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현 교수의 신학논단
신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4)
지난 호에서 우리는 신약성경 이해의 한 축인 유대문화의 이해가 어떻게 신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신약성경 이해의 또 한 축인 그리스-로마 문화와 신약의 관련성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흔히 신약성경을 분류하는 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 신약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사도행전), 초대 교회의 영적 리더들이 각 교회들에게 보낸 서신서 (바울서신과 공동서신), 그리고 신약 시대와 그 이후의 역사를 전망하는 계시록 (요한 계시록). 하지만 신약을 분류하는 또 다른 방법은 (약간 다른 방법으로) 저자 중심으로 분류하여, 사도 요한을 중심으로 요한문헌(요한복음, 요일 1, 2, 3서, 요한계시록), 그리고 누가문헌(누가복음, 사도행전)으로 분류하여 앞에 언급한 분류법과 병행하여 신약 본문을 연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류를 먼저 정리한 이유는 누가문헌에 대해서 잠시 언급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한 저자의 글로 놓고 보면, 1세기 기독교 역사가 전체적으로 조망된다. 다시 말해, 누가행전이라 불리기도 하는 누가문헌은 예수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 승천, 그리고 그 승천으로부터 출발하는 초대교회의 태동 그리고 교회의 확산이 로마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는데, 그러한 두 글의 통합적 이해는 어떻게 기독교의 초기 역사가 그리스-로마 문화와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는가를 가름하게 만든다. 이러한 조망은 결국 바울서신과 공동서신, 또한 요한문헌 등의 모든 신약의 글들이 여전히 구약으로 대표되는 유대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면서도, 그리스-로마 문화와 연결하여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를 신약을 읽는 우리들에게 제공해 준다.
유대문화 안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비록 로마와 무관하지 않지만) 이해해야 하는 것이 주된 접근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시작하는 초대교회는 그 활동 배경이 유대문화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신약의 다양한 글들을 기록한 저자와 수신들 모두 그리스-로마의 문화에 익숙한 자들이 대부분이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또한 신약의 27권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약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스-로마 문화를 얼마나 잘 이해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확증해 준다. 따라서 신약을 보다 더 잘 읽기 위해서 우리는 로마제국이라는 지도를 머리 속에 넣고, 그 제국 안에 살았던 무수한 인종과 문화, 그리고 지리와 도시, 다양한 종교 등에 대한 이해를 확장해야 한다. 따라서 어느 곳에서 누가 어떤 일을 경험했는가를 로마제국의 큰 그림 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그러한 배경적 지식은 신약 본문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도움을 준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먼저, 1세기 사회에서 아버지의 개념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아버지 개념을 넘어선다. 유대인들에게 아버지는 그 집에 속한 모든 식솔들(아내, 자녀, 노예와 객)을 대표하고, 그들의 안녕과 번영을 책임지는 자이다. 그러므로 가장의 권위가 가장 중요한 질서의 원천이 된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아버지에 대한 이해는 바로 그들을 자녀 삼으신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유대인들에는 매우 중요한 신관을 형성하는 근거가 된다. 이처럼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 되심을 분명하게 이해되고(시편 89:26; 마 6:8) 매우 중요하듯이, 로마 사회에서 이 아버지의 개념은 가정을 대표하고 책임자로, 가장 권위가 있는 자로써 동일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버지의 개념의 정점이 로마 황제를 지칭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를 두고 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유대인들을 한 가족의 식구로 이해하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로마에 속한 사람들은 황제를 아버지로, 로마제국을 가정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아버지의 개념은 두 문화 사이에 그 개념의 공유와 차이를 가지고 이었지만, 두 문화를 융합하고 더 확고한 기독교의 아버지관을 형성하는데 활용되었다. 즉,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과, 로마인들이 황제를 아버지로 부르는 사상의 결함은 근본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이상형, 또는 이미지의 변화를 낳았고, 그 시대에 기독교 밖의 사람들이 가졌던 아버지의 개념과는 다른 이해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방 기독교인들에게는 로마의 황제가 아닌 성부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가치관의 변화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며, 유대인들의 여호와 하나님과 로마제국의 황제가 경쟁하는 가치관을 그 기저에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것은 대단한 신앙적 고백이기도 하지만, 또한 로마 제국에서 황제가 아닌 다른 존재를 아버지로 숭배하는 반정치적 행보로 이해될 수 도 있었다 (이러한 개념은 황제 숭배 사상으로 인해 기독교의 하나님과 로마제국의 황제가 신이라는 사상의 충돌과도 연결되어 있다).
또한 이 아버지의 개념의 차이는 실제로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이해하는데 다른 이해를 던져 주기도 했다.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개념은 메시야로써의 예수님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개념을 핵심으로 갖지만, 로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은 황제의 아들, 즉 왕적 신분을 가진 존재로 이해되는 경향을 더 가지고 있었다. 결국, 이 사상은 황제숭배사상과 함께 예수님의 정체성의 경쟁을 낳는 이유가 되었다. 로마제국에서 신(god)이라는 칭호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사후에 처음으로 그에게 붙여졌는데, 그 후대의 황제들은 그의 아들로, 즉 신의 아들로 명명되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신, 그리고 신의 아들로 숭배되었는데, 그 시대의 살았던 기독교인들은 이 황제가 아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던 것이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메시야로 고백하는 것이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즉, 다시 말해, 황제가 그들의 왕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들의 왕이라는 고백을 담는 것이기에, 죽음을 담보한 고백이 되는 것이다(롬 10:9-10; 빌 2:11, 이러한 칭호적 관련성은 주<Lord>라는 칭호 속에서도 강화되고 발전되기도 한다. 지면의 한계상 이 부분은 언급하는 정도로만 그치겠다).
이처럼 아버지와 아들의 개념이 유대적 개념뿐만 아니라, 로마제국 안에서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의 인식은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어떠한 정치적, 종교적 상황 속에서 그들의 신앙을 가졌고, 전파했으며, 또한 받아들였는가를 가름하게 해준다. 또한 그러한 상황 속에서 기록된 신약은 그 시대를 저항하고, 우회적으로 황제가 아닌 하나님, 예수님을 그들의 아버지와 아들, 즉 그들의 주와 왕이 된다는 선언을 하고 있기에, 신약은 그 시대를 뛰어넘기 위한 저항과 전복의 정신을 가득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시대의 가치관을 저항하고, 그들의 신앙을 세우고 전파하며 그 신앙으로 로마제국을 정복하였던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우리는 신약에서 보아야 하고, 그러한 시대정신을 가지고 오늘 우리의 시대를 저항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럴 때 신약을 올바로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예는, 친구의 관한 개념이다. 로마 사회에서 친구는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친구의 개념과 사뭇 다르다. 이 친구의 개념은 계약적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어떤 친구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자원의 양을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그냥 친분에 의해 친구를 맺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신분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계약관계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신분이나 재력, 또는 지위가 높은 누군가가 그 보다 낮은 누군가를 친구로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은, 높은 자가 낮은 자의 후견인이 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높은 자의 자리까지 낮은 자를 이끌어 주겠다는 공적 계약의 선언이 되었다. 따라서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누구의 친구로 불리셨는지, 그리고 예수님은 누구를 친구로 삼았는지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이해가 발생한다.
예수님을 부정하고 맞섰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 11:19)라고 불렀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이제는 그들을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부르셨다(요 15:13-15). 즉, 유대인 지도자들과 군중들은 그들이 경멸하고 부정하였던 집단과 같은 부류로 예수님을 취급하였고, 그의 사회적 지위를 격하하려 했다. 그래서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세기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마도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표현을 이방인들이 듣게 되면, 그들은 예수님의 존재를 괴팍하고 사회적 통념과 제도를 무시하는 갈등을 유발하는 존재로 인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약은 이러한 별명을 예수의 정체성을 확보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러한 시대의 정신을 거부하고 전복하는 방향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독자들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이러한 치욕적 별명을 통해 오히려 예수님의 자비와 관용, 사랑과 희생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그러한 행보를 마다하지 않으셨고, 그 속에서 그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친구의 개념을 뛰어 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가셨던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은 제자들을 친구로 부르셨다. 이것을 로마문화의 친구의 개념에서 보면, 반대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 그리고 제자들을 친구로 받아들이셨기에, 이제 그들은 예수님의 위치까지 올라가게 될 것을 예수님은 공적으로 선언하신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즉 예수님께서 그들의 후견인이 되시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이런 친구 선언은 결국 그들에게, 그리고 오늘의 독자들에게 예수님의 자리에까지 그를 따르는 자들은 반드시 올라가게 될 것을 확신시켜 주기에, 큰 위로와 소망을 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예수님의 나라에서는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을 것이요(살전 4:17) 왕노릇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딤후 2:12; 계 20:4; 22:5).
김세현 교수(SCD 신약학)
시드니예안장로교회 담임, 시드니신학대학한국신학부 교수, 시드니하우스 성경언어연구소 소장, 영국셰필드 대학교 성서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