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53)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9장 동과 서, 어떻게 다른가? – 문화충격
5. 나이와 직위 의식 버려야
동양인들의 가치관과 대인관계가 유교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뒤에 소개하는 여러 가지 동서양인 간의 행태 차이가 대부분 그러하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게 나이와 지위에 대한 태도다.
한국인들은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유교 사상에 따라 나이가 윗사람과 아래 사람을 확연히 다르게 대한다. 먼저 나이에 따라 쓸 언어와 취해야 할 태도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사람을 처음 만나면 어떤 식이든 먼저 나이와 신분을 아는 것이 수순이다.
장유유서는 자연히 가정에서는 가부장제도, 일반 사회에서는 직위의 고하에 따른 [계층서열/hierarchy]을 낳게 된다. 그리하여 나이와 신분에 따른 어른과 윗사람에게 써야 할 존칭과 경어(敬語)가 있으며, 이에 대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이는 권위에 대한 두려움 및 숭배이며 권위주의 사회의 특성이다.
근래에 와서는 나이보다 직위가 더 중요시되는 것 같다. 나이가 아래인 사람도 직위가 높으면 윗사람으로 대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은 자연히 강한 [지위의식/status consciousness]을 갖는다. 그리하여 사람을 평가 할 때 자연히 능력과 인격보다도 사회적 지위와 직함을 더 먼저 본다. 이런 국민의 의식구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되어도 뿌리를 못 내리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 사회에서나 나이와 지위를 무시할 수는 없겠으나, 영미사회는 이 점에서 다르다. 직장 안에서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직장 밖에서라면 직위와 권력 관계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상대가 고급관리, 국회의원, 교수, 연장자라고 해서 우리처럼 피크닉, 결혼식장, 파티 등 사석에서까지 몸이 굳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미인들이 우리처럼 명함을 흔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
한국 유학생들이 서양에 나와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대학 안에서 총장, 학장은 말할 것 없고 담당 교수들과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경직된다면 보기도 흉하고 해야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손해를 보게 된다.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하러 오는 한국 유학생들은 군대를 마치고난 후, 아니면 한 동안 사회생활을 하다가 오는 경우가 많아서 현지 학생들에 비해 나이가 많다. 대개 20대나 10대의 현지인 학생들과 섞여야 하는 상황이다. 그럴 때 나이나 과거 직위를 너무 의식한다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정쩡해진다. 나이 어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파티나 다른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사회는 겉으로는 서양화, 미국화가 폭넓게 이루진 것 같으나 인간관계에서는 그렇지도 않다. 신세대들도 해외에 나와서는 한두 살 나이 차이에 따라 선후배 구분을 하느라 갈등을 겪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지인들에게 이런 태도는 불편하게 보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동양인들은 대개 체구가 작아서 영미 사람들에게는 나이보다 어리게 보인다. 거기다가 영미인들은 상대의 나이를 별로 개의치 않으므로 40대가 60대를 [친구/friend/심지어 mate]라고 부르는 일이 흔하다.
6. 퍼스트 네임은 친근감의 표시
나이와 직위 의식이 강한 한국인이 영미사회에 와서 익숙해지기가 어려운 매너 하나가 [이름/first name, given name, 성이 아닌 퍼스트 네임]의 사용이다. 이 사회에서 이름은 친근감의 표시로 사용된다. 미스터 또는 닥터 아무개라고 상대를 [성/性] 으로 정중하게 부른다면 가깝지 않다는 뜻이다.
영미인 교수가 학생들을 향하여 닥터, 프로페서, 미스터 아무개 대신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부탁까지 하는 일이 흔하다. 특히 남녀끼리 미스터 또는 미스 아무개라고 부른다면 정다운 사이가 아니다. 이들 나라에서는 친한 사이라면 목사도 퍼스트 네임으로 부른다.
그래서인지 서양인들은 우리보다 주위 사람들의 이름을 잘도 알고 기억한다. 잘 모르면 몇 번이고 묻고 확인한다. 초등학교에서만은 예외다. 초등학생은 선생님을 미스터 또는 미세스 아무개라고 성으로 불러야 한다.
한국에 그런 문화가 없다. 불과 몇 살 위인 사람에게도 이름을 부르면 실례다. 직위가 있으면 직함으로 불러야 한다. 부인들은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때 남편의 이름을 지칭하지 않고 누구의 아빠 등 돌려서 말한다. 이런 문화에서 지낸 사람이 영미사회에 오면 매우 어정쩡한 처세를 하게 된다. 유학생이 몇 년을 같이 지낸 교수나 현지 기관장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좋으나 직위로만 부르는 경직된 자세를 늘 유지하면 어색하고 가까워지기 어렵다. 권위주의에 찌든 제3세계 지역에서 온 학생들 중에는 이름으로 교수를 부르는 영미 학생들을 보고 깜짝 놀라는 일이 흔하다.
호주는 다른 영미국가보다 사회분위기가 더 [평등적/egalitarian]이어서 격식이 덜하다고 한다. 브래들리(179쪽 참조)의 조사에 따르면, 호주인들이 다른 영미사람들보다 [퍼스트 네임]을 더 잘 쓴다. 특히 서민들 사이에서는 그런 정서가 강하다. 친한 직장 동료끼리는 물론이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친근함의 표시로 [마이트]란 호칭을 듣는 일이 흔하다. 그럴 때 한국인은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시드니에 사는 어떤 한국인 여성은 아이의 친구가 놀러 와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한국에서 직책을 가진 사람은 동료나 연하의 사람에게 전화할 때 [나 어디 무슨 국장인데……]또는 [아무개 소장인데요] 정도로 신분을 밝힌다. 이름을 먼저 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교포들도 전화를 받았을 때 자기 이름은 대지 않고 상대방이 누군가만 묻는 일이 흔하다. 여행사 등에서도 예약을 받으며 상대방 이름과 번호를 물어 확인하고 나서도 이쪽에서 이름을 물으면 이름보다 다른 방법으로 가리켜주는 일이 흔하다. 이름을 대는 것이 싫은 것이다.
영미사회에서 그렇게 하면 큰 실례다. 필자는 한국인이 영미문화에 적응된 정도를 전화로 자기 이름을 대는 데 아무렇지 않은가, 심지어 긍지를 느끼는가를 살피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현지인(또는 교포)이 자기 이름을 직함을 빼고, 또는 아무개 씨 등으로, 불렀을 때 거부감을 느낀다면 아직도 한국 사람이다. 필자는 안면이 별로 없는 교포의 집에 전화할 때 난감함을 느낀다. 손자 같은 아이가 전화를 받아 [누구시냐고]고 물을 때 대답하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김 아무개라고 말해 주면 [김아무개씨요?]하고 되물어 올 때 아직도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Blog: blog.daum.net/samokim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