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칼럼
죽음과 사별의 슬픔
오래전 자녀를 잃은 사별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던 중에 여러 곳에서 자녀를 잃은 사별의 소식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시드니의 한 교회에서 사역하던 어느 교역자의 자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고, 호주 애보리진 선교를 하던 한 선교사님의 자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일이었습니다.
또 제가 오래전에 한국에서 가깝게 지냈던 어느 집사님의 아들은 명문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원인을 모르는 병으로 갑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후에는 제가 섬겼던 교회의 주일학교 학생이었던 집사님의 어린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는데 집 앞에서 차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소식을 들었습니다.
며칠전에는 제가 아는 한국의 한 지인을 통해서 그 분의 (교회)여자후배 되는 분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내용인즉교회후배가 딸 둘을 데리고 예배 르르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초등학교 2학년인 큰 딸은 하늘 나라에 갔고 5섯살 된 작은 딸은 뇌출혈이 심해서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는 분들은 그런 갑작스런 사고를 당한 분들이 앞으로 견디어 내어야 할 그 시련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알지 못할것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제가 겪으면서 느낀점을 몇가지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로 갑작스런 사고의 죽음은 서서히 죽음을 기다리면서 죽음을 준비하며 세상을 떠나는 죽음과는 또 다른 차원의 큰 슬픔과 충격입니다. 왜냐하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런 일이?” 하는 질문속에서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고통을 감내해 가야 합니다. 그 만큼 그 충격이 그리고 마음의 상처가 오래 갈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지속적인 위로와 관심과 사랑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소식을 들을때 충격을 받고 슬픔을 느끼지만 당사자의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감정은 잠시 뿐입니다. 그러나 당사자의 가족에게 있어서 그 슬픔과 충격은 단지 시작일뿐입니다. 그 가족(특히 부모)은 이러한 정신적인 공황과 고통과 슬픔을 벗어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가 웃고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슬픔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번째로, 너무 쉽게 신앙적인 답을 주려고 한다면 또 하나의 상처로 남을수 있습니다. 종종 신자들은 너무나 쉽게 성경을 인용해서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큰 슬픔을 당하는 이들에게는 함께 울어주는것 외에 그 어떤 정답도 없습니다. 저의 이 글을 보고 네팔에서 사역하신 한 선교사님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아픔을 누가알까요?시간이 약이라고요? 시간이 흘를수록 내눈에는 눈물이 자꾸 흐르더군요. 천국에 소망이 없다면 어찌 살아가겠습니까? 위로하고자 하신 분은 아무말 말고 그저 힘께 있기만 하시면됩니다.”
또 사역자였던 동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어느 지인은 이런 고백의 글을 남겼습니다. “목사님 저도 동생을 보내고(난후), 강단에서 사명자는 죽지않는다는 말씀(을) 듣고 가슴치며 울었어요, 가족에겐 정말 아픔이 되더라구요.” 이처럼 사랑하는 사역자의 죽음을 경험한 이들은 죽음과 관계된 이러한 말조차 마음에 큰 고통과 상처가 될수 있습니다.
특별히,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욥의 이야기를 대입해서 ‘시련후에 축복’이라는 식의 말은 삼가했으면 좋겠습니다. 욥기서는 축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욥이 아무리 갑절의 보상을 받았어도 절대로 죽은 자식들과 비교할수는 없습니다. 저도 첫 딸을 잃고 지금은 세 자녀를 양육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자녀를 데려간 보상으로 받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 됩니까? 생명은 대리 보상이나 대리 축복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네번째로, 기복신앙과 인본주의적 생각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기복신앙과 인본주의적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비참한 죽음, 슬픔,고통 이런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또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을 이해할수도 없습니다. 저는 치유사역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쉽게 기복주의(성공, 축복등 )와 인본주의(적극적 사고방식 등)적으로 생각하고 이야기 하고 설교한다면, 실패한 사람과 병든사람 그리고 죽음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은 더 비참해 질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청년(전도사)시절에 교회 사무실 앞 도로에서 초등학생 두 자녀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버스에 깔려 죽은 사건을 목격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그 두 아이의 어머니는 그 현장을 보자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두 아이의 아버지를 위해서 사건 증인으로 경찰서를 갔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때 저는 부모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때 내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렇게 쉽게 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천국 소망을 소개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천국 소망이 있기에 이만큼 견뎌 왔는데, 그 부모님은 무슨 희망으로 세상을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딸을 잃은후 문득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때 복음을 전하지 못했던 일이 후회스럽고 가슴이 아픔니다.
어떤 사람도 위로해 줄수 없는 이러한 슬픔과 고통속에서도위로해 주실수 있는 분이 계십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4).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수 있는 진정한 복입니다. 우리가 위로해 줄 수 없는 사람들 슬픔과 고통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도록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모든 크리챤들이 되었으면 좋습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