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의 아름다운 아픔과 역사적 오심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시 82:2)
경기가 끝났다.
인터넷을 통해 소개된 호주의 한 언론기사는 Sochi skating scandal이란 표현과 함께 김연아가 금메달을 ‘러스키들(Ruskies)에 의해 도둑 맞았다’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러스키’는 러시아인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온라인에서는 피겨스케이팅 결과와 관련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설문조사가 소개되고, ‘금메달 되찾기 운동’을 벌이며 관련기관의 웹사이트를 도배하는 등 서버를 마비시킬지경에 이르렀다. 더우기 이번 여자 피겨 심판진 구성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외신들의 보도도 계속되면서 러시아 피겨 연맹 회장 부인과 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담합으로 징계를 받았던 인물이 심판진에 포함된 것과 절반 가까운 심판들이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로 채워졌다는 사실이 공개 되었다.
여기에 무역규모는 세계10강, 경제력도 10위에, 각 종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도 세계 10위를 자랑하는 강국임에도 왜 스포츠 외교는 역소국으로 항상 오심피해의 단골국이 되었느냐는 푸념도 곳곳에서 들린다.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자기 목소리 내는 것에 유독 약한 것이 사대주의 근성 때문인지 동방예의지국에 대한 지나친 소심함 때문인지는 모르나 스포츠외교와 관련한 스포츠 정책 개발과 추진, 오심예방과 오심피해 대책 전문가, 전반적인 마케팅 전문가, 통번역 인력 등을 집중 보강하고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렇듯 모두가 김연아 선수의 결과에 광분하고 있을 때에, 그녀는 “자신의 목표가 금메달이 아니라 준비한 것을 경기에서 클린해 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만족한다”는 고백을 통해 스포츠 정신이 진정 무엇인지 그 성숙함을 보여주었다.
오심(誤審) or 오심(汚審)
사실 ‘오심(誤審)’은 스포츠 현장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판정 실수와 오심은 인간이 가진 한계의 한 부분이기에 스포츠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물론 이러한 실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국제연맹과 심판들은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시스템을 점검하고 바꾸어갈 필요가 있다. 그러고보면 역대 올림픽 5대 오심사건에는 88서울올림픽 복싱 결승전도 포함되어 있다. 박시헌 선수와 로이존스의 대결에서 로이존스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경기였지만 심판들은 한국의 박시헌 승리를 선언하였다. 당시에 대부분의 언론은 분명 이 판정은 심판의 오심이었다고 지적하였고, 따라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도 비열한 승리에 취한 한국인들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또 지난 2002년 월트컵 경기에서도 우리와 대전했던
포르투갈 , 이탈리아, 스페인 3경기 모두가 역대 월트컵 최악의 오심사건에 포함된다고 알려진 바 있다. 우리 축구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2002월드컵 4강이 편파판정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한국인은 없겠지만 말이다.
결국 오심(誤審)이 순간적인 판단 실수 등에서 나오는 잘못된 판정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완전하지 못함에서야 당연히 나올 수 있는 결과임을 인정해야 한다. 반면, 오심(汚審)은 악의, 담합, 음모, 이해 등에서 나오는 고의적이며 왜곡된 판정을 말하는 것이기에 이는 ‘불법’이라 규정되어야 한다.
관심 밖의 진실들
스포츠로 인해 웃고울고 흥분하며 마음을 빼앗긴 사이 우리가 놓친 몇 가지 역사적 오심의 이야기들에 주목해 보자. 스포츠라는 것이 국민을 우매화(愚昧化)하는 도구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상술과 민족주의의 온상이었고, 뭇 독재자들이 정권유지의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국민이 접할 수 있는 정보를 차단하고 대중문화를 조작해서 민중의 자발적인 정치참여를 막고 국민의 이목을 다른 곳으로 집중시키려는 정책이었다. 과거 로마시대 검투사를 이용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였던 것이나, 80년대 서울의 봄이후 쿠테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이 자신들의 정권유지를 위해 ‘3S 정책’ 즉 스크린, 섹스, 스포츠를 이용해 민중의 감각을 누그러뜨린 정책이 우매화 정책의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가 개최국의 이득을 본 것인지 의도적인 판을 벌인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스포츠로 인한 이 희비의 난리판에 지난 대선에서의 국정원 선거개입 부정사건이나 검찰의 화교남매에 대한 간첩증거 공문서 위조사건, 그리고 100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인 영화 <변호인>의 배경 인물인 ‘부림 사건’ 피해자들이 33년 만에 국가보안법이라는 굴레의 억울한 누명을 벗은 것 등 놓치지 말아야 할 우리 사회의 공정하지 못했던 불법의 사실들은 그렇게 관심 밖의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피겨 판정에 광분했던 우리가 그보다 훨씬 더 악랄하고 조직적이었던 우리 사회의 악과 부정에 대해 공평과 정의로 움직였다면 세상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의로워지지 않았을까.
인간은 절대 공평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평의 잣대가 항상 자신을 향하기 보다는 타인을 향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본성이다.
그러나 세상은 공평이 아니라 의로운 희생양을 통해 움직여 왔다는 기독교 신앙의 비밀을 되새겨 본다. 한 논평가의 말처럼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땄더라면 내셔널리즘의 가벼운 승리주의에 젖어 몇 일 정도 기분 좋았을 사건’이었겠지만, 억울한 은메달이었기에 두고두고 생각하며 회상과 반성으로 오늘을 돌아보고 우리사회의 부정을 점검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어쩌면 김연아 선수의 희생(?)은 지난날 우리의 편파판정을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평창 올림픽 때는 진정으로 땀 흘린 선수들이 공정한 평가와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도록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질 것이다.
나아가 지난 세대와 작금에 권력의 희생양으로 잊혀졌던 수 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역사의 아름다운 아픔들로 두고두고 기억되어져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는 증거로 살아나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