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약속이 있는 첫 계명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이다. 관계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대신관계와 대인관계이다. 대신관계란 하나님과 관계이고, 대인관계는 인간과 관계이다. 10계명은 1-4계명까지는 대신관계에 대한 계명이고, 5-10계명까지는 대인관계에 대한 계명이다. 제 5계명인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대인관계의 첫 번째 계명이다. 대인관계 중에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은 많은 시사점이 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과 공경’하라고 했다. 순종 앞에는 ‘주안에서’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이것이 유교의 효와 다른 점이다. 유교의 효는 ‘인본적인 차원’의 효이지만, 기독교의 효는 신본적인 차원의 효이다. 인본적인 효는 윤리적인 차원에 뿌리를 두고, 신본적인 효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다.
어머니 날(Mother’s Day)
오늘날 어머니날의 기원은 안나 자비스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교편을 잡았으나 가족과 함께 필라델피아로 이주하여 오랜 병중에 있었던 어머니 간호에 열중했다.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 앤 자비스는 1905년 5월 9일 타계했다. 안나는 자녀들이 부모가 살아있을 때 돌보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녀는 어머니를 그리워하여 어머니가 죽은 지 2년 후인 1907년에 ‘어머니 날’ 제정을 위한 뜻을 밝히고, 첫 어머니 날이 1908년 5월10일 웨스트버지니아의 한 감리교회에서 처음으로 지켜졌다. 그 교회는 자비스 부인이 20년 동안 주일학교 선생으로 봉사한 곳이었다. 1912년부터 어떤 주에서는 공휴일로 채택되기도 했다. 1914년 5월9일, 윌슨 태통령은 5월 둘째 주일은 국가적 공휴일로 ‘어머니 날’로 선포하였다.
아버지 날 (Father’s Day)
아버지의 날의 기원은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전통적으로 1907년 광산사고로 죽은 많은 광부들을 애도하는 예배가 기원이라는 사람도 있고, 1908년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교회 예배에서 시작됐다고 하고, 워싱턴 주 밴쿠버에서 아버지의 날을 처음 기념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아버지 날은 1909년 워싱턴에 살고 있는 ‘Sonora Dodd’ 이 제안함으로 시작되었다.

1909년, 그녀는 ‘어머니 날’에 대한 설교를 듣다가 감동을 받고 ‘아버지 날’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다. 처음에는 호응을 얻지 못했으나, 1924년에 국가적인 날이 되었고, 드디어 미국은 1966년에 6월 셋째 주일을 ‘아버지의 날’로 선포하였다.
어버이 날(Parent’s Day)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부터 ‘어머니날’을 제정하여 기념하기 시작하였으나 그 후 아버지와 어른, 노인들을 포함하여 어버이날로 개칭한 것은 1973년이다. 국가적인 날로 지정하기 전인 1930년 무렵부터 구세군 가정단에서 어머니 주일을 지켰으며, 1932년에는 감리교 연합회에서 5월 둘째 주일을 부모님 주일로 지킬 것을 결의한 바 있다. ‘어버이날’을 기념하는 꽃은 카네이션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사람은 붉은 카네이션을 드리지만, 돌아가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어버이의 무덤 앞에 올려 놓는다. 어버이 날이 가까워 지면서 소천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글을 썼다. 쓰고 나서 읽으며 몇 번이나 울었다.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신 분이다.
어릴 때 아버지 따라 가끔 낚시를 갔다.
혼자 가기 심심했는지 나를 데리고 다녔다.
고기를 잡지 못한 날은
시장에 들려 고기를 사서 가셨다.
어머니 보기가 민망해서 그런 것 같다.
그날 나는 기도원에 있었다.
하루 늦게 급한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어제 낚시터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아버지는 내 나이 조금 넘어 하늘나라로 가셨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오늘은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다.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고,
어머니는 과천 요양원에 계신다.
아버지는 기미년, 어머니는 병인년 생이다.
어머니는 아들만 4명을 두셨다.
연세가 드실수록 딸이 없음을 섭섭해 하셨다.
6.25 때 딸을 나셨는데, 전쟁 중에 죽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두 분은 사업을 하셨다.

어머니는 실질적인 대부분의 일을 담당하셨다.
똑똑하셨고, 강하셨고, 계산이 분명하셨던 분이다.
지금은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움직일 수도 없다.
젊은 날의 어머니 모습은 어느 한곳 찾아 볼 수 없다.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눈물이 난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던 어머니가 그립다.
어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원망스럽다.
독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아버지가 열 아들을 키울 수는 있으나 열 아들이 한 아버지를 돌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 사이에는 너무나도 많은 간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식은 자기 상처 받은 것만 생각하고 부모가 얼마나 아파하는 가는 생각하지 않는다. 효자 자식도 결혼하여 아내를 얻으면 2촌쯤 되고, 자기 자식을 낳으면 4촌쯤으로 더 멀어지며, 손자가 생기면 6촌쯤으로 더 멀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팔방가라는 가락이 있는데 이 가락은 부모와 자식을 비교하여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토속적인 교훈으로 전통처럼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팔방가를 간추려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자기 아이가 욕하면 기쁜 마음으로 귀엽게 여기면서도 부모님 이 책망하면 불쾌하게 여기니 아이와 부모를 대하는 마음이 왜 그리 다른가.
두 번째로 아이들은 천 마디 떠들어도 듣기 싫어 아니하면서도 부모님의 한마디 말은 잔소리라고 듣기 싫어하는구나.
세 번째로 어린아이의 오줌똥은 싫어하지 아니하면서 늙으신 부모님의 침 뱉는 것은 더럽다 하는구나.
네 번째로 아침에 일찍 시장에 나가 떡을 사오기에 부모님을 공경하는 줄로 알았더니 아이는 배부른데 부모는 맛도 못 보는구나.
다섯째로 부모님은 형제들이 서로 모시지 않겠다고 다투면서도 제 자식은 열이라도 남 주기를 싫어하는구나.
여섯째로 부모님이 베풀어주신 열 가지 은혜는 생각지 않고 자식의 한 가지 효도는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구나.
관계의 시작은 공감이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롬 12:15-16)
인간(人間)은 ‘사람 인자에 사이 간자’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는 존재란 뜻이다. 사이란 관계이며, 인간은 관계적 존재이다. 관계가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관계가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로마서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서 쓴 글이다. 로마서는 크게 1~11장, 12~16장으로 2부분으로 나눈다. 전자는 교리편이고, 후자는 실천편이다. 12장 9-21절까지는 ‘인간관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15절에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고 함께 울라”고 했다. 관계의 시작은 공감이다. 共感이란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다. 관계의 깊이가 공감의 깊이다. 20세기가 ‘이성과 합리’의 시대라면, 21세는 ‘감성과 융합’의 시대이다.
첫째, 이 세대는?
예수께서는 그 세대의 사람들을 이렇게 비유했다.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눅7:31~32)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은 타인에 대한 감정이 마비된 시대이다. 감정은 전염성이 있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는 다른 사람의 슬픔, 두려움 등 부정적 감정에 반응하지 않아 범죄를 저질러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사이코패스는 부정적 감정 뿐만 아니라 행복 같은 타인의 긍정적 감정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오직 자신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극단적 이기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말세가 가까워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될 것이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3:1-2)

둘째, 관계의 단절은 불행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자기가 앉아 있는 배의 바닥에 구멍을 내는 것이다. 사람들이 놀라 아우성치자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이 자리는 내 것이므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상관하지 마시오” 최근에 “욜로(YOLO)”라는 말이 유행했다. “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번 뿐이다)의 줄임 말이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내 뜻대로 살겠다는 뜻이다. 욜로 정신의 핵심은 ‘나와 현재’이다. 너보다는 나,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중하자는 말이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말이다. 하지만 관계를 무시한 ‘욜로’는 불행의 지름길이다. 유태인들은 인생을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공동체로 보았다. 그들 중 누구든지 잘못을 저지르면 자신들의 잘못으로 생각하고,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은 그들 모두가 잘 되는 것으로 보았다.
셋째, 관계의 회복은 행복
얼마 전 하버드대학에서 724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75년간 연구한 ‘행복의 비결’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좋은 인간관계이다.”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태어나, 공동체 안에서 살다가, 공동체 안에서 삶을 마감한다. 가정 공동체, 교회 공동체, 직장 공동체 등 공동체와 잘 연결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공동체 안에서 찾는 것을 ‘공동체 의식’이라고 한다. 공동체 의식은 지체의식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를 머리와 몸으로 비유하였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각각은 몸의 지체이다.
지체들이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룬다. 지체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를 통하여 서로 하나임을 아는 것이고, 너와 하나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12:12)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6-27) 하나님과 관계의 단절은 죽음이고, 관계의 회복은 생명이다. 사람과 관계의 단절은 불행이고, 관계의 회복은 행복이다. 자신과 관계의 단절은 의심이고, 관계의 회복은 믿음이다.
예레미야는 울고 있다 1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선지자 예레미야가 활동할 때는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었다. 남쪽에는 전통적인 강국인 애굽이 있었고, 북쪽에는 앗수르와 신흥제국으로 부상하는 바벨론이 있었다. 앗수루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고, 남유다를 치려다가 실패했다. 당시 남유다 왕은 히스기야였다. 바벨론의 세력이 강력해지면서 앗수르 제국이 위기에 처하게 되자, 애굽은 앗수르와 연합하여 바벨론을 치려고 했다. 애굽 왕 느고는 ‘갈그미스’로 가기 위하여 남유다의 요시야 왕에게 길을 열어달라고 했다. 요시야 왕이 거절하자 느고는 무깃도에서 일전을 벌였다. 무깃도 전투에서 요시야 왕이 죽게 되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위에 세웠지만 느고는 그를 폐위시키고 친애굽 왕으로 여호야김을 왕위에 세웠다.
첫째, 유다의 멸망
느고는 갈그미스에서 바벨론과 일전(BC 605)을 벌였지만 패배하게 된다. 이후 세계사는 바벨론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바벨론은 유다에게 복종할 것은 요구했지만, 친애굽 왕이었던 여호야김은 이를 거부한다. 여호야김은 애굽의 도움을 받아 바벨론의 침공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애굽은 이미 종이호랑이가 된 상태이다. BC 605년 느브갓네살 왕은 유다를 침공한다.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유다는 무너진다. 느브갓네살 왕은 여호야김을 폐위시키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을 왕위에 올렸다. 이 때 포로고 끌려간 사람이 다니엘이다. 여호야긴 마저 친 애굽으로 돌아서자, 느브갓네살은 BC 597년 2차 침입을 하여 여호야긴을 비롯하여 에스겔 등을 포로로 끌고 가고, 그의 삼촌인 시드기야를 왕위에 세웠다. 시드기야 역시 친애굽 정책을 펼치자 드디어 느브갓네살 왕은 BC 586년 3차 침입을 하여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아들을 죽이고, 그의 눈을 빼고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결국 유다는 BC 586년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했다.
둘째, 멸망의 원인
하나님은 유다의 두 가지 죄악을 지적하고 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는데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13절) 하나님은 자신을 생수의 근원이라고 하셨다. 생수의 ‘생’(하이)은 ‘생명을 주다’(하야)는 말에서 왔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을 때도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같은 말이 쓰였다.(창2:7) 인간은 생기가 있어야만 생령이 된다. ‘터진 웅덩이’란 ‘밑 빠진 독’으로 아무리 물을 퍼 넣어도 물을 채울 수가 없다. 학개서 1장 6절에 이를 ‘구멍 뚫어진 전대’와 같다고도 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많은 씨를 뿌렸지만 거두는 수확은 적고,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고,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 돈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은 것처럼 다 사라져 버렸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노력은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된다.
셋째, 예레미야의 눈물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부터 마지막 왕 시드기야까지 약 40년간 활동했다. 유다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을 때 활동했던 눈물의 선지자이다. 그는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말을 신뢰하며 예레미야를 모함하고 핍박하였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떠나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오히려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설득해도 안 되고, 경고해도 안 듣고, 심지어 협박해도 안 될 때 인간은 좌절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제 고향 후배의 천국환송예배에 다녀왔다. 췌장암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천국으로 이사했다. 케모테라피와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열하는 부인과 아들을 보면서 인간의 한계를 절감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예레미야는 울고 있다.
하지만 아는가?
하나님은 70년 후에 유다를 다시 회복시킬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0-11)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 졌다. 70년이 지나고 1차 귀환은 스룹바벨을 통해서 무너진 성전을 수축하고, 2차 귀환은 에스라를 통해서 무너진 백성의 마음을 회복하고, 3차 귀환은 느헤미야를 통해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였다.
예레미야는 울고 있다 2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이다. 요시야 왕부터 마지막 왕 시드기야까지 약 40년간 활동을 했다. 예레미야의 활동할 때는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었다. 남쪽에는 전통적인 강국인 애굽이 있었고, 북쪽에는 앗수르와 신흥제국으로 부상하는 바벨론이 있었다. 앗수루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고, 남유다를 치려다가 실패했다. 당시의 남유다 왕은 히스기야였다. 바벨론의 세력이 강력해지면서 앗수르 제국이 위기에 처하게 되자, 애굽은 앗수르와 연합하여 바벨론을 치려고 했다. 애굽 왕 느고는 갈그미스로 가기 위하여 남유다의 요시야 왕에게 길을 열어달라고 했다. 요시야 왕이 거절하자 느고는 무깃도에서 일전을 벌였다. 무깃도 전투에서 요시야 왕이 죽게 되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위에 세웠지만 느고는 그를 폐위시키고 친애굽 왕으로 여호야김을 왕위에 세웠다.
느고는 갈그미스에서 바벨론과 일전(BC 605)을 벌였지만 패배하게 된다. 이후 세계사는 바벨론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바벨론은 유다에게 복종할 것은 요구했지만, 친애굽 왕이었던 여호야김은 이를 거부한다. 여호야김은 애굽의 도움을 받아 바벨론의 침공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애굽은 이미 종이호랑이가 된 상태이다. BC 605년 느브갓네살 왕은 유다를 침공한다.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유다는 무너진다. 느브갓네살 왕은 여호야김을 폐위시키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을 왕위에 올렸다. 이 때 포로고 끌려간 사람이 다니엘이다. 여호야긴 마저 친 애굽으로 돌아서자, 느브갓네살은 BC 597년 2차 침입을 하여 여호야긴을 비롯하여 에스겔 등을 포로로 끌고 가고, 그의 삼촌인 시드기야를 왕위에 세웠다. 시드기야 역시 친애굽 정책을 펼치자 드디어 느브갓네살 왕은 BC 586년 3차 침입을 하여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아들을 죽이고, 그의 눈을 빼고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결국 유다는 BC 586년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했다.
유다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을 때 활동했던 선지자가 예레미야이다. 그는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말을 신뢰하며 예레미야를 모함하고 핍박하였다. 유다의 멸망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을 떠나고 자기 스스로 웅덩이를 파는 이 백성을 보면서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노력해도 안되고, 경고해도 안 듣고, 협박해도 안될 때 사람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유다와 비슷한 역사가 있다. 조선은 중국과 군신관계를 맺고 있었다. 중국은 황제이고 우리는 왕이었다. 전국시대의 일본을 통일한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친다는 명분으로 조선에 길을 열어 달라고 했다(정명가도). 선조가 허락하지 않자,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조선군을 격파하고 파죽지세로 한성, 평양을 점령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였지만,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과 명의 원군, 그리고 이순신의 조선수군으로 인해 전황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7년의 전쟁 후 일본군이 철수하고, 이순진 장군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 전쟁이 끝나고 갑작스럽게 선조가 죽자 광해군이 왕이 된다.
한편 북방에서는 여진족인 누르하치고 후금을 건국하고 세력이 날이 갈수록 강성해졌다. 명과 대치하게 된 후금은 명을 정복하기 위해서 조선과 먼저 화친을 맺으려고 했다. 국제 정세에 밝은 광해군은 후금의 성질을 건들지 않는 선에서 명과의 관계를 이어갔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왕위에 등극한다. 반대는 하는 세력들은 ‘이괄의 난’을 통하여 정권을 뒤집어 보려고 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일부가 후금으로 도망한다. 인조는 ‘친명배금’ 정책을 펼쳤다. 후금의 ‘홍타이지’는 이를 빌미로 조선을 침공한다. 정묘년에 있었던 오랑캐의 난이라고 해서 ‘정묘호란’이라고 한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한다. 대륙 민족이기에 해전에는 약했기 때문이다. 1627년 인조는 강화도 연미정에서 홍타이지와 굴육적인 강화화약으로 ‘형제관계’를 맺는다.
1636년 후금은 더욱 강성해져 국호를 청으로 바꾼 후, 조선에게 ‘형제관계’가 아닌 ‘군신관계’를 요구했다. 인조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1636년 병자년에 다시 조선을 침공했다. 파죽지세로 한양까지 진격하자 인조는 강화도로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홍타이지 자신이 직접 내려와 인조에게 항복을 요청했다. 조정에서는 ‘주화파’와 ‘척화파’로 대립을 하고 있었다. 이조판서 최명길은 주화파, 예조 판서 김상헌은 척화파였다. 최명길은 실용론을 앞세워 조선이 사는 길은 청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으나, 김상헌은 명나라를 배신할 수 없다는 명분론을 내세워 끝까지 항전하자고 했다. 인조는 김상헌의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이미 대세는 청나라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한겨울에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의 황제 홍타이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했다. 한국사의 두가지 치욕의 날이 있다면, 아마 삼전도 굴육과 1910년의 경술국치일 것이다.
예수님도 3번의 눈물을 흘리셨다.
죽은 나사로를 위해서 우셨고(요11:35), 타락한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셨고(눅19:41-42),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우셨다.(히5:7)
첫번째 눈물은 친구를 위한 눈물이고, 두번째 눈물은 조국을 위한 눈물이고, 세번째 눈물은 인류를 위한 눈물이다.
눈물의 3가지 종류
기저 눈물. 눈을 깜박일 때마다 나오는 눈물. 평상시에 눈을 촉촉하게 유지시켜주는 기본적인 눈물이다.
반사 눈물. 이물질과 같은 외부자극이 있을 때 나오는 눈물. 하품을 하거나 웃는 것과 같은 여러 행동과도 관련이 있다.
감정 눈물. 감정으로 인해 나오는 눈물. 감정 눈물에 단백질이 가장 많이 함유되어있다.
바벨론의 3차 침입과 한국의 역사의 비교
바벨론 1차 침입(BC 605, 느부갓네살 – 여호야김) – 임진왜란(1592, 도요토미 히데요시 – 선조)
바벨론 2차 침입(BC 597, 느부갓네살 – 여호야긴) – 정묘호란(1627, 홍타이지 – 인조)
바벨론 3차 침입(BC 586, 느부갓네살 – 시드기야) – 병자호란(1636, 홍타이지 – 인조)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