19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종교성이 있고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을 찾아가도록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인간에에 부여하는 성품들입니다.
전도서 3장11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류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어느나라 어느 종족을 찾아가 보아도 거기에는 종교가 있다고 말합니다.
뿐만아니라 모든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이성과 양심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은 타락한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깨끗한 이성과 양심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천지 만물이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나는 하나님을 발견할수 없었다’고 핑게 할수 없습니다.
역사상 수많은 과학자들은 지구의 자전과 태양계, 그리고 은하계, 열역학법칙들과 유전 법칙들, 만유인력의 법칙, 상대성 이론 등을 발견했지만,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이세상 만물이 우연히 생겨서 우연히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더욱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변의 자연 법칙들은 우리 눈으로 볼수도 없는 미생물부터 너무나 크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우리가 볼수도 없는 대 우주가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신적인 능력으로 설계되고 창조되고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의 법칙들을 발견한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 보일, 멘델, 파스퇴르와 같은 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던 신앙인들 이었다는 사실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결국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느냐 아니면 거부하느냐의 신앙의 차이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이 스스로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함으로써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큰 죄요 가장 근본 적인 죄악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면 자신의 죄가 드러날까 부담스러워서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앞으로도 계속 죄를 지으면서 자기 뜻대로 살고 싶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3: 19-21).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죄악은 하나님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선한 양심과 선한 의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21-23절은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욕심과 정욕을 따라 살아가다 보면 점점 더 어리석은 죄악의 길로 들어서서 결국 타락의 길로 빠져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그것이 자신의 우상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을 우상으로 대치시켜버린 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죄요 가장 무서운 죄악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들 모두의 머리위에 동시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순간 나의 죄를 대신하여 피흘리신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하는 삶을 살아갈때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와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