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의 생애는 애굽의 왕자로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서 40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40년, 도합 120년이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궁전에 있는 동안 많은 학문을 배웠다. 행 7:22에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고 했다. 80세 때 모세는 시내산 기슭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시편 150편 가운데 모세는 90편을 썼다. 90편 10절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다. 자신은 120세까지 살았으면서 우리에게는 강건하면 80세까지 산다고 했다. 현대는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로 향하고 있는데.
1.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네 번 거절했다. 첫 번째는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3:11),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을 턴데,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리이까?” (출3:13),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자기 계시를 하셨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것을 의심할 것이다”, 하나님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4:2)고 물었다, 네 번째 거절은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합니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나님은 노하며 “네 형 아론과 같이 가라.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출 4:17)고 말씀하셨다.
2. 내 집에 무엇이 있느냐?
열왕기하 4장에 엘리사의 생도 중 한 사람이 죽었다. 생도의 아내가 엘리사에게 와서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남편이 빚을 졌는데 빚을 갚지 못하니 빚쟁이가 자기와 두 아이를 종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한탄했다. 그 때 엘리사는 “네 집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집에는 기름 한 병이 있었다. 엘리사는 그녀에게 동네 이웃에게 가서 빈 그릇을 빌려와,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고 하였다. 작은 기름 한 병이었지만 모든 그릇을 다 채울 때까지 기름이 넘쳤다. 담을 그릇이 없자 기름이 그쳤다. 그녀는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두 아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3. 너희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오병이어의 기적은 유일하게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14장, 마가복음 6장, 누가복음 9장, 요한복음 6장이다. 예수께서 큰 무리가 말씀을 들으러 모였고 때가 저물자,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했다. 이때 빌립은 “우리가 어디에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에게 먹이겠느냐”하며 조금씩만 먹이더라도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했다. 옆에 있던 안드레는 한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 있지만, 이것으로는 몇 사람 먹지 못한다고 했다. 예수님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축사 (Thanks)하신 후에 5천명을 먹이고 12광주리를 남기셨다.
축사는 새번역에 ‘감사’라고 표현을 하였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감사는 기적의 통로이다. 누가 감사할 수 있는가? 자기 의로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감사하지 않는다. 자기가 했는데 누구에게 감사할 수 있겠는가? 감사는 은혜, 은사 등의 단어와 카라(기쁨)란 어근을 같다. 은혜란 자격 없는 자에게 조건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인생을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하며 산다. 별빛에 감사하는 사람에게 달빛을 주고, 달빛에 감사하는 사람에게 햇빛을 주고, 햇빛에 감사하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빛을 주신다. 하나님은 주신 것을 통해서 역사하고, 주신 것에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큰 것을 주신다. 감사는 축복의 통로이다.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의 비유가 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결산을 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것을 통해서 역사하고, 결산하실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뭐라고 하실 것 같은가? “너는 왜 베드로 같이 살지 못했어, 너는 왜 바울과 같이 살지 못했어, 너는 왜 요한과 같이 살지 못했어”라고 할 것 같은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하나님은 누구와 비교해서 나를 만든 것이 아니라 나를 나로 창조했다. 우리가 책망 받을 것이 있다면 아마 하나님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는 왜 너답게 살지 못했어.”
빌라도의 3가지 질문 (요 18:33-38)
예수 그리스도는 6번의 재판을 받았다. 3번의 종교젹 재판이고, 3번은 정치적 재판이다. 첫 번째는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 두 번째는 현직 제사장인 가야바, 세 번째는 산헤드린 공회, 4번째는 빌라도, 5번째는 헤롯 안티바스, 6번째 빌라도이다. 3번은 종교재판이고 나머지 3번은 정치재판이었다. 유대인들은 종교재판으로 예수를 죽일 수 없었기에 정치재판으로 넘긴 것이다. 빌라도는 마지막 선고를 하기 전에 예수께 3가지 질문을 했다.
1.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3절)
“네 말이 옳도다’ (마27:11, 막15:2, 눅23:3)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6a)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신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는 성경의 중심사상이고 복음의 핵심이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첫 번째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다. 주기도문에도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 6:33), 누가복음 17장 20-21절에 바리새인인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냐”고 묻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의 3대 요소는 국민과 국토 그리고 국권이다. 독재자가 국권을 갖고 있으면 독재국가이고, 공산주의자가 국권을 갖고 있으면 공산국가이지만, 하나님이 갖고 계시면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인 동시에 미래적이다. (Already, but not yet)
2.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5절)
발라도는 예수께서 무엇을 했기에 고소를 당했는가를 알기 원했다. 누가복음 23장 1-5절에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3가지 죄목으로 고소했다. ‘백성 선동, 납세 거부, 자칭 유대인의 왕’.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대답했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는다.” (37b, 새번역)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10:37) 말씀하셨다. 양도 목자를 알고, 목자도 양을 안다. 빌라도는 몇 번이고 예수를 풀어 주려고 하였으나, 유대인들은 가이사가 왕인데 왕이라고 하는 자를 풀어주면 당신도 온전하지 못할 것이고 위협까지 했다. 빌라도는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요19:19-20)이라고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썼다. 유대인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기를 원했으나,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이고 했다.
3. 진리가 무엇이냐? (38절)
빌라도는 답을 듣기도 전에 돌아서서 유대인들에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다.” 정말, 진리가 무엇인가? 철학에서 진리란 ‘시공간을 초월해서 승인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법칙이나 사실’이고, 논리학에서는 ‘논리의 법칙에 모순이 없는 지식’이다. 공자는 “아침에 도(道)를 깨닫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고 했다. 부처는 “진리를 깨달은 자”란 뜻이다. 공자는 “아직 나는 진리가 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고, 부처는 “어떤 진리가 있는데 그것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예수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라고 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빌라도는 예수가 죄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양심과 민심 사이에서 갈등하던 빌라도는 결국 민심을 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을 허락했다. ‘그린마일’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교도관인 ‘톰 행크스’는 백인 아이 2명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사형언도를 받은 죄수를 만난다. 그는 그가 무죄임을 알게 된다. 교도관의 책임과 개인의 양심 속에서 절규하는 그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면 나는 도데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괴로워하는 그를 보고 오히려 죄수가 위로를 한다.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란 책이 있다. 도덕적 인간이 비도덕적인 사회 속에서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하였다.
호주의 제주도를 가다
한국에 ‘제주도’가 있다면, 호주에는 ‘타스마니아'(Tasmania)가 있다. 호주 남쪽 끝에 위치한 ‘타스미나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중에 하나이다. 호주의 가장 작은 주이지만 자연과 역사가 잘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지역적인 고립성으로 인해 다른 주에 비하여 상업화가 덜 이루어졌고, 독특하고 고풍스런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12℃ 내외에 연교차가 10℃ 정도로 연교차가 온대 지방 치곤 많이 적으며, 비도 1년 내내 고르게 오는 해양성기후를 띈다. 2018년 3월 현재, 인구는 약 52만 명이 살고 있다. 수도인 ‘호밧'(Hobart)에 22만 명, 둘째 도시인 ‘론서스톤’ (Launceston)에 9만 명, 나머지 지역에 21만 명이 흩어져 살고 있다. 주요 산업은 관광업, 농업, 수산업, 목축업 등이 활성화 되어 있다. 사과의 산지로도 유명하며, 섬의 모양도 사과와 비슷하여 ‘사과의 섬’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타스마니아 역사 (History of Tasmania)
‘타스마니아’ (Tasmania)는 1642년 11월 24일 네덜란드 탐험가 ‘타스만’ (Tasman)이 발견했다. 1772년에는 ‘마르크-조셉 마리온 두 프레스네'(Marc-Joseph Marion du Fresne)가 이끄는 프랑스 원정대가 상륙했고, 1777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Captain James Cook) 이곳에 왔었다. 이후에도 수많은 유럽인 뱃사람들이 상륙하면서 지형상의 특징들의 명칭에 다채로운 정렬을 추가한다. 영국은 1788년 1월 26일 호주를 유형지로 개발하고, 타스마니아의 소유를 주장하는 프랑스를 견제할 목적으로, 1803년 NSW 주에서 죄수들을 보내어 ‘타스마니아’를 유형지(Penal Colony)로 개발하였다. 처음에는 NSW 주의 일부였으나, 1825년 ‘Van Diemns’ Land’란 이름으로 분리된 후, 1854년 자치주로 독립을 하고, 1856년 1월 1일 발견자인 ‘타스만'(Tasman)을 기념하여 ‘타스마니아’로 섬의 이름을 바꾸었다. 1901년 1월 1월 호주 연방정부의 6개 주의 하나로 등록했다. 당시 호주연방정부는 Queensland, NSW(New South Wales), Victoria, Tasmania, SA(South Australia), and WA(Western Australia) 6개 주로 구성되었다. 1901년 연방이 출범하면서 호주의 양대 도시인 시드니와 멜본은 연방 수도 자리를 놓고 충돌했다. 1911년 1월 1일 도시간의 싸움을 끝내기 위해 ‘캔버라'(Canberra)를 수도로 정하고, NSW에서 분리하여 ACT(Australian Capital Territory)를 만들었다. 같은 해에 NT (Northern Territory)도 SA에서 분리되었다.
검은 전쟁 (Black War)
‘검은 전쟁’ (Black War)이란 1820s – 1832년에 영국 정착민과 호주 원주민 사이에서 있었던 전쟁이다. 호주 원주민은 멜라네시아의 항해자들이다. 피부가 검기 때문에 백인들은 ‘원주민과 전쟁’을 ‘검은 전쟁'(Black War)라고 불렀다. 정착민이 일방적으로 원주민을 살해했지만, 아직까지 역사학자들 사이에 논쟁의 여지는 남아있다. 그들은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여자들을 납치하여 강간하고, 살인까지 자행했다. 당시 정착민들의 인구 비율은 남자 6명에 여자 1명이고, 죄수들은 남자 16명에 여자 1명이었다. 역사학자 “니콜라스 클러맨트 (Nicholas Clements)는 원주민 여성을 향한 ‘왕성한 식욕'(Voracious appetite)이 가장 문제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분개한 원주민들은 백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갈등이 점점 고조되고 심화되자, 부주지사인 (Lieutenant Governor) ‘조지 아서'(George Arthur)는 300여명의 군대를 보내어, 1828년 11월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는 1830년 ‘Black Line’이란 작전명으로 정착민들을 소집하여 원주민들을 말살시키려 했다. 이때 대부분의 원주민은 살해되고 300여명만이 겨우 살아남았다. 1832년 ‘검은 전쟁’이 끝나고, 원주민들은 ‘프린더스'(Flinders) 섬으로 보내졌다.
자연의 보물섬 (The Treasure Island of Nature)
사람들은 ‘타스마니아’를 ‘자연의 보물섬’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호주는 각 주마다 주의 특징을 살려 ‘자동차 번호판’에 간단한 문구를 적는다. NSW는 ‘첫 번째 주’ (The First State), Queensland는 ‘햇볕의 주’ (Sunshine State), Victoria는 ‘머물 곳’ (The Place to be), NT는 ‘호주의 오지’ (Outback Australia) 등이다. 타스마니아는 ‘가능성을 탐험하라’ (Explore the possibilities)이다. ‘보물섬’에 걸맞은 문구이다. 타스마니아는 신선한 공기, 맑은 물, 울창한 산림, 아름다운 호수 그리고 에메랄드 빛의 남태평양 바다로 둘러싸인 보물섬이다. 한국에서 시드니를 찾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공기가 깨끗하고, 하늘이 맑다’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타스마니아에는 시드니와 또 다른 공기와 하늘이 있다. 특별히 어둠을 뚫고 바다 저편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여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공간의 착각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