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34)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6장 해외유학 공부 – 박사 따기 그렇게 어려운가?
3. 박사과정의 두 모델 – 북미식과 영국식
(나) 여러 번 칠하는 페인트
북미식의 장점 하나는 연구 경험이 적은 후보생이 초기 길을 잘 못 들어서 헤매게 되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지적한대로 북미식에서는 학생은 논문 쓰기에 앞서 코스워크와 위에서 언급한 종합시험을 치루는 등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어떤 논문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감각과 지식을 갖게 된다. 지도교수도 혼자서 모든 책임을 떠맡지 않아도 된다. 호주에 교환교수로 와 있던 미국 위스컨신대학의 솔로몬 리바인 교수는 미국에서는 종합시험 단계에서 후보생 중 약 절반이 학위를 계속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고 말한다.
또 학생은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지도교수에게만 의지하지 않고 논문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가를 여러 방법으로 확인할 기회를 갖게 된다. 자신의 취약점을 발견하고 수시로 [보충하고 대비하는 과정/remedial courses]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논문의 방향이 아주 엉뚱한 데로 갈 수 없으며, 갑자기 낭패를 맞는 일은 적다. 이러한 이점은 연구와 논문 쓰기에 있어 틀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인문학분야에서 더 분명해진다.
멜번의 스윈번대학 존 빌코츠 경제학과장은 미국식의 장점은 철저한 사전 [준비교육/enabling work]이라고 말한다. 특히 과학적 방법론에 의지하는 연구는 준비교육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과학분야에서 실증적 연구를 택한 학생은 방법론과 통계처리 기술에 익숙해야 하는데, 이것을 혼자서나 지도교수 한 사람으로부터 배우기는 어렵다. 특히 과거 그런 훈련을 못 받은 한국 유학생들에게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과 캐나다의 퀸즈대학에서 가르친 바 있다.
미국의 UCLA에서 [Organizational design]을 가르친 바 있는 일리스 클락 교수는 미국식 방법을 페인트칠하기에 비유한다. 칠을 여러 번 할수록 물건은 좋아진다. [초벌/first coating]은 아무래도 허술하다. 그러나 여러 번 칠을 하는 동안 학생의 실력과 논문의 수준이 모두 좋아진다.
북미제도에서는 각 분야의 박사과정 학생 수가 많은 것이 보통이다. [펜실버니아대학교 경영대학/Wharton School of Economics]의 경우만 해도 후보생의 수가 수백 명에 달한다. 이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정이라면 교육방법에 있어 틀이 짜여 있지 않을 수 없다. 여러 형태의 세미나는 좋은 예이다.
영국식에서는 인원도 적고 교수와 학생간의 관계는 거의 1대 1이어서 거기에 정해진 틀이 없으며, 어떤 지도교수를 만나느냐에 따라 지도방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 같은 분야 학생간의 교류가 적어서 연구에 필요한 자극과 의욕이 덜 할 수 있다. 필자가 1980년대초 호주에서 공부를 할 때 동료 학생은 단 하나가 있었는데 1년에 한두 번 볼까말까 했었다. 사실 3~6년의 장기간이 걸리는 과정을 외톨이로 공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는 요즘 바뀌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든 박사과정에 학생 수가 늘고 있다. 일부 미국식의 영향이다. 여러 형태의 세미나가 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예이다. 빌고츠 교수는 세미나가 세계적 추세라고 말한다. 졸업생을 양산하는 취업 중심의 [경영대학원 과정/MBA]이 늘고 있는 것도 그런 예이다. 영국에서는 미국식을 닮아 리서치와 강의를 병합하는 [New Route PhD/새로운 박사] 과정도 생겼다. 실험을 필요로 하는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실험실 운영의 필요 때문에 어느 과정에서든 동료들끼리 팀을 이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 자기 스스로 하는 연구
영국식 박사과정은 학생 자신이 하는 연구라는 컨셉트이다. 실제 많은 교수들이 학생을 지도하면서 [독자적 연구/independent research]라든가 [근본적으로는 당신이 할 연구/Basically it’s your own work]라는 점을 강조한다. 리서치 중심이란 말이 바로 그런 의미다. 리서치는 남이 하는 게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대학 이상의 과정이라면 초중고와는 달라 수업은 교수가 아니라 학생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대학교육은 아직도 교수 및 강의 중심인데, 그게 박사과정까지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순전히 리서치 중심의 박사과정을 논하면서 한번 생각해볼만한 가정이다.
필자가 50년대에 대학에 들어가 크게 실망한 것은 교양과목이라며 고등학교에서 배우던 생물학, 국어, 국사, 독일어 시간을 들어야 했을 때다. 대학에서도 교양과목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설명이었으나 실은 한국의 대학 교육이 학생보다 교수들의 필요에 맞추어진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었다.
학부와 석사과정에서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박사과정에서만은 학생이 독립적 리서치에 전념할 수 있어야 더 생산적이고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북미식은 박사과정도 하나의 훈련과정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 미국에서는 [박사훈련/PhD training]이라는 말을 잘 쓴다. 영국?호주에서는 [박사 연구과정/PhD research program]이라는 말이 더 잘 쓰인다.
리서치만으로 하는 영국식 박사과정은 학생을 기성인으로 보는 태도와도 관계가 있다. 특히 이 나라에 있는 파트타임 박사과정에는 이미 사계에 잘 알려진 학자나 전문인이 학생으로 끼어 있어 더 그런 이미지를 남긴다. 지도교수가 독립적인 연구를 강조하는 것은 상대방을 너무 간섭하지 않는다는 서방식 사고방식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리서치 경험이 없는 한국 유학생들의 리스크는 이미 설명한 바이다.
외부의 간섭이나 다른 일에 구애 받지 않고 자기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고 또 연구를 자기가 정한 계획과 페이스로 할 수 있는 이 제도에서는 탁월한 성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런 뜻에서 멜번의 모나쉬대학 스튜어트 프레이저 교육학 교수는 학생과 지도교수 모두가 우수하면 영국식이 아주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미국의 밴더빌트대학에 재직하면서 한국 유학생을 포함하여 많은 외국학생을 지도한 경험이 있다.
박사과정에 입학이 허가된 학생이라면 이미 연구를 독자적으로 해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전제 아래 운영되는 영국식에서는 당연히 입학심사 시 고려 사항도 미국과 좀 다르다고 생각된다. 졸업장과 학교점수 외에도 해당 분야의 실무경험과 실적이 많이 감안된다.
(라)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
교육의 효과는 피교육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때 가장 크다. 동기의식이 교육의 효과를 결정한다는 말과 같다. [시키면 잊어버리고 가르치면 기억한다. 그러나 직접 참여하면 배운다/Tell me and I forget, teach me and I remember, involve me and I learn]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은 타율적인 교육의 취약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스스로 책임지고 연구하는 리서치의 장점이 여기에 있다. 서구의 초등학생들의 숙제도 우리보다 과제 중심인 것은 대개 이런 교육의 효과 때문인 것이다.
한편 교육방법은 배우려는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져야 할 것이다. 단편적인 지식, 생활에 직접 적용시킬 수 있는 실제적 지식이라면 지식 전달식 강의실 교육이 낫겠지만, 적어도 연구라고 부르며 이론 계발을 위한다면 영국제도의 장점은 크다고 봐진다.
어느 쪽이 더 쉬울까를 점치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지만, 학위도 사람이 만든 평가방법과 절차를 거쳐 결정되는 것이므로, 그런 한도 내에 비교적 쉽거나 어렵고 유리하고 불리하고의 논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필자는 박사후보의 적성을 두 가지 유형으로 크게 나눠 보고자한다. 하나는 이른바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quick thinker]이다. 재빨리 판단하고 실천에 옮기며 결과를 얻는 사람으로서 대개 수학적 머리가 뛰어나다. 이런 사람들은 생활 패턴이 규칙적이고 기계적이므로 공부도 꽉 짜인 학교교육 환경(예컨대 대학 수준의 강의실교육, 기술교육, 군대교육 등)에서 두각을 낼 공산이 크다. 필답시험을 보면 높은 점수를 받으며 최고득점자가 대개 이들 가운데서 나온다. 이런 사람들은 북미식이 더 적합하며 성공률이 높다. 특히 상상력보다 계산, 측정, 기계적 분석, 신속함을 더 요하는 분야에서 그럴 것이다. 컴퓨터학, 통계학, 회계학, 경영학, 계량경제학, 공학, 자연과학이 그런 분야이다.
다른 한 가지 유형은 앞의 유형과 달리 [머리 회전은 늦지만/slow thinker] 대신 생각이 깊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며, 독자적인 노력형이다. 타율적인 강박상태보다는 자율적이며 자유스러운 분위기와 상태에서 더 잘한다. 이런 사람들은 창의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자기 페이스에 맞는 자유스러운 리서치 환경에서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계산과 비교적 관계가 없는 사색적, 철학적 또는 예술적 분야와 방법론에 더하여 상상력과 통찰력이 뛰어나야 하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특히 그럴 것이다. 물론 이상은 예측일 뿐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또 한 가지 고려할 변수는 영어 구사력이다. 영어 청취능력, 독해력이 현지인과 같지 않은 한국 학생들의 경우 코스워크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강의 내용이 어렵거나 새로워서가 아니라 잘 알아듣지 못하고 토의에 참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좌절감, 혐오감 등 때문에 중도하차할 수 있다. 그 경우 리서치 쪽을 택한다면 과정을 자기의 계획과 페이스에 맞게 처리해 나갈 수 있으므로, 심리적으로 덜 압박을 받으며 궁극적으로 잘할 확률이 크다. 반면 영어 구사력과 함께 강의실 교육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미국식 과정에 들어가 짜인 일정을 남과 함께 따라가기만 하면 예정에 맞추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리서치과정은 이와 다르다. 하버드대학 출신인 말콤 스미스 멜번대학 법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영국, 호주 식에서는 이미 언급한 대로 학생들이 일정한 틀에 매이지 않으므로 상황에 따라서는 시간을 무한정 보낼 수 있다. 특히 학생들은 비중이 커야하는 논문에 대한 심리적 부담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논문만 쓰면 된다고 해서 영국식이 쉽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논문 중심이고 심사위원이 외부 교수 중심인 영국제도는 학생뿐만 아니라 지도 교수에게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외부 교수들은 학생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여, 학교에 오지 않고 논문만을 읽고 있는 그대로 평가한 자세한 심사보고서를 보낸다. 학생도 심사위원을 알 수 없으며, 안다고 해도 손을 쓸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수준 이하의 논문은 당연히 실격 당한다. 그러므로 지도교수들은 학생들이 논문을 쉽사리 제출하도록 ‘오케이’를 놓지 않는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대학들은 입학시 자격에 따라 최단 2-3년 후에 논문을 낼 수 있게 학칙으로 정하고 있지만, 그렇게 빠른 학생은 드물다.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르겠지만 4~5년 정도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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