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칼럼
꿈과 해석
지그문트 프로이드(1856~ 1939)는 그의 정신분석학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책인 <꿈의 해석>에서 ‘꿈은 의식되지 않은 것(또는 심층 의식)의 욕구 충족’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프로이는 이러한 꿈을 두 가지 차원에서 해석했습니다. 하나는 의식적 영혼이고 또 하나는 성적이고 파괴적이며 충동과 욕구를 함께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인 정신(영혼)입니다.
프로이드의 제자인 ‘칼 융’은 꿈에 보다 발전된 형태로 꿈에 대해서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 꿈은 기억의 잔상입니다. 주로 우리가 잠에서 깨어도 기억하지 못하거나 내용이 정확하지 않은 꿈들을 말한니다. 두 번째로 꿈은 개인적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억압의 표출입니다. 즉 특별히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 표출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원형(Archetype)적인 꿈인데 이것은 집단 무의식의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의 계시나 환상이 주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칼융은 이런 현상에 대한 원인적 이유는 알지 못하나 현상학적인 형태로 존재하는것으로서 이를 동시성 (Synchronicity) 현상으로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동시성’ (Synchronicity)이란 우연히 그리고 동시적으로 발생한 두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칼융이 말한 이러한 동시성(Synchronicity)현상을 넘어선 예지적 (계시적)인 꿈들에 대하여 소개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꿈을 통해서 하나님을 뜻을 알려 주시는 경우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창세기의 내용을 보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광야에서 잠들었을때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야곱의 꿈, 그리고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을 암시하는 요셉의 꿈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랄왕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지 말라고 말씀하셔서 꿈을 통해서 아비멜렉의 범죄를 막으셨습니다.
또 다니엘서를 보면, 하나님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게 꿈에 큰 신상이 무너지는 꿈을 통하여 하나님이 세상 나라들과 역사를 주관하고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외에도 신약성경을 보면 주의 천사가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서 성령으로 임신한 마리아를 데려오기를 고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헤롯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할때 꿈을 통해서 미리 피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제 기억에도 아주 선명하게 기억나는 특별한 꿈들이 있습니다.
제가 예수 믿은지 얼마 안된 중학교 2학년 시절에 가족들 모두가 한 겨울에 전염성 옴(피부 가려움증)에 걸려서 가려운 몸을 긁어 대느라 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로 하나님께 하소연 하듯 기도했는데 꿈속에서 어떤 남자분이 따뜻한 물로 씻으라고 했습니다. 그후 약 3일간을 밤마다 따뜻한 물로 씻고 나서 피부약 한번 안쓰고 가족들이 모두 나았습니다.
제가 신학교(안양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같이 공부하던 같은 반 자매와 조금씩 가까워 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꿈에 그 자매와 학교 건물의 다리위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햇살이 머리위에 비추자 그 자매 얼굴이 마귀할멈같이 변한 것입니다. 그후 마침 그 자매를 그 다리 위에서 만났는데 하나님이 원치 않은 교제라는 확신이 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매는 사명자도 독실한 신앙인도 아닌 자매였습니다.
또 안양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강도사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이 교인들의 갈등이 심화되어서 결국 정면충돌의 대치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생생한 꿈을 꾸었는데 그 담임 목사님이 강단을 내려오는데 무당이 타고 다니는 가마를 타고 강단에서 교회당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저는 교인들 편을 지지하였기에 “강도사(내가)가 노회장까지 지내신 담임목사를 쫒아 내고 교회를 차지하려고 한다”는 큰 오해를 교단의 어르신 목사님으로 부터 들었지만, 지금 돌아보아도 그때의 일들은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외에도 여러 경우들이 있지만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꾸는 대부분의 꿈은 칼융이 말한것 처럼 기억의 잔상이나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표출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꿈을 너무 함부로 믿지도 말고 너무 의미를 부여 하지도 맙시다. 심지어는 꿈을 통한 영적인 미혹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또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속담이 있듯이, 생생하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꿈이라고 해서 자의적(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지금도 꿈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사실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욥기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 ( 욥기 33장 15-17절)
그러나 너무 꿈에만 집착한다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완전히 신뢰할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삶의 지표가 되고 삶의 기준이 됩니다. 즉 체험이 아무리 짜릿하고 우리를 흥분시켜도 거기에 지나차게 집착하게 된다면 우리는 미혹의 길로 빠져 들기 쉽습니다.
그러니 예민한 영적 감각도 필요하지만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경건한 훈련은 언제나 우리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특별한 꿈을 꾸던간에” 크리스찬으로서 깨끗한 마음과 신실한 믿음위에 겸손히 지혜롭게 행하기를 바랍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