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말의 3가지 힘 (잠23:23-24)
인간(人間)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는 존재이다. 사이는 관계이다. 인생은 관계이고, 관계의 중심에는 말이 있다. 말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말이 거친 사람은 거친 인생을 산다. 말이 입 안에 있을 때는 내가 말을 통제하지만, 말이 입 밖에 나가는 순간 말이 나를 통제한다. 말에는 마음이 담아 있어야 한다. 말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어제는 한글날이었다. 한글날은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세종대왕이 1446년에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비하해서 ‘언문’이라고 불렸다. 근세에 이르러 주시경 선생이 ‘한글’이라 이름을 붙여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한’이란 ‘크다’라는 뜻으로 한글은 큰 글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으뜸가는 글’, ‘하나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속에는 그 사람의 사상이 깃들어 있는 것과 같이 한 민족의 말과 글은 곧 민족정신이 묻어있으며 그 사상이 깃드는 둥우리이다.
일제 35년을 3단계로 구분한다. 1910년 경술국치가 있은 후 일제는 무단통치를 하였다. 무단통치란 총칼로 정치를 한 것이다. 1919년에 기미독립 운동이 일어나면서 조선을 무력으로만 통치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1920년부터 문화통치를 하였다. 문화통치는 일종의 유화정책이다. 유화정책의 효과로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친일파가 많이 나온 시기이다. 많은 지식인과 독립운동가들이 소극적 또는 적극적 친일파로 변절하였다. 1929년부터 세계 공항이 일어나고, 일본은 만주를 공격할 계획을 가졌다. 1930년부터 ‘민족말살정책’을 시작했다. 한민족의 정신을 말살하고 일본인에 동화시켜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협력하도록 민족 말살을 시키고자 했던 시기이다. 1931년 일본은 만주를 점령하고 조선인들을 만주로 이동시켰다. 이때 경상도 소작인들이 흑룡강성으로 많이 이주하였다. 일본은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하여 한글을 쓰는 것을 금지하고, 창씨개명을 실시하였다.
오래전 MBC 방송에서 한글날 특집 프로그램으로 ‘말의 힘이란 제목으로 특집 방송을 했다. 시험은 밥을 병에 넣어서 하나는 ‘짜증나’, 다른 하나는 ‘고맙습니다’라는 표지를 붙였다. ‘짜증나’ 병에는 계속하여 부정적인 말을 하고, ‘고맙습니다’ 병에는 긍정적인 말을 하라고 했다. 1달 후에 그 결과를 살펴보았다. ‘고맙습니다’ 병에는 하얗고 예쁜 곰팡이가 폈고, ‘짜증나’ 병에는 검고 썩은 곰팡이가 폈다. 시험에 참여한 아나운서들도 결과에 놀랐다. 프로그램의 결론은 “만약 밥이 사람이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이다. 사람이 말을 바꾸면, 그 말이 사람을 바꾼다.
1. 말에는 각인력이 있다

각인력이란 새겨지는 힘이다. 듣고 말하는 말은 우리도 모르게 우리 마음에 새겨져 내면화된다. 우리말에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상처 받은 말은 정말 잊기 힘들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부정의 말이 긍정의 말보다 5배 정도 강하다고 한다. 부정의 말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다섯 배의 긍정의 말이 필요하다. 언어는 환경이다. 좋은 가정이란 아파트 평수가 넓고 좋은 가구가 있는 곳이 아니라, 가족들 사이에서 좋은 언어가 오가는 가정이다. 좋은 교회란 큰 빌딩과 넓은 예배당이 있는 곳이 아니라, 성도들 사이에서 좋은 언어가 오가는 교회이다.
요즘 각광 받는 학문은 뇌 과학이다. 우리의 뇌는 다른 신체와 달리 죽을 때까지 계속 성장한다. 뇌세포를 ‘뉴우론’이라 하고, 뉴우론과 뉴우론이 연결되는 부분을 ‘시넵스’라고 한다. 시넵스는 가지를 치면서 변화한다. 뇌의 가소성(Plasticity)이라고 한다. 긍정의 말을 들으면 시냅스는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을 분비하고, 부정의 말을 들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은 ‘코르티졸’을 분비한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길이 있다. 뇌과학적인 차원에서 보면 시냅스의 연결이 강해지는 것이다. 긍정적 시넵스가 강한 사람은 부정적 자극이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부정적 시넵스가 강한 사람은 긍정적 자극이라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자기가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산다. 부정의 길을 만든 사람을 부정적으로 살고, 긍정의 길을 만든 사람은 긍정적으로 산다.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부정적인 말은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아야 한다.
2. 말에는 견인력이 있다
견인력이란 끌어당겨서 행동하게 하는 힘이다. 뇌에 각인된 말은 무의식적으로 행동화된다. 인간의 정신을 의식과 무의식을 나눈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는 빙산에 비교한다. 물위로 나온 부분은 의식이고 물 밑에 잠겨 있는 부분은 무의식이다. 말이 뇌에 각인되었다는 것은 무의식에 새겨졌다는 것이다. 말이 뇌에 각인이 되면, 각인된 뇌신경은 신체의 다른 신경에게 명령하여 행동하게 한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행동한다고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의식은 무의식에 무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다.
동물이 머리가 있는 것은 행동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멍게는 원래 뇌가 있는데 바위에 붙어 움직임이 정지된 순간부터 뇌가 줄기 시작하여 급기야 소멸된다. 사람은 정신적인 운동과 육체적인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인지능력이 좋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장식품이 아니다.
3. 말에는 성취력이 있다
성취력이란 이루게 하는 힘이다. 각인되어 견인된 말은 성취하게 한다. 말은 씨앗과 같다. 부정적인 씨가 뿌려지면 부정적인 열매를 거둘 것이고, 긍정의 씨를 뿌리면 긍정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말에는 부메랑 효과가 있다. 내가 한말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 오늘의 본문은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언 18:20-21)라고 했다. 긍정의 말을 하는 사람은 긍정의 열매를 따고, 부정의 말을 하는 사람은 부정의 열매를 딴다.
민수기 13장에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가나안 정탐을 간다. 정탐 후 모세에게 보고하기를 그중 10명은 “저들에 비하여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했다. 하나님은 저들의 말을 듣고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고 하셨다.
학자의 혀와 학자의 귀

구약에 기름부음을 받은 3가지 직책이 있다. 왕과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이다. 왕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나라를 통치하고,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 앞에 선 사람이고, 제사장은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이다. 설교를 할 때는 선지자적인 입장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여러분을 위하여 중보 기도할 때는 제사장적인 입장에서 하는 것이다. 선지자가 활동할 때는 시대가 어려울 때이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전후로 활동하였다. 선지자는 시대에 편승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역행하는 사람들이다. 선지자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이사야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무렵에 활동했던 남유다의 선지자였다. 이사야는 이렇게 기도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이사야 50:4)
1. 학자 (림무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학자”는 히브리어로 ‘림무딤’인데, 이 말은 ‘가르치다’와 ‘배우다’는 두 가지 의미를 다가지고 있다. 학자는 가르치는 사람인 동시에 배우는 사람이다. 훌륭한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학생이 되어야 한다. 가르치려고만 하고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학자로서 자격이 없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3:1)고 했다. 학생이 잘못하면 사적인 문제지만, 선생이 잘못하면 공적인 문제가 된다.
지난주 지역관에게 메일이 왔다. 오렌지 구세군 교회 사관인 Kate가 지역관에게 보낸 메일을 첨부했다. Kate 사관이 받은 메일의 내용은 이렇다. 시드니 소재의 ‘New Heaven and New Earth’란 한국교회에서 이번 주 금요일에 줌으로 연결하여 자기 교회를 소개하고 싶다는 내용이다. Kate 사관은 ‘New Heaven and New Earth’가 어떤 교회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New Heaven and New Earth,신천지이다. 신천지는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이단(Heresy)을 넘어,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는 사이비(Cult) 단체라고 말해주었다. 코로나 사태로 한국 기독교에서 가장 큰 수확 중에 하나는 신천지의 와해 사건이었다. 2020년 대구 신천지 교회의 교인이었던 슈퍼 확진지 31번이 등장하면서 신천지 조직이 백일하에 들어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하여 조사를 했으나, 자기들만의 세상에 사는 신천지는 협조하지 않았다. 정부가 적극적인 조사에 들어가면서 그동안 비밀리에 움직이던 신천지의 정체가 밝혀졌다. 하지만 아직도 신천지의 뿌리는 남아 시드니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2. 학자의 혀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3:2) 야고보는 혀는 작지만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키와 같고, 삶의 전체를 불사르는 불과 같다고 했다. 베스 데이라는 작가는 ‘세 황금문(Three gates of gold)’ 글에서 말을 할 때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하였다. 첫 번째 문은 “그것은 참말인가?”, 두 번째 문은 “그것은 필요한 말인가?”, 세 번째 문은 “그것은 친절한 말인가?”이다. 사실 요즘은 음모론이 난무하여 사실과 거짓을 분별하기 어렵다. ‘카더라’는 말로 자기의 책임을 피하려고 한다. 사실이 아니면 입을 닫아야 한다. 비록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꼭 필요가 말이 아니면 해서는 안 된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를 보고 ‘너 뚱뚱해’라는 말은 사실이지만 굳이 할 필요는 없는 말이다.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친구간의 관계가 서먹해지는 경우가 많다. 사실이고 필요한 말이더라도 친절하게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감정을 가지고 말하면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말을 잘하려면 감정의 배설을 잘해야 한다.
오래전 몰링 칼리지 신학교 학장인 Rose Clifford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는 호주의 몇 안 되는 기독교 변증학자 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신학을 하기 전에 법을 공부하여 변호사였다. 법은 증인과 증거를 기반으로 하여 논증을 하는 학문인데, 신학에는 그런 면이 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 변증학(Apologetics)은 체계적인 논쟁과 담론을 통하여 종교적 교리를 방어하는 학문이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공격에 대한 방어(defending)와 긍정적 질문에 대한 복음을 제시(presenting)하는 학문이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기독교의 신앙을 변증하기 위하여 시작되었다. 세계관이 다른 사람끼리 이야기를 하면 자칫 잘못하면 감정적으로 치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변증학자로서 베드로전서 3장 15절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Gentleness)와 두려움(Respect)으로 하라’
3. 학자의 귀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잠언 18:13)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1:19) 벙어리가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를 할 때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듣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4주간 수요 성경공부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법에 대하여 배웠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법은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과 같은 극적인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원한다. 그렇게 듣지 않으면 대부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요14;26절 보혜사 성령께서 예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이성을 통해서 생각나게 하시고, 감성을 통해서 느끼게 하시고, 사람과 사건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선지자가 활동할 때는 거짓 선지자도 함께 활동한다. 예레미야가 활동을 할 때 ‘하나냐’라는 거짓 선지자가 등장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반대의 예언을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거짓 선지자이다. 아합이 남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을 치자고 했다. 선지자에게 묻고 가자고 하니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이길 것이라고 한다. 여호사밧이 다른 선지자는 없느냐고 묻자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있는 언제나 좋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자. 여호사밧은 미가야의 이야기도 들어보자고 했다. 미가야는 전쟁은 패배하고 아합은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다.(왕상 22) 그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이 듣기에 좋아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사야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고, 이사야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기를 기도하며 말씀을 마친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이사야 50:4)
영국을 알면 기독교가 보인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합니다. 이유는 지배하는 영토가 광대해 24시간 내내 지구 안의 자국 영토 어딘가는 낮인 국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세계에는 52개국의 영연방 국가가 있습니다. ‘영국(英國)’의 ‘英’은 ‘England’의 ‘Eng-’의 음역이므로, ‘영국’이라고 하면 대개 ‘잉글랜드’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영국의 공식 명칭은 UK(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입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4개 왕국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기독교 (Christianity)
영국을 알면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라고 하면 우리는 ‘개신교’만을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한글 성경은 중국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중국에서 ‘Christ’를 음역으로 ‘基督’으로 번역했습니다. 즉 ‘기독’이란 ‘그리스도’란 뜻이고, 기독교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종교적 공동체에 해당하는 보편적인 분류입니다.
기독교는 크게 4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성공회’입니다. 원래 기독교는 하나였습니다. 첫 번째 기독교의 분열은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나누어지게 됩니다. 이때 동방교회는 ‘정교회’ (Orthodox Church), 서방교회는 ‘로마 가톨릭’이란 이름을 갖게 됩니다. ‘가톨릭'(Catholic)이란 ‘보편적’이란 뜻으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따라서 서방교회를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로마’라는 단어를 앞에 붙여야 합니다.
성공회 (Holy Catholic Church)
‘로마 가톨릭’의 부패로 인하여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개신교'(Protestant)가 생겼습니다. 유럽 대륙에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을 때 영국은 가톨릭 국가였고, 헨리 8세가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개인적인 결혼 문제로 가톨릭에서 분리하여, 1534년에 왕이 종교의 수장임을 알리는 ‘수장령'(首長令, Act of Supremacy)을 공포하면서 ‘성공회’가 시작됩니다. ‘헨리 8세’가 성공회의 막을 열었다면, 그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는 성공회를 완성한 사람입니다. ‘성공회'(Holy Catholic Church)란 ‘거룩한 공회’란 뜻입니다. 사도신경의 고백에도 “거룩한 공회’ (Holy Catholic Church)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는 용어가 나옵니다. 성공회가 잉글랜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Church of England’라고도 하고 ‘Anglican Church’라고도 합니다.
장로교 (Presbyterian Church)
우리는 영국의 국교가 ‘성공회’라고 알고 있습니다. 성공회는 영국의 국교가 아니라 잉글랜드의 국교입니다. 스코틀랜드는 성공회가 아닌 장로교가 대세입니다. 잉글랜드가 성공회를 국교로 선포하고, 얼마 후 스코틀랜드는 장로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장로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국민교회인 ‘스코틀랜드 교회(Church of Scotland)’와 ‘존 녹스’의 종교개혁 전통을 따르는 ‘자유 교회'(Free Church)입니다. 현재는 장로교가 스코틀랜드의 국교는 아니지만, 국민교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Roman Catholic Church)
‘크롬웰’이 아일랜드를 침공한 후, 스코틀랜드 장로교인을 비롯한 개신교 신자들을 북아일랜드로 이주시켰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현재도 북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간의 갈등이 심각합니다.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가 40.8%, 개신교 신자가 41.6%로 숫자는 비슷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대부분은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를 안내했던 택시 기사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그는 개신교에 대한 ‘반감’과 잉글랜드에 대한 깊은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안내한 대부분의 장소는 개신교가 가톨릭을 박해했던 곳이었습니다.
호주의 4개 교단을 비교하자면, 가장 큰 교단은 ‘가톨릭’이고, 둘째는 ‘성공회’, 셋째가 ‘개신교’ 그리고 ‘동방정교회’입니다. 호주는 영연방 국가여서 성공회가 가장 컸지만, 1950년 이후 이민자들이 가톨릭 국가에서 대거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1980년경에 순위가 바뀌었습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