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칼럼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선
이브의 딸
오래 전 ‘불가사의한 안경’이라는 제목의 미국 드라마를 본 기억이 있다. 한 남자가 작고 긴 4각형의 렌즈로 만들어진 안경을 줍는다. 그 안경 옆에는 한 남자가 죽어 있다. 몹시 괴로워하다가 죽은 듯한 표정이다. 안경의 모양에 마음이 끌린 이 남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안경을 잠깐 써본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말들이 들려오는 것이다. 그 안경을 통해서 마음이 보이고 생각이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남자는 그 안경을 쓰고 게임에서 연전 연승이라는 행운을 얻게 된다. 여기서 멈추었다면 다행이지만 남자는 거기에서 멈추지 못하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진정한 자신을 보고 싶어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숨기고 있는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자신이 숨기고 있는 자신, 자신도 알지 못하고 꼭꼭 숨겨놓은 마음의 세계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안경을 쓰고 거울 앞에 앉는다. 불을 끄고 촛불을 켜고 움직임 없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시간이 흐르고 새벽녘……거울 속 남자의 얼굴이 수면에 비친 듯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멈추자 추악한 괴물의 형상이 나타난다. 남자는 경악하고 충격을 받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괴로워하며 죽어간다. 그의 시체 옆에는 다시 안경이 떨어져 있다. 마음을 보는 것을 주제로 한 소설 영화는 무척이나 많다. 여자의 생각이 들리는 영화도 있었고 마음이 나쁜 여자는 뚱뚱하고 못생겨 보이고 마음이 고운 여자는 아름답고 날씬하게 보이는 영화도 있었다. 모두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면, 생각이 들린다면, 이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중요한 이슈인 ‘조할리 창의 네 가지의 자신’은 사람이 가진 4가지 모습을 설명한다. 첫째, 자기 자신도 알고 있고 친한 친구도 알고 있는 자신-이는 앞면의 자신 이라고 한다. 둘째 자기 자신은 깨닫지 못하지만 친한 친구는 알고 있는 자신(맹점의 자신), 셋째 자기 자신은 알고 있지만 친한 친구도 알지 못하는 자신(뒷면의 자신), 마지막으로 넷째 자기 자신도 친한 친구도 알지 못하는 자신(미지의 자신)이다. ‘불가사의한 안경’을 주운 남자는 본능적 충동의 구체적 모습 즉 원시적 자아 또는 미지의 자아를 본 것이다. 그 모습은 무의식 세계에 숨어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드라마 속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원시적 자아를 볼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 상상이 되는가? 지금 보이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생각이 드는가?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괴물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 상상이 되는가?
사람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이다. 성경 속의 위대한 존재들 조차 수없이 많은 죄를 저질렀다. 다윗이 그러했고 베드로가 그러했고 심지어 바울 역시도 선한 스데반이 죽을 때 돌을 던지는 이들과 다르지 않은 죄를 저질렀다. 단 한 분 예수 외에는 그 누구도 눈과 같이 하얀 삶을 살지 못했고 그것이 외려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내면 속에는 아담과 이브의 죄이래 피를 통해 받아온 죄성이 남아있고 이는 꼭꼭 숨겨져 있다가 순간 순간 뱀처럼 고개를 들곤 한다. 선한 얼굴로 사회 생활을 하고 친구와 지인에게 예의 바르고 다정한 태도로 살고 있으며 어느 누구보다 사랑을 실천하고 나누며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무의식 안에 어떤 괴물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이다. 바울의 고백처럼 매일 죽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힘으로 살지 말고 그분께서 이런 우리를 알고 미리 보내고 준비하여 주신 보혜사의 도움을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매일 매일 내 안에 죄성을 죽이고 내 고집을 죽이고 내 욕심을 죽이고, 오직 기도 안에서 매일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크리스천의 삶은 쉽지 않은 길이다. 넓은 자가용 타고 달리는 고속도로가 아니란 말이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골고다의 언덕이며 숱한 유혹이 우리를 흔들고 거센 바람이 끊임없이 우리를 넘어트리려 하는 길이다. 각오를 단단히 하자. 그분의 능력에 의지하여 철갑을 두르고 믿음의 군사 되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보혜사 성령, 그분의 팔을 의지하고 나가야 한다.
이브의 딸
김은희
사랑에 중독된 그분처럼
나 역시 유리그릇 같은 가슴이지만 보다 고운 마음 차곡 차곡 담고 싶어요
웅크린 구석에 쌓여진 어둠을 작은 용기로 몰아내며
그렇게 빛의 전사로 살고 싶고요
그늘에 핀 작은 들꽃이 되어 가녀린 향기로 마음이 가난한 친구를 안을 수 있다면
조금 생채기 나는 삶이라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하지만 나는요
가슴에 새겨진 주홍글씨 새겨진 이브의 딸
선악과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태초의 어머니 그녀의 혀를 유감스럽게도 닮았네요
불루마운틴 암벽처럼 어깨를 펴고
어린양의 신음에 어제를 씻어보아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바울의 탄식이
오늘 또다시 나의 기도인 것을 어찌해야 할까요
열 번을 눈물을 닦고 스므번 넘어지고
온몸에 덕지덕지 먼지가 쌓여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
그분 없이는 숨쉴 수 없는 나, 이브의 딸
정말 이제는 어찌해야 할까요
김은희(시인, 미술심리치료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