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47)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8장 유학을 슬프게 만드는 것 – 인종충격
1. 향수와 인종차별
유학을 어렵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가 [향수/homesickness]이다. 향수는 두고 온 고향산천과 가족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런 그리움은 한인 이민자들의 문학 작품에 잘 나타난다.
향수가 자기와 친숙했던 사람과 환경의 박탈에서 오는 심리적 갈등이라면, 그 정도는 거주국 사회의 처지와 큰 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질문화권이라면 더하다. 백인사회에서 지내다가 사람들의 생김새와 사회 분위기가 비슷한 일본에만 와도 내집에 온 것 같다고 말하는 한인들이 많다.
거주국 주민들의 태도 또한 중요하다. 이들이 친절하고 따뜻해서 쉽게 섞일 수 있다면 그만큼 고독감은 덜하다. 이점에서 관광이나 출장으로 일시 밖에 나온 사람과 이민자들이 느끼는 감각은 크게 다르다. 전자는 호텔이나 관광지 등 특정 지역을 다니면서 손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와는 달리 대부분 이민자는 생계를 찾아 사회의 저변에 파고 들어가야 한다. 유학생은 이민자는 아니나, 부유한 집 자녀가 아니라면, 더 어려운 처치에 놓이게 된다.
외국인이 대거 들어와 사는 영미사회에서는 유학생이라고 따로 봐 주지 않는다. 이점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 한인 이민자와 유학생들이 자동차 접촉 등 사건과 사고로 현지인과 마찰을 겪거나 경찰 취조를 받는 일이 흔한데, 그럴 때 갑자기 고향 생각이 더 나더라는 것이 대개의 경험담이다.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인종차별이다. 사람이 인종적 이유로 주류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때처럼 슬픈 일은 없다. 그리고 그런 대우를 받을 때 그 사회에 대하여 건전한 판단과 감정을 가질 수가 없다.
백인 위주의 서방사회 전반에 걸쳐 반아시아 정서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실체를 몇 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 그 정도가 다르고, 지금도 지역과 상황에 따라 그러기 때문이다.
유학생들이 갖는 인종차별에 대한 감각은 이들의 현지 사회로의 적응과정과 유학의 성패에 큰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국제교육 리서치의 일부로 다뤄져야할 중요한 영역이지만 아직까지 이에 착안하는 한국인이 없다. 단편적인 흥미 중심 언론보도가 전부다. 한편 인종문제는 남의 나라에서나 있는 일로만 여겨 온 게 사실이다. 한국에도 100만에 육박하는 외국인 거주자가 있고, 최근 미국의 한인계 혼혈인 하인스 워드가 성공담이 한국에서 감동을 일으키는 등 한국에서도 인종문제가 관심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커져 가고 있다.
2. 제도가 아니라 행태의 문제
[다문화, 다인종/multicultural, multiracial]으로 이뤄진 영미국가들은 법과 국가정책 선언으로 인종, 성별, 종교에 따른 차별을 금하고 있다. 영미국가들은 모두 – 표현 방법은 달라도 –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채택, 이질문화권에 온 사람들의 문화를 존중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여러 이민자 집단이 모여 사는 지역의 행정기관은 [여러 문화, 하나의 사회/Many cultures, One community]와 같은 그럴듯한 정책 구호를 내걸고 있다. 인종차별 행위는 심지어 형사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은 눈에 보이지 않게 또는 법규에 걸리지 않게 교묘히 정책에 반영되는 것이다. 제도를 봐서 인종차별의 유무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법과 제도가 인간관계의 모든 영역, 특히 국민의 정서까지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럼 이들 나라의 인종차별은 어느 정도인가? 영미인(앵글로 색슨)들의 마음속에 도사린 동양인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어떤 것일까? 현지인들에게 그런 점을 직접 물어봐 알 수는 없다. 솔직한 대답을 안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의 구체적 사례를 들어 나름대로 어떤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인종차별은 엄격하게 따진다면 혈통과 피부색과 생김새에 따른 인간차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 미운 오리새끼, [새도 같은 색깔끼리 모여 다닌다/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와 같은 말로 알 수 있듯이 동물들은 같은 것끼리 떼를 이뤄 다닌다. 사회학자들은 인간 사회도 이와 같다는 점에 주목한다. 영미국가에서 방과 후 중고등학교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을 보면 재미있다. 인도계, 중국계, 한인계, 아랍계, 백인계 학생들이 모두 따로 따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가는 것이다.
적어도 표면상 단일 민족국가인 한국에서는 인종에 따른 차별이 있을 수가 없다. 있다면 성, 종교, 교육, 지능,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 따른 인간차별이라고 봐야 한다. 다민족 국가인 영미사회의 경우에도 차별은 대개 인종에 사회경제적 변수가 복합되어 있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두 가지는 이론상 구별해서 말해야 한다.
백인도 차별을 받았다
5개 영미국가의 인종 상황은 미국에 특별히 많은 흑인과 히스패닉을 제외 한다면 놀랍게도 비슷한 패턴이다. 대개 150여개 출신 국가별 민족이 모인, 그야말로 인종 전시장이란 말이 실감난다. 하지만 백인 중심의 영미사회에서 피부색과 생김새 때문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인종은 동양계, 아프리카계, 인도계 등이다. 이때 인종차별은 모든 백인이 똑같이 유색인을 일률적으로 차별하는 [단선모델/linear model]이 아니다. 여러 층과 여러 방향으로 일어나는 [복선 모델 curvilineal model]이므로 누가 누구를 차별하는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영미국가의 주류는 앵글로 색슨과 셀틱계인 잉글랜드, 스코트랜드, 웰즈와 아일렌드계를 망라한 백인이다. 이들이 주로 19-20세기초에 걸쳐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건너가 백인 중심의 사회를 만들었다. 같은 기간에 스페인계와 프랑스계(특히 캐나다와 미국의 일부 지역에), 북유럽과 중부 유럽계, 남부 유럽계(주로 이태리와 그리스)와 유태계도 건너왔지만 수적으로는 소수다. 그들은 이미 3-4세대에 이르렀고 이들 후세대는 같은 백인으로서 대체적으로 앵글로 주류에 거의 완전히 통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비영국계 백인 일부와 심지어 아일랜드계 마저도 한 때 앵글로색슨계 주류 속에서 인종차별을 느껴온 흔적이 많다. 미국에서는 한때 노예 신세였던 미국 흑인들이 점점 주류가 되어 가고 있고, 이들의 거센 반인종차별 운동 때문에 다른 유색 소수민족들이 간접적으로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들 나라에서 현재 주류에 일부 진입했거나 전혀 못한 채 눈에 쉽게 띄는 소수민족 집단은 2차대전 후 내전의 피난민으로 비교적 늦게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로 대거 유입된 레바논계,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을 거치면서 역시 같은 지역으로 꾸준히 유입된 다른 아시아 이민자, 뉴욕과 LA 등으로 유입해온 푸엘토 리코와 멕시코인계 등이다.
2차대전 종료 후 영국 외 주요 영어 사용 국가들로 각각 비슷한 비율로 대거 이주한 남 유럽계(특히 이태리, 그리스계, 구유고슬라브계)가 3, 4세에 이루고 있지만 1, 2세는 아직도 이민자의 때를 벗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아시안계라면 영연방에 속하는 인도인, 파키스탄인, 스리랑카인들을 주로 의미한다.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이 아니다. 그 외 한때 영국 식민지였던 중동계가 이 나라에서 큰 소수 민족이다.
전체 인구 대비 이런 비영국계 외국 태생 거주자의 비율은 전체적으로 20-25%이나 주로 대도시에 몰려 있어 유학생이 이들과 만날 확률은 훨씬 높다. 뉴욕의 경우는 인구의 36%가 비영국계 이민자다. 유학생들이 뉴욕의 저소득층 지역에 거주하면서 만나게 되는 백인은 유태계, 이태리계, (전)유고슬라비아계, 스페인계일 공산이 크다. 뉴욕과 런던 같은 대도시에 나가 겪은 나쁜 경험을 말하면 현지인들로부터 뉴욕은 미국이 아니다, 또는 런던은 영국이 아니다와 같은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일리가 있다.
이들 여러 시기에 여러 가지 이유로 이민으로 들어온 유색인은 물론, 비영국계 백인들도 한때 인종갈등과 계층갈등을 겪었으며, 이들 중 아직도 활동하는 1세나 1.5세들은 지금도 대도시의 특정 지역에 모여 레스토랑이나 간이음식점 등 소규모 가게를 운영하며 이민자 냄새를 풍기며 산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모르듯 이들은 [새로 들어온 아시아 이민자/newcomer Asians]들에게 친절하지는 않다. 시집살이를 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더 가혹한 이치라고나 할까. 처음 외국에 와 이런 지역에서 푸대접을 받은 유학생들은 그 불행한 경험을 전체 사회로 확대해서 생각할 개연성이 크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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