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의 2020 고난주간 단상

4월 5일
2000년 전 오늘, 예수님께서 감람산 중턱에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눈물 흘리셨습니다. 그곳에 ‘눈물교회’가 있습니다. 2019년 9월 18일, 그곳에서 찍은 사진.
“No Cross, No Crown”, “No Pain, No Gain”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2)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눅 19:41-48)
4월 6일

종려주일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은 부활절 전날까지 이어집니다. 오늘은 고난 주간 둘째 날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된 것을 참지 못하시고, 청결하게 하신 날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백악관입니까? 집이 하얗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미국 대통령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청와대입니까? 기와가 푸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한국 대통령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성전입니까?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4월 7일
오늘은 고난주간 셋째 날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변론한 날입니다. 마태복음 21장-23장은 변론한 내용입니다. 이들은 배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답하기도 하셨고, 비유로 말씀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되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마태복음 22:36절, 율법사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나이까?” 질문에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율법사는 비슷한 질문을 합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25절), 예수님께서 “율법에는 무엇이라 쓰여 있느냐?” 되질문을 하자, 율법사가 “마음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니, 예수님은 “ 맞다 그렇게 하면 살 것이다” 하셨습니다. 다시 율법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질문합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때 예수님은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부탁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37-40 ‘지상최대의 명령’(The Great Commandment)인 ‘사랑’과 마태복음 28:18-20 ‘지상최대의 사명’(The Great Commission)인 ‘선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선교하는 사람입니다.
4월 8일
오늘은 고난주간 넷째 날입니다. 예수께서는 침묵하셨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궁리했던 ‘음모의 날’(Spy Wednesday)입니다. 당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정치과 종교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두개파는 성전을 중심으로 권력을 잡고 있던 현실주의자이고, 바리새파는 회당을 중심으로 권력을 잡고 있던 율법주의자입니다.
사두개파는 부활을 믿지 않고, 바리새파는 부활을 믿었습니다. 사두개파는 내세를 부인하고, 바리새파는 내세와 각 개인에게 상응하는 보상과 처벌이 있는 것을 믿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부인하였지만, 바리새인들은 영적인 영역에 있는 천사와 마귀의 존재를 인정했습니다.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두 파가 예수를 죽이는 데는 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유월절 전에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구약에는 3대 절기가 있습니다. 3대 절기는 3대 추수와 관련이 있습니다. 보리를 거두는 무교절, 밀을 거두는 맥추절, 과실을 거두는 수장절입니다. 3대 추수는 3대 역사적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다. 무교절은 출애굽한 유월절, 맥추절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오순절, 수장절은 광야 40년을 기억하는 초막절입니다. 또한 구약의 3대 절기는 신약으로도 이어집니다. 유월절은 부활절, 오순절은 성령강림절, 초막절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이들은 백성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때까지 백성은 예수를 지지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죽일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서 백성을 선동하여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종교적 죄목만으로 예수를 죽일 수 없게 되자, 정치적 죄목으로 바꿉니다. “우리의 왕은 가이사인데, 예수가 왕이라고 했다”고 고발했습니다. 예수가 왕이라면 정치적인 문제이기에 빌라도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재판 중에 빌라도의 핵심질문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요18:33)입니다. 십자가의 팻말도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요19:19)이라고 썼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했고, 바울도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7)라고 했습니다.
4월 9일
오늘은 고난주간 다섯째 날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셨고, 높아지려고 다투던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날입니다. 영어로 ‘Maundy Thursday’라고 합니다. Maundy는 세족식이란 의미도 있지만, 어원적으로 ‘명령’(Mandate)이란 뜻입니다. 세족식을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하신 명령입니다.

성만찬 도중 제자들 사이에서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눅22:24) 이 때 예수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의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발을 씻기는 것은 종들이 하는 일인데, 예수께서 발을 씻기자 제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거부하였지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라는 말씀에 몸도 씻어 달라고 했습니다.
세족식을 마치고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3-15) 하시며 친히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고 하셨습니다.
성찬이란 ‘거룩한 식사’라는 뜻인데, 그 식사의 내용은 ‘떡과 포도주’입니다. 떡은 인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몸을 의미하고, 포도주는 인류를 위하여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성찬에 대한 기록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26:26-29; 막 14:17-25; 눅 22:7-22; 요 13:21-30).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에 없는 세족식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1장 23-29절에 성찬에 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11:24-25) 바울은 성찬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성찬에 대한 4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화체설(Transubstantiation), 마틴 루터의 공재설(Consubstantiation), 쯔빙글리의 기념설(Memorialism), 칼빈의 영적 임재설(Spiritual Presence)입니다. 종교개혁 시절 루터와 쯔빙글리는 연합하려고 했으나, 성찬에 대한 의견이 달라 결국 헤어지게 됩니다. 연합과 일치를 강조하는 성찬이 오히려 분열의 불씨가 되었던 것입니다. 형식이란 내적은혜의 외적표현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례전의 형식이 아니라, 성례전적인 은혜의 삶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그를 기억하고, 기념하고, 기리는 순간들이 되어야 합니다.
4월 10일
오늘은 고난주간 여섯째 날입니다. 영어로는 ‘Good Friday’라고 합니다. ‘Good’이란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원적으로 ‘Holy’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6번의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첫 3번의 재판은 종교재판, 나중 세 번은 정치재판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 두 번째는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박 상태였기에 사형을 언도하여 집행하는 일은 로마 총독인 빌라도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일행은 예수를 끌고 총독 빌라도에게 갔습니다. 고소 내용을 들은 빌라도는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눅23:4) 하자, 자신을 왕이라고 칭하며 갈릴리로부터 시작하여 온 이스라엘을 선동하고 다니는 위험인물이니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 왕 헤롯에게 보냈습니다.(눅23:7) 빌라도와 헤롯은 평소에는 원수지간이었는데, 당일에는 친구가 되었습니다.(눅23:12) 헤롯은 예수를 통해서 특별한 이적이나 마술을 보고자 하는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일체 대꾸를 하지 않으시자, 헤롯은 왕을 상징하는 화려한 옷을 입히고 희롱하다가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께서 죄가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아내도 죽이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무리들의 함성소리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유월절 특사로 ‘바라바’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예수’를 살릴 것인가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무리에게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를 죽이라”고 선동했습니다.(마27:20) 곧 무리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빌라도는 민란이 일어날 것이 두려워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다 너희가 당하라”(마27:24)는 말을 남기고 십자가형을 허락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 삼시(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고, 제 육시(오후 12시)는 휘장이 갈라지고 어둠이 임한하였고, 제 구시(오후 3시)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기셨는데 이를 가상칠언 (架上七言)이라고 합니다. 가상칠언은 4복음서에 흩어져 있는 말들을 모아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넷째 말씀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나니”를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세 가지 말씀이 나옵니다. 첫째 말씀인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둘째 말씀인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그리고 마지막 말씀인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입니다. 요한복음에도 세 가지 말씀이 나옵니다. 셋째 말씀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다섯째 말씀인 “내가 목마르다”(요19:28) 그리고 여섯째 말씀인 “다 이루었다”(요19:30)입니다.
가상칠언 (架上七言)
1언: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2언: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3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4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막 15:34)
5언: 내가 목마르다(요19:28).
6언: 다 이루었다(요19:30).
7언: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다 이루었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완성입니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사명을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아직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이고, 죽는 다는 것은 사명을 다 이루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은 막는 것이 아니라 삶을 막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4월 11일

오늘은 사순절(Lent)의 마지막 날이자, 고난주간의 일곱째 날입니다. 사순절이란 부활절 전 40일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지내는 절기입니다.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여섯 번의 주일을 뺀 40일을 뜻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은 좋아하는 음식이나 고기를 가까이 하지 않고 채소와 계란 등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합니다. 재의 수요일 전날은 ‘마디그라’(Mardi Gras)입니다. ‘마디그라’는 불어이고, 의미는 ‘뚱뚱한 화요일’(Fat Tuesday)입니다. 사순절 시작 전에 영양보충을 하는 날이지요. 안타깝게도 호주에서는 마디그라가 ‘동성애자의 축제’로 의미가 왜곡되었습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아라마대 요셉의 무덤에 누워계십니다. 요셉은 예수의 제자로 부자였고(마27:57), 존귀한 공회원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막15:43). 그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예수를 처형하고자 결의할 때 가담하지 않았습니다.(눅23:50-51) 그는 예수의 제자로서 유대인을 두려워했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즉시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수습하겠다고 요청하여, 니고데모와 함께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예수를 장사지내고(요19:38-40), 자신의 새 무덤에 예수를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의 문을 막았습니다.(마27:60)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빌라도에게 가서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마27:63-64)하자, 빌라도는 경비병에게 무덤의 돌을 인봉하고 굳게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예수의 무덤이 두 곳 있습니다.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와 정원무덤(Garden Tomb)입니다. 성묘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라나가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이곳에서 십자가를 발견하고, 326년경 콘스탄티누스가 예수의 무덤자리라 추정하여 성묘교회를 세웠습니다. 이후 파괴와 재건축을 거쳐 오늘날까지 1700여년 가까이 수많은 기독교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원무덤은 1883년 영국의 고든 장군이 성지를 탐구하다가 다마스커스 문 북동쪽 암반 언덕을 발견하였습니다. 언덕 모양이 해골 같았고, 이름 또한 아람어로 ‘골고다(해골)’이라는 것과 근처의 오래된 무덤을 발굴하게 되어, 예수의 무덤이라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정원무덤이 예수의 무덤으로 알려지면서 기독교 성지로 보존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퍼스에서 온 신학대학교 교수를 만났습니다. 그는 3가지 근거로 정원무덤이 진짜 예수의 무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첫째, 비록 2000년이 지났지만 지형은 변하지 않습니다. 라틴어로 갈보리, 아람어로 골고다 즉 해골의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십자가형은 일벌백계의 형으로 경고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은 여리고와 다마스커스의 길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입니다. 셋째 십자가형으로 처형당한 사람들은 무덤이 따로 없이 근처의 구덩이에 던져집니다. 바로 언덕 옆에서 구덩이를 발견되었습니다.”
사실 예수의 무덤이 성묘교회이든 정원무덤이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그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름답고 큰 무덤을 자랑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승천하시어, 오순절 성령으로 강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안에서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