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7)
앞으로 여러 회에 나누어 연재될 이 글은 ‘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일부 업데이트하고 전재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제1장 성공적인 유학의 조건
한국의 일류대학병은 해외유학과 해외 한인들 간에도 그대로다. 한국의 출판사와 유학 책 저술 교섭을 해보면 꼭 해외 명문 대학 소개와 같은 것을 제안한다. 글을 부탁하는 잡지사도 명문 대학이 화두다. 사람들이 교육보다도 간판을 원한다는 증거다.
멜번에서 일할 때 일이다. 회계학, 컴퓨터학 분야에서 상당수 한국 유학생들이 인스티튜트(호주 대학제도는 Institute of Technology라는 직업교육 중심의 대학과 유니버시티로 불리는 종합대학의 2원제로 되어 있었다가 15여년전 각 지역별로 인스티튜트 2-3개가 통합되어 지금은 일반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이 합병과 승격은 유학생 유치를 위한 연방정부 계획과도 관계가 있다)를 졸업한 다음 멜번대학에서 1년을 더하여 그 대학 졸업장을 쥐고 돌아가는 것을 봤다.
물론 이것을 학위세탁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비합리적인 한국의 학벌제도에 맞추어 하는 고육지책이지 편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호주 학생들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필자가 일했던 멜번의 4개 대학 부설인 국립한국학연구소는 한국의 대학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따라 학생들을 이 대학들로 오게 했었는데, 전원이 멜번대학만을 고집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교환교수 프로그램으로 비교적 작은 대학에 온 한국 교수는 초라한 학교 건물에 불만을 품고 큰 대학으로 옮겨갔다.
호주 교포 학생들이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하는 것을 봐도 안다. 대부분 적성과 취미와는 무관하게 받은 성적을 따라 인기 대학과 인기 학과 순으로 지망을 한다. 호주 학생들 가운데는 점수로 봐 큰 대학의 의과나 법과에 갈 수 있어도 자기가 원하는 학과를 찾아 작은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있다.
일류 대학, 일류 학과를 향한 열풍은 해외에서 번창하는 한인이 경영하는 과외학원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들 학원의 고객은 한국 학생과 근래 늘어난 비영미계 이민자 자녀들이다. 영미계 백인 부모들은 아직까지 자녀들을 일류 대학에 보내기 위한 일념으로 그런 희생을 감수하려고 안한다.
새로 부상하는 대학들
일류 대학을 영어로 직역하면 [first-class university]가 된다. 2류는 [second-class]다. 하지만 영미국가에서 그런 표현은 잘 안 쓴다. 누가 누구를 일류 또는 2류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럴 것 같다. 대신 과거에는 [prestigious university], 요즘에는 [quality 또는 elite university]라는 말을 더 듣게 된다. [Prestige]는 품위와 명성이고, [quality]는 질, elite는 소수이다. 셋은 꼭 같다고 볼 수 없다. 교육의 질은 무엇을 교육의 내용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그 기준은 변한다.
품위와 명성은 일반이 갖는 이미지다. [평판/reputation]이라는 말도 점차 한국에서 쓰인다. 그런 이미지 조성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오랜 역사와 전통, 고색창연한 건물과 학생 수, 홍보가 크게 작용한다. 또 그 사회의 문화, 즉 국민의식 구조가 한 몫을 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학벌과 학연이 출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문화에서는 사회 고위직에 많은 선배가 포진해 있는 대학이 명문 대학이다.
영국의 [옥스브리지/OxBridge/옥스포드대학과 캠브리지대학]와 미국의 [아이비리그/the Ivy League/동부 지역의 오래된 명문 대학군], 고등학교로는 영국의 이튼과 해로우 등은 질적으로도 높은 명성과 평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명성과 질은 같다고 볼 수 없다. 새로 나오는 학교가 오랜 역사와 전통 때문에 명성이 높은 학교를 질적으로 앞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여러 기관이 발표하는 전 세계적 및 국가별 대학평가에 따르면 무명의 대학들이 계속 상위권에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교육의 질 향상은 교육 투자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요즘 대학 순위에서 아이비리그를 따돌리는 대학들이 서부와 미국 전역에 등장함으로써 [뉴 아이비스/New Ivies]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빠른 사회적 변화 요구에 맞춰 취업률이 높거나 장래 유망한 [새로운/innovative] 교육 프로그램에 투자함으로써 이다.
대학의 새로운 학과인 그래픽 디자인, 관광학, 간호학, 보건학, 정보학, 환경학, 광고학, 조경학, 사회복지학, [시각예술/visual arts], 여성학, 천연자원관리학, 컴퓨터학, 산업디자인학, 팬션학, 보석학, 의장학과 같은 ‘잘 팔리는’ 인기 학과의 출현이 한 가지 예이다. 전통적인 학과에 묶여있는 오래된 명문 대학에 이런 과를 쉽게 신설할 수 없다. 의과, 치과, 법과, 정치과, 경제과, 심리학과, 교육학과, 언어학과, 농학과, 기계학과는 전통 학과의 예다. 영미국가의 오래된 유명 대학에 커뮤니케이션학과가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등학교 레벨에서는 새로 생긴 특수학교가 창의적인 교육을 하는 것은 그런 예다. 영미국가에 있는 특목고, 농업고, 예술학교, 외국어학교, 기술학교 모델이 한국에도 도입되어 기존 명문고의 인기에 도전한다.
출신대학 신입사원 수
어느 나라에서나 일류 대학, 명문 대학 숭배는 신분제도의 잔재와 관계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일류 대학 의식은 영미국가와는 비교가 안 되게 뚜렷하다. 그렇게 되는 이유와 사례들을 필자가 느낀 대로 아래 적어 보겠다.
(1) 먼저 취직 전선이다. 한국에서는 입사 시 다른 조건이 같다면 물론, 못 할 때도 서울 지역 대학 출신이 지방대학 출신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서울대와 연·고대 정로라면 더 그렇다. 영미국가와는 비교가 안 된다.
이들 나라 로펌이나 대기업 들이 매년 뽑는 신입사원의 출신교별 분포를 보면 한국에서처럼 몇 개 대학으로 편중되는 일은 드물다. 채용 결정시 학교 이름과 성적 못지않게 과거 활동 실적과 면접에서 나타나는 개인의 자질과 경험과 능력과 인상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대학에서 오래 가르친 호주 그리피스대학의 권오율 석좌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선진국에서는 전공, 실력, 인성, 경험 등에 의하여 사원채용을 하며 출신대학은 거의 고려 대상이 아니므로 대학간의 뚜렷한 서열화는 생기지 않는다.”
고객 관리가 중요한 로펌이나 회계법인의 인원 채용 시 면접에 할애하는 노력을 보면 그 점을 실감할 수 있다. 고용주측은 지원자의 인성과 자질을 정밀 평가하기 위하여 면접을 세 차례로 나눠 하되 마지막은 면접관이 지원자와 점심을 함께 하면서 할 정도로 실시한다.
이런 인선과 진급제도 때문이겠지만 돈과 집안 배경이 크게 작용하는 정치에서는 몰라도, 실적을 중요시하는 기업의 CEO 자리 가운데 아이비리그 출신의 비율은 미국에서 계속 떨어지고 있다.
(2) 한국에서는 과거 국가고시 결과는 물론, 인기 직장에 채용된 신입사원에 대하여 자신들은 물론 외부인들까지도 출신 학교별 분포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언론도 그런 수치를 재빨리 얻어 보도한다. 영미국가에서는 그렇지 않다. 언론의 관심사가 아니며, 직장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입사 기별로 자기 학교 출신이 몇 명이며 누구인지를 놓고 대화하는 것을 못 본다. 그러니 직장 내 동문끼리 연대의식을 조성하는 현상은 보기 힘들다.
“호주에서는 수상들이 대학을 나왔는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유권자들이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대학교 내에서도 교수들끼리 출신대학을 서로 모르고, 알 필요를 느끼지 않고 산다.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능력 외에 그 어느 것도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구조가 흐르고 있다.” 다시 권오율 교수의 말이다.
이런 직장 내 학벌에 따른 파벌 형성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얼마 전까지도 언론과 식자들이 사법부와 어느 행정부처를 어느 대학이 잡고 있다와 같은 말을 자랑스럽게 했었다. 필자가 대학 들어갈 때만해도 선배가 각계에 많은 어느 대학에 가야한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동경대학 출신이 일본의 관료사회를 지배해온 전통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만든 신화인 셈이다.
언론의 책임이 크다. 영미국가의 언론은 우리 언론처럼 어느 인기 있는 직장에 어느 대학출신이 얼마나 많은가, 국회의원 가운데 특정 대학 출신이 몇 명인가와 같은 정보를 찾아 보도하지 않는다.
유학에도 학벌주의가 확대되는 추세다. 한국의 정부, 대학, 기업, 그 외 각 분야에서 고위직자들 대부분이 미국 유학을 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한국인들이 선배가 실세인 미국의 특정 대학에서 유학을 했다면 사회진출에 그만큼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영미국가에서도 [old boys network]와 같은 말이 있듯이 큰 조직과 대기업의 상층부 인원 진급 또는 발탁 시 명문 고등학교 출신간 은밀한 인맥이 작용하는 사례가 있다지만, 그렇게 뚜렷하지는 않다.
(3) 이점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신분제도의 잔재가 많이 남은 영국에서는 런던 같은 대도시의 큰 직장에 경력이 아니라 신입 사원으로 들어갈 때는 출신 학교 간판이 중요하다고 한다. 필자의 친구 아들 이야기를 여기에서 꺼내보고자 한다. 그는 호주의 한 중위권 대학에서 법 경제 복수 전공을 하고 몇 군데 로펌에서 근무한 후 지금은 런던의 [JP Morgan]의 법률 담당 부사장으로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하여 그의 경험담을 들어 봤다. 그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영입된 경우고, 대부분 이곳 국제 로펌과 금융회사 신입사원은 하버드나 옥스퍼드 출신들이라고 했다.
모든 대학이 서울대학이다
(4) 명문 대학 이미지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더 굳어진다. 미국에서 공부한 [한국과학연구원/KIST]의 정건영 박사에 따르면 신화는 이런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만든다. “미국의 이른바 명문대학에는 어디나 교포, 유학생 합하여 한국 학생이 기백 명씩 있습니다. 미국의 일류대학 홍보는 이들이 하는 셈입니다.”
요즘 한국 정부와 단체들이 국제협력과 교류의 이름으로 해외 대학들과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자매결연, 교환학생 프로그램, 학술세미나 개최 등 사업 대상 선정도 내용보다 학교 간판을 더 좋아한다. 해외 대학에 연구기금 공여나 한국 관련 학술대회 재정지원도 대상 학교의 이름이 먼저다.
최근 어떤 한국의 대학총장도 해외에 나와 오래된 한 대학과 협력관계 문서를 서명한 후 그 점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것이었다.
(5) 국가의 교육정책에도 책임이 있다. 한국의 서울대학이 일류 대학이 된 데는 이 국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특혜와 그에 따른 타 대학에 비하여 월등히 싼 등록금이 한 몫을 한 것이다. 돈은 없으되 머리가 특출한 학생들이 학비가 싼 학교로 모인 결과 서울대학이 이름이 난 게 아닌가.
호주 대학 가운데 한두 개를 빼고서는 모두 연방정부의 지원으로, 똑 같은 원칙과 기준에 따라 운영되는 국립대학이다. 당연히 학비에도 큰 차이가 안 난다. 모두 서울대학인 셈이며, 거기에 한국에서와 같은 전국 대학으로서의 서울대학이 생길 리가 없는 것이다.
대도시에 있는 대학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선두 그룹에 있기는 해도, 여간 부유한 집안 학생들이 아니라면 대학을 좇아 거주지를 떠나오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대도시로 나오는 학생들은 지방에 없는 특정 학과가 아니라면 아르바이트 일자리 기회를 보고 오는 경우가 보통이다.
우수한 사립학교 교육이 발달한 미국도 추세는 대개 같다. 주마다 거주자 자녀들에게는 무료이거나 사립대학과는 비교가 안 되게 저렴한 등록금을 부과하는 주립대학이 있어 역시 아주 부유한 집안이거나 반대로 학비를 벌어야 하는 학생이 아니라면 타주에 있는 명문 대학이나 대도시로 향하지 않는 것이다.
(6) 국토가 넓고 연방제 국가인 미국, 호주, 캐나다 등에서는 한국의 중앙집권과는 달라 지방분권 중심의 정서와 긍지가 강하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서부지역에서는 [University of California 계(系)/주립대로 Berkley, Los Angeles, Santa Barbara등 10개 캠퍼스로 되어 있음], 남부에서는 [University of Texas 계 주립대/Austin 등 5개 캠퍼스], 중부에서는 [University of Illinois 계/Chicago 등 3개] 정도의 지역에 기반을 둔 대학 정도면 동부의 아이비리그를 좇아 떠나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
호주에서 퀸스랜드 주의 수도인 브리스베인이나 서부호주의 수도 퍼스는 시드와 멜번 대학에 비하여 훨씬 작은 도시다. 그리고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시드니대학과 멜번대학은 이 지역 대학들보다 명성이 높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지방에서 큰 도시, 큰 대학으로의 [러시]는 없다.
해외 선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추세는 시간은 걸려도 한국에 들어온다. 이미 앞서 말한 새로운 학과와 구미의 창의적인 대학 운영과 경영 시스템이 한국에서 모방되고 있다. 서방식 인원채용 제도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삼성을 시작으로 한국의 대기업의 최근의 인원 채용 실태를 보면 이미 학교 이름 위주의 선발은 줄고 있다. 기업들은 세계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학 이름이 아니라 필요한 인재를 찾고 있다는 말이 들려온다. 유학에서도 과거 학교 이름 일변도 학교 선택 현상은 바뀔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