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49)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8장 유학을 슬프게 만드는 것 – 인종충격
6. 역인종차별
지난 20여년 간 영어권 사회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를 필자보고 말하라면 유색 이민자의 대거 유입으로 적어도 피부색에 관한 한 백인 중심 사회는 와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계 흑인이 많은 미국은 원래 그렇지만, 최근 다른 영미국가 주요 도시를 가보면 여기가 과연 백인 사회인가 눈을 의심하게 된다. 시드니에 있는 NSW대학과 UTS대학 캠퍼스는 아시아계 일색이다.
런던, 뉴욕, 로스앤젤레스, 토론토, 밴쿠버 마찬가지다. 중심가에 나가보면 순수한 백인은 적다. 이들 대도시 대부분의 가정은 이민족간 믹스가 되어 부부 한쪽이 아시아계, 자녀의 배우자는 중동계라는 식이다. 미국에는 흑인과 멕시코와 푸엘토리코계, 런던에는 아랍, 파키스탄, 인도, 아프리카계가 더 우세한 게 다르다. 이런 추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니 앞으로 이들 국가에서 인종적 구분은 모호해질 것 같다.
호주의 경우 근년 유입되는 전체 이민자 중 아시아인의 비율이 30% 전후로 영국계를 앞서고 있다. 캐나다와 뉴질랜드도 비슷하다. 영미국가들이 민족 정체성 상실을 무릅쓰고 아시아인을 대거 받게 된 사정은 이미 언급한대로 (제1고 영주권 유학, 38-39쪽 참조) 저 출산과 인구 노령화에 대비하고, 경제를 위하여 젊고 교육 높은 전문인과 부유층 인력을 받아들이고 내수 시장을 확대할 필요다. 이런 인력을 유럽에서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유색인의 급격한 증가는 어떤 식으로든 백인들의 소수민족에 대한 정서와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는데 인종차별 상황의 개선 또는 악화,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두 가지 상반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하나는 물론 상황의 악화다. 타민족의 대거 유입은 거시경제 면에서는 몰라도 당장은 현지 주민들에게 엄청난 불편을 증폭시킬 수 있어 그렇다.
개선될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는 전체 인구 중 순수 혈통을 주장할 수 있는 주류의 비율은 계속 줄어드는 반면, 수적으로와 사회경제적으로 입지가 향상되는 소수민족 집단의 목소리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여러 형태의 인종분규를 예상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바로 점차적인 인종관계 개선의 길로 봐야 할 것이다.
호주에서는 몇 년 전 폴린 핸슨이라는 무명의 여성이 과감한 반아시아인 적대 발언과 이민 반대 구호로 연방하원에 진출했었다. 급격히 늘어난 아시아 이민자들에 대하여 반감을 가진 보수 노인층 호주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One Nation Party]는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인종보다 경제를 더 중요하게 보는 주류층의 인식 때문이다. 구매력과 노동생산성이 최대 관심사인 자본가와 기업가들에게 이민은 절대 필요하다. 특히 주택건설업과 자동차생산 업계는 이민 숫자에 민감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봐야 할 것은 유색인종의 증가로 서구의 이민자 관련 문헌에서 가장 흔하게 거론되고 한국인들이 우물 안의 개구리식으로 믿는 견해인, 이민 2세들의 [정체성위기/identity crisis]는 지금도 맞는가이다. 요즘 필자가 보기에 이들 나라 대도시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아시아계 자녀들은 드물다고 생각된다. 역시 아시아인의 수적 증가 덕택이다. 여기에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20여년 전에 영미국가에 이민 와서 초등학교 또는 고등학교에 다닌 한국인 자녀들은 백인 급우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흔했다. 같은 반은 말고 전교에서도 한국인 친구가 거의 없어 혼자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외모가 같은 중국계는 물론 한인계 자녀들이 집단을 이루고 다니니 고립될 수가 없다.
50년과 60년대초 미국이나 호주 내 한인사회의 식자들은 현지인의 눈살을 피해 조용히 살아야 한다는 이론을 폈었다. 이들은 가끔씩 한인회 집회 등 한인들이 거리에 모여 떠드는 것을 보고 질색하곤 했다. 이런 감정은 해외에 사는 한국인 자녀들의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은 부모들이 모여 현지인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말로 크게 말하고 행동하면 매우 창피하게 생각했다. 그러기에 미국 현지 매체들은 한인 커뮤니티 보도에서 [invisible Koreans/잘 나타나지 않는 한국인, 보이지 않는 한국인, 조용한 한국인, 수줍은 한국인]과 같은 표현을 쓴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최근 미국의 명문 고등학교에서 백인 학부모들이 압도적으로 늘어난 아시아계 학생들을 피하여 자녀들을 다른 지역 학교로 옮기고 있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호주에서도 명문 대학 진학의 관문으로 여겨지는 셀렉티브 스쿨 자리를 족집게 과외공부에 힘입어 높은 점수를 내는 아시아 학생들이 백인 학생들을 따돌리고 있어 백인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요즘 영미국가에서는 백인 여성을 껴안고 지나가는 유색인 남자들을 갈수록 많이 보게 된다. 영국과 호주에서는 이슬람계 여성들이 눈만 빼고 얼굴 전부를 가리고 다니는 행위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이 [얼굴 가리게/veil 또는 headscarf]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은 오히려 당당하다. 지하철을 타보면 유색 이민자들이 옆에 앉은 백인들이 아랑곳없이 큰소리로 떠드는 광경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특히 중국인들의 목소리는 크다.
유색 이민자들이 백인들이 독점했던 지역과 직종에 파고드니 백인 서민층이 이사를 떠나는 이변도 일어나고 있다. 모두 [역인종차별/reversed discrimination]의 사례로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변화는 이 분야 학자와 이민자와 유학생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장기적으로 이들 국가에서 동양인의 입지는 크게 개선될 것이다. 정치계와 기업의 최고 경영층은 몰라도 그 외 자리라면, 영어와 실력이 문제지 국적과 인종 때문에 크게 손해 보는 사례는 줄고 있다. 앞으로 더 그럴 것이다. 동양인의 수적 증가는 이들의 정치적 기반을 넓힐 것이고, 이미 언급한 경제적 필요성 외에도 서로 다른 인종이 상호 의존관계를 맺고 평화적으로 사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더 우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유학을 와 언어와 문화적으로 애로가 없다면 길게 봐 한번 도전해 볼만하다.
한국인의 인종문제에 대한 우물안 개구리식의 인식 사례는 그 외에도 많다. 인종차별하면 잘나가는 앵글로색손 백인 주류, 이른바 [와스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s]가 모든 유색 소수민족을 일률적으로 억압한다는 그런 시각이다. 해외 현지에서 경험하는 실제와는 맞지 않는다.
얼마 전 시드니의 클로뉼라 해변 (해수욕장)에서 일어난 인종충돌 사건을 예로 들어 말해보겠다. 사건은 이 해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영미계 청소년 [구급대원/Life Guard]을 다른 지역에서 온 동년배의 레바니즈계들이 폭행함으로써 발단이 된 것이다. 다음날 앵들로색손계가 주류인 그 지역 주민들이 흥분, 거리에서 마주치는 레바니즈계들에게 닥치는대로 보복을 가한 것이다.
한국의 언론들은 이 사건을 백인들의 우월주의와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과 인종차별 케이스로만 보도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교포의 피해는 없었다는 사족까지 붙였다. 이런 보도가 얼마나 현지 사정과 안 맞는가를 현지 한인들은 잘 안다. 3-4대에 이른 이들 레바니즈 청소년들은 뉴커머 아시아인들에게 백인 행세(실제 피부가 흰 사람도 많다)를 한다. 많은 교포들이 앵글로보다 아랍계로부터 폭행, 강도, 또는 길거리에서 놀림을 당하는 사례가 훨씬 많다. 인종차별에 관한 한, 이들 레바니즈와 한인들을 같은 차원에 놓고 보는 것은 큰 착오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Blog: blog.daum.net/samokim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