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근 목사 칼럼
무너지는 시대에 필요한 ‘절로’의 철학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조선 중기 송시열 시인이 읊조린 이 구절은 단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억지 없는 순리대로 흐르는 인간 삶의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존재하는 이 ‘절로’의 정신은 급변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입니다.
언뜻 보기에 ‘절로’는 무위 (無爲),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연과 창조의 질서에 겸손히 순응하는 가장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인내로 결실을 맺듯, 진정한 성장은 조급함이 아닌, 시간과 정성 속에서 차근차근 자라나는 성숙에서 비롯됩니다. 포도나무인 예수님에게 우리가 가지로서 붙어있을 때 자연스레 열매가 맺히듯, 신앙 또한 억지나 급속한 성장을 강요할 때보다, 그 안에 거하는 삶을 통해 자연스레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한 사람의 삶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도 적용됩니다. 튼튼한 기초와 정직한 재료, 순서 있는 공정이 있어야 오래가는 건축물이 되듯, 관계와 믿음으로 세워지는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가 단지 기술적 실패가 아니었듯, 질서를 무시한 채 오직 속도와 외형만을 추구하는 공동체는 결국 속부터 무너져 내리기 마련입니다. 속도는 결코 견고함을 대신할 수 없고, 일시적인 성취는 정직성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한국가의 장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빨리빨리’의 문화 속에서 삽니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정보는 실시간으로 쏟아지며, 모든 것이 초고속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삶의 깊이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얕아진 관계, 조급해진 성장, 피로에 지친 공동체는 이 속도 문화가 남긴 아픈 흔적들입니다. ‘절로 자라지 않은 나무는 뿌리가 약하고, 절로 익지 않은 열매는 맛이 없다’는 옛말처럼, ‘절로’의 철학은 이 시대에 대한 경고처럼 들립니다.
성경이 속도보다 인내를 강조하듯, 진정한 가치는 천천히 쌓아 올린 시간 속에서 빛을 발합니다. ‘절로 철학’은 현대 사회의 속도 경쟁에 맞서는 ‘느림의 예언’입니다. 이는 게으름을 위한 변명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와 질서에 순응하며 우리 삶과 공동체가 맺어야 할 깊고 충실한 열매를 위한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잠시 멈춰, 우리도 ‘절로’의 원리를 되새겨볼 때입니다.
누가복음 8장 15절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구약과 신약의 비교
구약과 신약을 비교하면 흥미롭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하나님의 구속사적 흐름을 이해하고, 신앙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데 깊은 통찰을 줍니다.
구약 시대의 신앙인은 율법을 지키고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노력과 행위에 의존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반면 신약 시대의 신앙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이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행위 중심의 질문에서 벗어나, “주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깨닫고 은혜에 감사하는 자세로 나아가게 합니다. 신약의 신앙인은 자신의 노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살아가는 겸손한 태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신앙인에게 하나님은 거룩하고 두려운 존재였으며, 제사장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멀리 계신 분으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며,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닌 사랑과 친밀함의 대상으로 여기는 자세를 요구합니다. 신앙인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대화하며 동행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분을 삶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아버지로 모시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신앙인은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며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자신들의 현실적인 문제, 즉 정치적 억압을 해결해 줄 왕으로 오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예수님은 단순히 정치적 지도자가 아닌,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이는 신앙인에게 막연한 기다림이 아닌, 성취된 구원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자세를 촉구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 살며, 십자가의 의미를 삶에서 실현하는 능동적인 신앙인의 모습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공동체는 혈통과 율법으로 규정된 배타적인 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교회는 혈통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한 공동체를 이룹니다. 이는 신앙인에게 특정 집단이나 문화에 갇히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포용하는 자세를 가르칩니다. 신앙의 공동체는 이제 울타리가 아니라,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 되어야 합니다.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사랑으로 연합하는 넓은 마음을 품는 것이 신약적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결론적으로, 구약과 신약의 비교는 신앙인에게 더 이상 형식적인 행위나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은혜와 사랑을 바탕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세상을 포용하는 삶의 태도를 갖도록 인도하는 영적 지침서가 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장 8-9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자석처럼 영향력을 가진 사람의 특징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은 말보다 존재로 끌어당깁니다. 그들은 마치 자석처럼, 보이지 않는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이끕니다. 그 영향력은 세 가지 삶의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은 혼란 속에서도 길을 보여줍니다. 그는 현실을 넘어선 희망을 말하며, 사람들에게 “함께 가고 싶은 미래”를 그려줍니다. 그 비전은 단순한 계획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성을 담은 등불입니다.
경청하는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읽습니다. 그는 상대의 고통과 기쁨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며, 침묵 속에서도 깊은 공감을 나눕니다. 경청은 신뢰의 문을 여는 열쇠이며, 관계의 중심을 잡아주는 힘입니다.
희생과 헌신의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그는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고, 묵묵히 걸어갑니다. 그 삶의 흔적은 사랑의 무게로 남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한 끌림이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말로 설득하지 않아도, 삶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그 초대는 곧 변화의 시작이 됩니다.
빌립보서 2장 4절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김병근 목사
시드니성시화운동 대표회장, 엠마오상담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