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4)
앞으로 여러 회에 나누어 연재될 이 글은 ‘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일부 업데이트하고 전재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제1장 성공적인 유학의 조건
2. 지식과 언어, 어느 쪽?
영국 사람이 미국에 유학(또는 그 반대)을 하거나 과거 영연방국가나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곳에서 자라 영국계 또는 프랑스계 학교를 다니다가 영국, 미국 또는 프랑스에 유학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한국인이 이처럼 어려서부터 외국어를 자연스럽게 배워 그 말을 쓰는 나라로 유학을 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만큼 한국인의 유학에는 언어의 문제가 대개 가장 크고, 당연히 한국의 유학 붐은 외국어 공부에 대한 붐을 수반하게끔 되어 있다.
지식과 언어는 서로 불가분으로 얽혀 있다. 지식은 분석의 결과인데, 분석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개념의 규정과 개념간의 관계 설명을 전제로 한다. 언어는 그 과정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다. 사회과학의 경우는 그 개념과 개념간의 관계가 구체성보다 [추상성/conceptualization]에 입각해 있어 그림이나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우므로 더 그렇다. 지식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돼야 하고, 장래 이용을 위하여 보존되어야 하는데 언어가 그것을 가능케 한다.
반대로 머릿속에 지식의 체계가 없으면 언어를 아무리 잘 구사해도 분석적으로 쓰고 말할 것이 없어진다. 좀 학술적인 표현을 빌려 말하면, 공부는 [언어적/linguistic]인 것과 [인식적/cognitive]인 것의 두 측면을 갖고 있다.
공부방법을 논하면서 언어의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유학생들이 겪는 공부의 어려움을 전부 외국어로 돌려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해외에서의 공부가 어려운 이유 중에 어디까지가 언어 때문이고, 어디까지가 실력 때문인가를 따져 봐야 한다. 그 구별이 어렵다.
어떤 학생은 실력이 좋아 과정을 따라가기에 충분하지만 그것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수단인 언어가 문제일 것이고, 어떤 학생은 언어도 문제지만 지식의 부족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모든 문제를 외국어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다. 이처럼 공부의 두 측면을 인정한다면, 유학생은 성공적인 유학을 위해 [언어실력/language skills], [머리실력 또는 지력/知力/cognitive skills], 그리고 [공부방법/study skills]의 세 차원에서의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
영어가 덜 필요한 학과
이러한 유학공부의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 한국인 유학과 관련, 아래 몇 가지 가정과 일반론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한국인에게는 언어가 구조적으로 한국어와 유사한 일본에서의 유학이 영어사용 국가에서의 유학보다 훨씬 수월할 것이다.
(2) 자연과학과 기술 분야의 경우에는 언어와 지식간 구분이 비교적 명확하며, 언어 때문에 지식의 활용이 제약 받을 가능성이 덜하다. 연구와 분석과 전달방식이 국제적 공통어라고 할 수 있는 기호, 숫자, 공식, 방정식, 도표, 그래픽과 그림 등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일부 비자연과학분야와 수학, 통계학, 수리경제학, 전자공학, 경영학, 회계학, 음악, 컴퓨터과학 분야가 모두 그런 예다.
호주에서 대학 입시는 주별로 실시하는 국가시험과 고등학교 성적을 중심으로 결정되는데 영어가 약한 한국 학생들이 수학, 화학, 물리학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현지 학생들도 들어가기 어려운 영재 중고등학교나 대학의 의과, 법과 등 인기 학과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다.
(3) 이 문제는 앞서 언급한 구체성과 추상성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공부하는 대상이 구체적이기 보다 추상적인 영역으로 갈수록 언어의 역할은 커진다. 눈으로 보고 실제 해봄으로써 배우는 [모방학습/learning by imitation, 또는 by example]이 주가 되는 실기 위주 분야는 추상성보다 구체성이 높은 예이며, 상대적으로 언어의 역할은 적어진다. 의학, 간호학, 패션,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건축, 요리 등이 그런 예가 될 것이다.
3. 유학 마케팅 – 학위 쉽게 준다는 말 아니다.
서양의 대형 건축회사 세일즈맨들은 언제나 매우 상냥하고 친절하다. 필요하면 몇 번이고 찾아와 디테일을 설명을 해준다. 그러나 일단 계약서 서명이 끝나고 공사에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세일즈맨과 공사 팀은 부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공사팀장은 계약서에 적힌 대로 공사를 진행해 간다. 이의를 제기하면 딱딱하다.
유학 결정도 이와 좀 같다. 긴 입학수속 끝에 학교에 도착, 교실에 들어가 보면 유학 박람회장 부츠에서 만났던 유학 대행업자들과 외국대학 국제교육 담당자의 부드러운 태도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 기다리고 있다.
외국 대학과 유학원 직원들이 판촉활동을 하면서 보이던 성의와 열의와 친절을 학교에 가서도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유학생이라고 따로 봐줄 사람은 학교 안과 밖 어디에도 없다. 학교 직원들은 주어진 업무와 책임을 사무적으로 집행할 따름이다. 이것은 유학으로 현지, 특히 대도시에 와 본 사람이면 거의 누구나 느끼는 심정이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재정이 어려운 작은 학원이 아니고 괜찮은 고등학교와 대학의 교사와 교수들은 유학생 때문에 학교가 운영된다는 생각을 전혀 안하며, 유학생을 특별히 배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목소리가 큰 자국 학생들에게 신경을 더 쓴다.
구미 대학에는 아시아인 유학생에 대하여 아주 무관심하거나 불친절한 교수가 더러 있다. 많은 보고서는 영미 학교 교사와 교수들이 말 잘 안통하고 문화가 다른 아시아 학생들 다루기를 귀찮게 여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간을 많이 뺏는다는 불평이다. 재정 때문에 상황이 달라지고는 있지만, 많은 초중고학교들이 같은 이유로 아직 유학생을 안 받고 있다. 이것을 인종차별과 연관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대학의 유학생 판촉 활동은 행정 요원이, 교육은 교수진이 맡는데 한국의 경우와는 달리 양 부서 간 긴밀한 협의가 대개 없다. [학사/academic affairs]와 [행정/administration]은 우리의 경우보다 훨씬 서로 독립적이다.
멜번의 스윈번대학교 경영대학의 한국비즈니스 담당인 바바라 에반스 교수는 “문교성이나 각 대학 행정담당자들은 유학생 유치에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교수들에게 외국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따로 지침을 만들거나 요청하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같은 대학의 유학생 지도담당 책임자인 이안 매코믹씨에 따르면 “대학이 교수들을 대상으로 유학생 문제, 지도 방식 등에 대한 공동 세미나를 열어 이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고자하지만 이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그만이다”라고 토로한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대부분 인기 있는 영미 대학의 분위기는 지금도 그대로다. 유학생의 대거 유입으로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일반의 비난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유학은 관광이 아니다.
어느 분야든 세일즈는 같다. 유학 박람회나 설명회에서는 비디오와 화려한 브로슈어를 이용, 유학국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낭만적인 대학 캠퍼스 분위기 등을 보여준다. 그러나 유학생들에게 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 유학의 어려움, 특히 공부의 어려움에 대하여 미리 주의를 환기시키는 일은 잘 안한다.
그 결과 허상으로 가득 찬 많은 학생들이 현지에 도착하고 전혀 다른 실상을 깨닫게 된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강의에 하루 몇 시간씩 앉아 있는 고역은 물론, 밀려오는 숙제의 중압감을 이겨야 한다. 이때가 되면 아름다운 경치고 뭐고 다 소용이 없다. 유학은 관광이 아니다.
유학생들을 따로 봐주지 않는 점은 현지 사회의 사람들도 같다. 경찰은 현지법을 잘 모르는 외국 학생임을 감안 위법을 너그럽게 처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 때문에 억울한 대접을 받는 일이 흔하다. 복잡한 슈퍼마켓의 출입구를 잘 못나가 좀도둑으로 몰리는 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오해로 여성 집주인을 겁탈하려했다는 혐의를 받은 사건 등 많다. 후자의 경우 거주국 정부는 해당 현지인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유학생을 추방시킨 바 있다.
시드니에서 한번은 한국 팀이 참가하는 축구경기 도중 한 유학생이 관중석을 벗어나 경기장에 들어와 응원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구금되고 기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동차 접촉사고, 그 외 여러 규칙 위반 사항과 관련, 우리나라에서처럼 외국인이라고 법원과 경찰이 봐주는 일은 서양사회에서 드물다. 이것은 호주의 이야기고 인심이 험악한 뉴욕, 런던 같은 대도시에서는 더 하다.
영미국가들이 유학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느라 판촉활동을 대대적으로 벌임으로써 한국에서 해외 대학의 상업주의 측면이 부각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시각이 학생들로 하여금 해외 대학도 타락하여 돈만 낼 수 있으면 쉽게 학위를 따올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한다면 큰일이다.
해외 대학들은 유학을 마케팅 하는 것이지 학위를 마케팅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내고 유학을 많이 와달라는 거지 학위를 쉽게 준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엉터리 학교가 있겠지만 대부분 알려진 해외 학교들은 그렇지 않다. 유학에 실패한 사람들은 돌아가 그 나라와 대학에 대하여 나쁜 말을 하게 되어 있다. 건물이 한국에 비하면 초라하고 변소 같다, 교사의 질이 낮다 등이다. 이런 불평은 원님 지나간 후 나팔 불기다. 한국과 현지에서 책임 있는 유학 지도가 필요한 대목이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