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현 교수의 신학논단
신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2)
‘신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관한 두 번째 주제는 중심부와 주변부에 관한 이해이다. 성경은 우주의 중심을 인간에게 두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 두고 있다(시 93:1-5). 그러므로 온 우주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그리고 핵심적인 명제이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 우주의 중심부이며, 그곳을 성경은 하나님의 보좌라 말한다. 그런 우주의 중심에 대해 신약은 예수가 바로 그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며,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이 그 분 안에 함께 서있다고 선언하고 있다(골 1:15-17). 그러므로 세상은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가 된다. 반대로 예수께서 중심부에 거하시는 분이시다. 결국 예수께서 계시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 주변부에 세상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이것을 우리는 성육신이라 한다. 우리는 예수의 이러한 성육신을 통해 세상의 중심부의 이동이 일어났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의 변화가 세상의 구원을 가능하게 했음을 우리는 신약을 통해 보게 된다. 다시 말해, 중심부에서 주변부로의 이동은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을 요한복음은 빛이신 예수께서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의 백성들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고 기록함으로 예수께서 세상의 주인, 즉 중심이시지만, 주변부인 이 땅에 오셨음을 선언하며(요1:11), 새로운 변혁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물론, 당신의 소유가 되시는 이 땅으로 내려오신 예수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속죄의 사역을 감당하신 후에, 다시 높아지심으로 영속적인 우주의 중심부로 돌아가셨다(엡 1:210-21).] 또한 이러한 중심부와 주변부의 이동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즉, 이러한 중심부의 이동을 통해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시작하셨고, 완성하셨음을 신약은 우리들에게 확증해 주고 있다.
이러한 중심부와 주변부와 관계에 관한 관점을 가지고 신약의 세계를 한 번 들여다 볼 때, 신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신약 안에서 예수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어떻게 이 세상에서 주변부에서부터 시작하여 중심부로 이동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구체화시키고 있는지를 우리는 복음의 확산의 경로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먼저 이스라엘을 한 번 생각해 보자. 이스라엘은 성전을 중심으로 국가를 경영하였기에, 모든 나라의 중심은 성전이며, 성전이 있는 곳, 즉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있어서 중심부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 중심부에서 태어나시지도, 자라시지도 않았으며, 그 중심부에서 사역을 시작하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이스라엘에게는 주변부였던, 갈릴리로 가셔서, 그곳에서 자라나서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즉, 주변부에서 시작한 예수의 사역은 그 구원의 완성을 위해 이스라엘의 중심부를 향한다. 그래서 예수의 사역은 그가 이 땅에 오셨던 방식과 동일하게, 먼저 주변부(갈릴리)로부터 시작하여 중심부(예루살렘)으로 향함으로 완성되고 있음을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과 자녀들이 주변부에서 중심부에로의 이동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 새로운 변혁의 시대를 여는 방식은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역사하시는 방식임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약을 올바로 읽기 위해서는 그 시작점이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도 갈릴리 사람들로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을 향했으며,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예수의 사역을 통해 인류의 구원의 사역이 완성되고, 그 중심부인 예루살렘이 정복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정복의 모습은 예수의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이루기 시작한 새로운 운동을 통해서 구체화되었다. 예수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주변부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예루살렘을 예수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정복함으로 새로운 중심부의 주역이 되었음을 신약은 보여주고 있다.
이제 이러한 관점을 좀 더 넓은 세상, 즉 로마 제국이라는 틀 안에서 놓고 보자. 로마 제국 안에서 볼 때,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변방, 즉 주변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정복하며 시작한 예수 운동은 사실 로마제국의 주변부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러한 로마의 주변부에서부터 시작했던 예수 운동이 어떻게 로마 제국의 중심을 향하여 그 세력을 확산하고 있는지를 우리가 이해할 때, 우리는 신약 전체를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예수의 승천과 성령의 강림, 그리고 교회의 태동과 예수의 사람들의 활동은 로마제국에 볼 때, 지극히 주변부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 주변부와 주변부의 사람들이 그 주변부에 머무르지 않고, 그 당시의 세속의 역사의 중심이었던 로마를 향하기 시작했음을 우리는 성경과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 분명하게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을 통해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고, 주변부가 중심부를 정복하고 변혁시켰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신약을 읽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움직이시고, 구원의 뜻을 어떻게 완성하고 계시는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가 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을 여기서 다 풀어내지는 못하지만, 주변부(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예수 운동은, 주변부의 사람들(유대인들)을 통해, 이제 세상의 중심(로마)를 향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신약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의 정복방식도 자기 희생적 사랑의 실천을 통해 나타났듯이, 예수의 사람들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로마를 정복하고 있음을 우리는 신약에서 발견하게 된다.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삶을 내려 놓고, 전부를 거는 자들이 세상의 힘과 권력과 경제력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고한 확신과 희생적 헌신을 통해 복음의 확산을 가져오게 되는 내용이 신약이다. 그들은 서로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를 도우며 섬겼다. 서로를 지지하며, 한 사람 한 사람 정복했다.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능력으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성공할 수 있었는가를 신약을 통해 발견할 때, 우리는 신약을 올바르게 이해했다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방식, 즉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는 방식, 그가 이 땅에서 사역을 시작하고 완성하는 방식, 그리고 제자들로 시작된 교회의 시작과 확산의 방식으로, 이 모두에 공통적으로 나타는 것은 주변부에서 시작하여 중심부로 향하는 방식이다. 그러한 확산의 내용의 원형을 제시하는 것이 복음서요, 그 복음의 권능이 제자들을 통해 로마 전역으로 확산되는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 사도행전이요, 예수 운동을 통해 복음이 확산되며 세워졌던 교회가 어떻게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무수하게 산재되어 있던 문제들을 풀어가며 중심부를 향할 수 있었는지 보여주는 것이 서신서들이며, 결국 주변부에서 시작된 예수 운동이 어떻게 중심부를 정복하고 세상에 우뚝 서서 영구적이고, 본래적인 중심부로 회귀할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계시록이다.
이러한 신약 역사의 틀과 신약의 기술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완성의 방식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로, 하나님의 방식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것은 중심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변부로 향하여 그곳에서부터 시작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둘째로, 이것은 결코 멈추어서는 안되는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그 영구적이며 완성된 중심부인 예수에게로 돌아갈 때까지.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세상의 중심부였던 로마가 기독교에 정복되고, 기독교는 그 방향성을 잃어버렸을 때 타락했다는 점이다. 천년왕국이었던 로마에 기독교가 정복과 함께 멈추었을 때, 마치 로마제국이 그 확산을 멈추었던 것과 궤적을 같이하며, 로마는 타락하고, 기독교도 타락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기독교가 그랬다. 초기 한국의 기독교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학교, 병원, 고아원 등 그 사회의 주변을 향했고, 그들로부터 그 나라를 새롭게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중앙부에 안주한 기독교는 더 이상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되면서 멈추었고, 결국 오늘의 기독교의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결코 멈추어서는 안된다. 세상의 중심이 아닌, 우주의 중심, 하나님의 보좌로 향할 때까지 그 걸음을 멈추지 않고, 정복한 땅을 주변부로 삼아, 다시 더 큰 중심을 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락한다. 그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염원을 상실한채로. 영원할 것같았던 로마제국 안에서 기독교가 멈추어 서는 순간 암흑기가 왔던 것처럼, 한국의 기독교가 권력의 시녀가 되고, 물질의 노예가 되며, 번영이라는 추악한 틀에 갖히면서 몰락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주변부는 어디이며, 중심부는 어디인가? 오늘 우리들에게 세상의 변혁을 위해 먼저 찾아가서 시작해야할 주변부가 어디인가? 또한 우리가 향해야 할 중심부는 어디인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의 나라의 이념을 성취해야할 정복할 땅은 어디인가? 예수의 방식으로 변혁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할 오늘날 우리가 이겨내야할 중심부는 어디인가? 복음의 능력을 통해 자유(죄사함)와 구원을 완성해야할 오늘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그 가야할 땅은 과연 어디인가? 이러한 질문을 답을 찾아가며 멈추지 말자. 중앙부를 향하되, 그것을 위해 먼저 주변부를 향하는 방향성을 가지며, 중앙부를 정복한 후에는 더 큰 중앙부를 향하는 방향성을 더욱 구체화하자.
김세현 교수(SCD 신약학)
시드니예안장로교회 담임, 시드니신학대학한국신학부 교수, 시드니하우스 성경언어연구소 소장, 영국셰필드 대학교 성서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