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61)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9장 동과 서, 어떻게 다른가? – 문화충격
20. [Yes or No]를 확실하게
동양계 유학생들과 지내본 영미 교수들의 지적 하나는 늘 같다. 동양학생은 자기 생각을 나타내는 데 매우 [소극적/reserved and withdrawn]이다. 그리고 그 이유로서 동양사회에서의 교사 중심의 권위주의적 교육과 앞에서 언급한대로 겸양이 미덕으로 받아지는 문화가 거론된다.
영미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권위주의적 태도는 인기가 없으며, 정당한 자기주장이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는 일은 장려된다. 영어로 [자기 생각을 자신 있고 능숙하며 확실하게 밝힌다]의 동사는 [articulate]이고, 그런 사람은 [articulate person]이며 일반적으로 소신 있는 인격자로 대접 받는다.
한국의 경우는 상황에 따라 일정치 않다. 조직의 이익을 대변해서 논리적으로 이론을 전개한다면 능력 있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토론, 일상생활, 특히 조직 내 상하 관계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고, 알아도 모른 척하는 쪽이 유리하다.
침묵을 쳐주는 문화에서는 말도 확실하게가 아니라 두루뭉실하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 한국에서 여러 정권에서 고위직을 무난히 지키는 사람은 대개 그게 능한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자기 입장을 명백히 하는 사람은 입바른 사람이라고 해서 미움을 받으며 오래 못 간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대로다.
영미대학의 강의실이나 모임에서는 누군가가 수줍게 발언을 할라치면 동료들이 [Speak up !]하고 소리치는 것을 보게 된다. 잘 들리지 않으니 목소리를 높이라는 뜻도 되지만, 주저하지 말고 주장을 확실하게 펴라는 맞장구이기도 하다.
영미 대학에서는 자기주장을 펴는 능력을 훈련하는 과외활동도 있다. [자기주장 훈련/assertive training]이라고 부르는데, 상대방에게 공격적이 아니면서 할 말을 잘 할 수 있는 능력 습득 훈련이다. 이 훈련의 모토는 [공격하지 않으면서 자기주장을 내세워라/Be assertive without being aggressive]이다.
이 능력이 문화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면 성장과정 중 부모나 친척, 친구들의 영향이 크다. 한국인들은 어려서부터 건전하고 원숙한 토론보다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공경적인 토론문화에 더 익숙한 게 사실이다. 민주화와 상호 인격 존중의 면에서 많이 발전했다는 지금의 한국도 그렇다. 국회 청문회나 질의에서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야말로 언어폭력이다.
영어에도 [Tall poppy syndrome/돋보이는 양귀비가 다치기 쉬운 현상]이란 말이 있다. 근래 취업이 어려운 영미 국가에서는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는 역시 손해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대학 지식인 사회에서도 상급자의 이론이나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하다가는 그대로 붙어 있지 못한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유학생의 입장은 대개 반대다. 해외에 나와 학교 안팎에서 자기 방어를 위하여 말을 잘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긴다. 고국에 있을 때라면 본인이 나서지 않아도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있고, 직접 나서더라도 아는 사람을 통하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모든 것을 내가 혼자서 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 언어의 불편을 고려할 때, 평소 특별한 마음의 대비와 훈련이 없이는 좌절하기 마련이다.
영미사회에서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면 먼저 운전면허, 보험회사 등 기본적인 정보를 서로 조용히 교환한 다음 한쪽이 실수를 인정하면 좋고, 그렇지 않을 때도 일단 헤어진다. 가입한 보험회사에 가 해결을 한다. 길에서 시비를 벌이는 일은 드물다. 그렇지만 보험도 안 들고 협조적이 아닌 상대를 만나면 기지가 필요하다.
외국 사람과 분쟁을 품위 있게 해결하려면 의사표시가 자유로워야 하는데, 언어 때문에 이게 유학생들에게 힘들다. 억울한 감정을 말로 제대로 표출할 수 없다면 인상부터 먼저 험해질 수밖에 없다. 이민 초 한국의 초중고등학생들이 현지인 친구를 때리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이들은 약을 올리는 현지 아이들에게 말로 대꾸할 수가 없어서 주먹질을 하게 된 것이었다.
아래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본다.
(1) 영미국가에서 운전교습은 도로상에 나가 한다. 교관이 운전석의 교습생 옆에 앉고 타고 다니면서 한다. 교습이 끝나면 시간 당 돈을 받고 다음 예정을 정하고 헤어진다. 한 한국 유학생은 교관의 태도가 무례해서 그만 끝내고 싶었다. 이때 그는 당연히 더 이상 안하겠다고 확실하게 말했어야 했다. 그런데 마음이 약한 이 학생은 그렇게 못하고 우리식으로 다음에 연락하겠다고만 말했다. 이 교관은 나중에 연락없이 다시 찾아 왔는데, 이런저런 사정을 말하며 취소하느라 서로 시간을 낭비했다.
(2) 사업차 한국을 다녀온 서양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재미있다. 한국에서 [예스]라는 대답을 듣고 돌아온 후 그 일을 진전시키려고 편지를 보내면 묵묵무답이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서양인들 앞에서 [노]라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모호하게 [예스] 해놓고 나중에 빠지는 식을 택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한 때 일본 정치인이 [Japan That Can Say No/노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내서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우리도 하루바삐 [노]라고 해야 할 때는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서양에서도 세일즈맨은 끈덕지다. 특히 태도를 확실히 못하는 동양인들을 밀어붙인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젊은 미국 몰먼 선교사의 경우도 그렇다. 이들은 우유부단한 동양 젊은이들에게 잘 접근하는데, 이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처음부터 Yes 또는 No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
(3) 한국인들은 흔히 외국인과 대화할 때 잘 못 알아들어도 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어 보인다. 잠깐은 예우가 되고 잘 넘어갈지 모르지만 조심해야 할 일이다. 잘 알아듣지 못했을 때는 재차 묻는 편이 낫다. 그대로 넘어가다가는 큰 오해가 일어날 수 있다.
(4) 영미인들은 식사할 때 테이블 건너편에 있는 양념 병 같은 것이 필요하면 건너편 사람이나 옆 사람에게 건네 달라고 요구한다. 한국인들은 친구나 아랫사람에게는 그렇게 해도 윗사람과 손님에게는 그렇게 못한다. 그래서 음식 너머로 손을 들어 직접 집어오려고 하기도 하지만 주의할 일이다.
(5) 외국인 학생이 어려운 부탁을 해 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받아들일 수 없을 때는 빨리 확실하게 대답을 해 주어야 한다. 마음을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말해 주되, 시간이 갈수록 거절하기 어려워진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6) 외국에서는 학생들끼리는 물론, 학생과 교수간에도 금전 거래는 철저하다. 학생이 교수에게 돈을 꾸어 주었는데, 그 교수가 갚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하자. 한국에서는 큰 액수가 아니라면 말을 해 받아 내는 학생은 드물다. 이런 경우 서양의 학생들은 부드럽게 말을 한다. 우리에게는 매우 박절하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실용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