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57)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9장 동과 서, 어떻게 다른가? – 문화충격
12. 사생활 묻지 않는 교수
집단주의 사회에서 자란 사람은 자연히 [사생활/privacy/프라이버시)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다. 밀착해서 지내다 보면 타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의식을 갖게 된다. 좁은 해외 한인사회에서는 서로가 상대방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안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밀착되고, 모이면 남의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서양인들은 가까운 친구나 가족간에게도 개인적 사항은 묻거나 거론하는 것을 금기로 한다 함은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어느 정도면 사생활 침범인가를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사생활 문제가 워낙 미묘한데다가 언어장벽까지 겹쳐 섬세한 대화가 불가능한 외국인과의 관계에서는 더 그렇다.
문제는 각자의 처지이다. 상대가 특별히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저쪽에서 프라이버시를 지키면 이쪽도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나 유학생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아쉬운 처지에 있다. 말을 먼저 걸어야 할 때가 많다.
지도교수와 학생과의 관계는 가히 부부 관계에 비유할 만하다. 상대와 대화하기가 조심스러울 때는 상대 마인드를 알기 어렵고 제대로 도움도 못 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잘 아는 박사과정 학생은 호주에서 공부할 때 불운한 사람이었다.
몇 년을 지내는 동안에도 지도교수는 필자의 가족 관계는 물론, 어떻게 먹고 사는가,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한국에서는 어떻게 지냈는가 등 개인 형편을 한 번도 물은 적이 없다. 이 정도면 프라이버시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사람은 남의 일에 관심을 갖고 도울만한 위인이 못 된 것이다. 선택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피해야 한다.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개방적인 성격이어서 무슨 얘기든 터놓고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런 오픈 된 외국인과는 사생활 문제의 벽을 쉽게 허물 수 있다.
영미사회에서는 상대의 직업, 나이, 소득, 가족 관계, 출신 학교, 결혼 관계 등 개인적 사항을 묻는 것은 일반적으로 금기 사항이다. 한발 더 나가 왜 그렇게 됐느냐고 묻는 것은 정말 실례다.
다만 외국 사람에게 개인적인 사항을 묻더라도 너무 직접적이고 구체적이지 않게 무난하고 완곡하게 질문한다면 대체로 무난하다. 한국인들이 범하기 쉬운 일인데 남의 물건을 보고 얼마를 주고 샀느냐와 같은 물음은 조심해야 한다. 영미학생들은 자기들끼리도 개인 사항을 속속들이 알고 지내지 않는다는 점을 유학생들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13.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 낯을 가리지 말라
“한국인은 친척은 물론, 동향, 동문, 같은 직장 출신이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다르게 대한다. 이런 개인적 [연/緣]이 친목으로 그치지 않고 공적 관계로 확대되면 비리가 된다. 그렇지 않다면 좋아하는 사람끼리 따로 지내는 것을 파벌이니 하며 비난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파벌 중심 사회에서는 독자적인 길을 걷는 사람은 손해를 본다. 그래서 하다못해 직장 계모임, 낚시모임, 산악회 같은 모임 등에라도 가입하여 나름대로의 인맥에 끼어들어야 한다.
서양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더 인정이 있고 친절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기로 말하면 한국인만한 민족도 없을지 모른다. 다만 한국인의 인정, 친절, 의리, 인심은 보편타당성이 없는 것이 문제다. 연으로 통하거나 잘 알면 친절하고 관대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예측불허다.
이에 비해 영미인들의 인간관계는 훨씬 보편성을 띈다. 상대가 누구이든, 잘 알고 아니고를 따지지 않고 기본적인 예의는 모든 사람에게 지키는 편이다. 서양 사람들은 초면인 사람일지라도 한적한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적어도 미소 정도 짓는다. 한번 정도 봤던 사람이면 날씨를 가지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거나 농담을 하는 게 보통이다.
잘 아는 사람끼리는 수다스럽고, 모르는 사람은 외면하는 문화에서 자란 우리에게 이게 힘들다. 이런 차이는 리셉션, 피크닉, 파티에 참석하거나 단체여행을 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원래 알던 사람끼리만 어울려 초면은 [개밥의 도토리]가 되기 쉽다. 그러니 모임에 가거나 여행에 합류하기 전에 누가 참석하는지 알아봐야 한다.
영미사회에서는 몇 사람이 잠깐이라도 자리를 같이 하게 되면, 누군가가 서로를 예외 없이 인사를 시킨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접근하는 것도 일반화된 관습이다. 이런 서양의 관행도 보편타당한 인간관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한국에서도 그런 관행은 점차 늘고 있지만, 아직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 모르는 사람은 내버려 두기 일쑤이다.
영미사회의 에티켓 책자에 따르면, 사람을 소개시킬 때는 중간인은 연하자를 연장자, 남자를 여자 쪽을 향하여 하는 것이 관례다. 예컨대 국회의원과 유학생이 한자리에 있다고 하면, 중간인은 국회의원 쪽을 향하여 [이 사람은 학생인 아무개입니다]라고 해야 한다.
외국인이 섞인 리셉션에 가보면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민망하게 보일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높은 사람]만 외국인에게 소개하고 나머지는 내버려두든가, 지인끼리만 옹기종기 모여 대화하면서 한 두 사람은 소외된 채 놓아두는 것이다.
여성들은 모르는 남자에게 먼저 말을 하거나 친절하게 대하면 오해를 받을 것이므로 일부러 냉담한 체한다. 영미사회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누구든 소개를 받아 알게 되었거나 말을 걸어오면 예의상 잘 알던 사람처럼 친근하게 잠깐이라도 대응해야 한다. 상대방이 무어라고 하면 [Is that so?/ 아, 그래요] [Really?/ 진짜에요?], [Great!/ 좋습니다], [wow/ 아, 그래요] [ah, okay/ 아 오케이] 와 같은 말로 쾌활하게 관심과 성의를 보이는 게 예의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Blog: blog.daum.net/samokim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