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54)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9장 동과 서, 어떻게 다른가? – 문화충격
7. 여성에게 함부로 하면 촌놈
한국과 해외 어디서나 남녀 성별이 나이와 직위 못지않게 인간관계에 한 몫을 한다. 약한 여성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우리 사회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필종부(女必從夫)라는 말이 있듯이 과거에는 여자는 남자에 예속되어야 할 존재였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도 있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영미문화의 영향과 교육받은 인구의 저변 확대로 이런 극단적인 남존여비 사상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구미식 [여권운동/Women’s liberation], [여성운동/feminist movement]도 점차 늘어나고, 과거 가볍게 여겨지던 [성희롱/sexual harrassment]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굳어진 의식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해외에 나왔을 때 어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분야다. 서양남자들에게 익숙한 [여자 먼저]원칙의 실천은 전형적이다. 여자를 자동차로 안내하면서 문을 열어 주는 것이 쉽지 않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상대가 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그렇다. 특히 나이든 사람, 지체가 높은 사람이 그 반대 입장에 있는 여성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어렵다. 한국에서는 그런 행동이 아직까지도 비정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연설을 아직도 [Ladies and gentlemen]이 아니라 [신사 숙녀 여러분]으로 시작한다.
영미인들은 여성의 인권을 경시하는 제3세계의 문화와 관습에 대하여 민감하다. 서구 언론에 그런 사례와 사건이 흔히 보도되는 이유다. 영미국가의 주민들은 이민 온 중동계 남성들의 편향된 여성관이나 여성 관련 관행을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터놓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따금 특정 제3세계 국가에서의 여성차별 문제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언급한다.
중동계 이슬람계 여성들은 여성에 대한 멍에라도고 할 수 있는 머리와 얼굴을 감추는 머리 천을 해외에 나와서도 둘러쓰고 다닌다. 어떤 머리 천은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눈만 보이게 되어 있어 저항세력이나 강도가 쓰는 [복면/바라크라바/balaclava]를 연상케 한다. 그렇게 해서 주류사회에 잘 섞일 수는 없는 일이다.
서양여성들은 한국남자들의 매너를 보고 금방 남존여비적이라는 인상을 갖는다. 30여 명의 한국 유학생이 다니는 시드니 서부에 있는 커버데일고등학교의 제프 클라크 교장의 관찰은 재미있다. “한국 남학생들은 동료 여학생들이 의당 그들을 위해 잔심부름을 해 주기를 바라며 실제로 강요하는 일이 흔하다”는 것이다. 또 남학생들은 한국인 남자 어른이 무엇을 시키면 잘 따르지만, 여자 어른의 지시는 잘 따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외국에 나와 공부하는 신세대라고 해도 한국식 남녀관을 알게 모르게 그대로 반영한 사례라고 하겠다.
영미사람들 앞에서 여자를 깔보는 발언을 하거나 같은 한국인이라고 해서 여자에게 거칠게 대하는 일, 여자 앞에서 오해받을 수 있는 농담을 한다면 아무리 다른 일을 서양식으로 잘 해도 그들에게 나쁜 인상을 줄 뿐이다. 아직 젊은 나이인 유학생들은 현지 학생들의 남녀관계 매너를 잘 지켜보면서 쉬운 것부터 조금씩 태도를 바꾸도록 노력해 볼 일이다.
8. 기분과 눈치
크레인의 저서 [P. Crane, Korean Patterns, 1967]에는 기분에 대한 서술이 여러 군데 나온다. 한국인은 기분에 살고 죽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업에 성공하자면 상대방의 기분을 먼저 알아 처신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인 특유의 눈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크레인의 저서 이후 여러 서방 문헌들이 이 한국인의 행태를 다루고 있다.
사람은 어떤 식이든 푸대접이나 무례한 대접을 받았을 때 참담하고 불쾌하게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기분은 한국인에게만 특이한 속성은 아니다. 남에게 기분 좋게 해준다는 뜻의 영어로 [make him(her) feel important/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가 중요한 사람으로 느끼도록 해 준다]가 있다.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고, 한국인은 원래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인심이 후한 민족이라고 한다. 예의바른 것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배려한다는 말도 된다. 그렇지만 예의지국도 권위주의가 지배한다면, 그 예의는 일방적으로만 지켜질 수밖에 없다. 예의는 약자가 강자에 대한 관계에서만 지켜질 뿐 그 반대의 경우는 일정치 않다. 이런 행태가 외국 사람의 눈에는 별나게 보여서 한국인의 [기분]을 따로 운운하게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어에 [The police is always right. The customer is always right]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권한을 갖는 경찰은 민간인과의 관계에서, 물건을 사는 고객은 상인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옳다(상위)라는 말이다. 민간인이 경찰에게 약할 수밖에 없음은 만국 공통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소비자가 왕이라고 할 때도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바 고객이 장사꾼이라고 무례하게 대하여도 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식당에 들어가 손님이 마음대로 아무 식탁에나 앉아도 된다. 떠들며 들어와도 된다. 영미 레스토랑에서는 종업원이 안내할 때까지 입구에 조용히 서서 기다려야 한다. 어떤 식당 입구에는 [Please wait here to be seated/ 종업원 안내를 받아 앉으세요] 라고 쓰인 푯말이 있다. 그럴 때 못 보거나 묵살하고 쑥 들어가 앉으면 창피 당한다.
영미인들은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을 때 주인이나 종업원 앞에서 [음식이 왜 이렇게 짠가] [맛이 없다] 와 같은 불평을 잘 하지 않는다. 맛이 있으면 물론 감탄사를 연발하지만, 없으면 다음에 가지 않을 뿐이다. 장사꾼이라며 물건 값이 왜 이렇게 비싸냐는 등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물건 값이 비싸면 안사면 되고 값을 깎자고는 안한다. 사지 않더라도 물건이 마음에 들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몇 개를 더 살 테니 값을 깎아 줄 수 없느냐는 식의 제의를 하면 [여기는 홍콩이 아니다]라는 식의 싸늘한 대답이 돌아온다.
영미사회에서는 종업원이 물건을 포장하거나 잔돈을 거슬러 줄 때, 그밖에 어떤 서비스를 해 주면 밝은 웃음과 함께 [thank you]라는 인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서 처럼 상대가 장사꾼이라고 해서 서비스를 받고도 시큰둥한 얼굴을 하고 그냥 나오는 사람은 드물다. 유학생들은 이런 면에서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범하기 쉽다. 현지 사람들이 하는 것을 잘 봐 두었다가 실천해 볼 일이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Blog: blog.daum.net/samokim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