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9강 인간의 자기모순과 죄(롬 2:1-5)
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2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사람들은 누구나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문제는 자기 모순에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했던 것과 똑같은 실수나 잘못을 스스로 하게 될 경우, 우리는 자신에게 너무나 관대하고 너그럽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굉장히 의로운 사람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1-12절을 보면, ‘하나님 제가 남의 것 도적질 안하고, 또 남의 세금이나 뜯어 먹고 사는 저기 있는 세리와 같은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기도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이러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일곱번이나 “화 있을진저”라는 저주에 가까운 책망을 하시면서 비록 겉은 깨끗해 보여도 그 마음 속에는 온갖 탐욕과 죄로 가득찬 그들의 위선을 아주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죄들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유대인들에게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을 통하여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이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들이 이방인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죄인들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이기 때문에 이방인들처럼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심판을 받지는 않을 의인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2장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바울은 로마서 1장 19절부터 31 절까지의 내용을 통하여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이방인들의 죄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만물을 통하여 계시하신 하나님의 신성을 부인하면서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한 마음 그대로 내버려 두심으로써 이세상은 점점 더 죄와 저주와 불행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바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아래 있는 것이요, 장차 임할 하나님의 심판때까지 하나님의 진노를 계속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렇게 이방인들이 받게 될 하나님의 진노와 종말론적 심판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심판에서 제외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오늘날 신자들 중에도 이런 크리스챤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같이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들은 세상 사람들 보다 더 의롭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cf.고후 6:1-2).
사도 바울은 본문 2장 3절에서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었던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수사학(문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이 말은 결코 피할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지만 그 사랑은 제한되어 있고 하나님의 자비가 너무나 크지만 그 자비도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27절을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은혜의 때가 지나고 나면 장차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본문 2장 4절에서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특별히 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그의 인자하심’ 이라는 이 반복적인 표현에 주의해서 보기를 원합니다.
여기서 ‘인자하심’이란 말을KJV 영어 성경은 goodness (호의)로 번역하고 있고, NIV 영어 성경은 kindness (친절) 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들은 모두 헬라어로 ‘크레스토테스’ (χρηστότητος)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와 같은 의미를 가진 구약의 히브리어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토브’와 ‘헤세드’ 라는 두 단어들입니다. 다시말해서 ‘선하심’은 히브리어로 ‘토브’인데 그 뜻은 ‘선, 좋은 것, 은총, 은혜’등을 의미합니다.
또 ‘인자하심’은 ‘헤세드’ 인데 그 뜻은 ‘사랑, 자비, 친절함, 은혜’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단어의 의미들을 함께 고려해 보면, 오늘 본문 로마서 2장에 4절에서 나오는 ‘인자하심’은 사실상 ‘하나님의 사랑, 자비, 친절함, 은혜’ 등을 의미하는 표현임을 알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말 성경에서 ‘토브’는 ‘선하심’으로 ‘헤세드’는 ‘인자하심’으로 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cf. 시23:6).
사도 바울은 지금 이러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네가 알지 못하고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네가 멸시하느냐’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죄인들이 끝까지 돌아오기를 기다리심과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사랑을 멸시하고 끝내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5절을 보면,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날 그 날에 받게될 하나님의 진노를 계속 쌓고 있다’고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마치 바늘 끝으로 죄의 중심부를 찌르는 표현이요 무서운 말입니다.
오래전 한국에서 교회 사역을 하면서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을 지켜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가르치고 전하는어떻게 인생의 말년에 하나님께 버림받는 삶을 스스로 선택 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15장 22-23절을 읽으면서 그 질문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얻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사무엘은 사울왕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끝까지 자신을 변명하면서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에 절하는 죄와 같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무서운 죄에 속한다’고 지적합니다.
한마디로, 사울왕이 버림받았던 결정적인 원인은 완고한 고집에 있었고 그것이 마음의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로 인해서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고집때문에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행하고, 죄 인줄 알면서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가 끊어진 사람은 그 누구든지 자기 고집이 커지고 그것이 자기 우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굽의 바로(왕)를 통해서도 볼수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자신의 고집 때문에 애굽의 온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결국 자신의 첫 아들부터 애굽땅의 짐승의 첫 새끼까지 다 죽임을 당하는 마지막 10번째 재앙을 겪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출애굽기 10장 1절을 보면,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만든 후에 벌을 주었다는 말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10가지 재앙의 이야기 속에 있는 중요한 변화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즉, 먼저 10가지 재앙이 시작되는 출애굽기 7-8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모세와 아론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고, 바로가 숨을 쉴만 하니까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완강하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가면서 출애굽기 9-10장의 내용으로 가면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기 때문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의 요구를 듣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다시말해서 바로가 악해진 것은 하나님이 먼저 그렇게 만드신 것이 아니가 자신의 강팍한 마음, 타락한 마음을 하나님이 그대로 내버려 두심으로써 바로 왕은 점점더 악을 향해 달려 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가 이렇게 되실것을 아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악역으로 사용하셨다는 말입니다. 마치 가롯 유다가 자신의 탐심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서 불행한 도구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러분, “자기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 이것은 모든 불행의 시작이요 저주의 시작입니다. 이 길이 바로 멸망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고집의 내려놓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겸손한 심령이 되어야 할줄 믿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모순을 안고 죄 가운데 살아가지만 그러한 모습을 발견할때마다 겸손하게 무릎꿇는 우리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