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복음으로 낳은 자녀
서론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내가 복음으로 낳은 자녀”(고전 4:15)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 약 1년 6개월 머물며(행 18:1–11)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자비량 사역을 하며 복음을 전했고,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썼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 세 번째로 방문하여 약 3개월간 머물렀습니다(행 20:2–3). 이 시기는 그의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로마서를 집필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를 할 때 고린도 교회에 대한 좋지 않은 소식을 듣고 4편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중 두편은 ‘고린도전후서’이고, 나머지 두편은 소실되었습니다. 첫 번째 편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린도전서보다 앞서 존재했던, 현재는 소실된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고린도전서 5장 9절에서 바울이 언급한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라는 표현을 통해 그 존재가 암시됩니다. 고린도전서, “눈물로 쓴 편지”, 그리고 고린도후서는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의 갈등과 화해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서들입니다. 이 네 문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바울의 사역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첫 번째 편지
고린도전서 5장 9절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이전 서신을 회상하며, 공동체 안에서의 영적 분별과 윤리적 경계를 강조하는 핵심 구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고전 5:9). 고린도는 항구도시이고 상업도시이며, 아프로디테가 주신이었습니다.
신전에서는 성전 창기의 성행위를 일반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고린도인처럼 살다”는 말은 방탕하고 문란한 삶을 산다는 의미로 통용되기도 했습니다.
고대 문헌에서는 “고린도화되다”(to Corinthianize)라는 표현이 도덕적 타락이나 성적 문란함을 의미했습니다.

- 고린도전서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를 할 때, 고린도 교회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디모데를 통해 보냈습니다. 에베소와 고린도는 약 400K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는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영했지만, 그만큼 세속적인 가치관과 윤리적 타락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이러한 도시 문화의 영향을 받은 고린도 교회는 여러 방면에서 신앙적 혼란과 도덕적 문제를 안고 있었으며, 이는 교회 공동체 내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교회 내에는 지도자 중심의 파벌이 형성되어 바울, 아볼로, 게바,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로 분열되었고(고전 1:12), 성적 부도덕이 용인되는 분위기 속에서 징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고전 5장). 성도 간의 분쟁을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는 행위에 대해 강하게 책망합니다(고전 6장). 또한, 결혼과 이혼 문제, 우상에게 바친 제물 섭취, 공예배 질서, 성찬의 남용, 성령의 은사 남용 등 다양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다루며, 고린도 교회가 복음의 진리에 기초한 건강한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는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나 될 것을 촉구하고, 모든 행위가 사랑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였습니다. 그의 권면은 단호하면서도 따뜻했고, 교회의 성숙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며 성도들이 영적 어린아이에서 성숙한 자로 자라나기를 기대했습니다.

- 눈물로 쓴 편지
그러나 고린도전서를 보낸 이후에도 고린도 교회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부 반대자들이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하며, 그의 인격과 사역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깊은 상처와 아픔을 안고 고린도를 방문하였지만, 이 방문은 큰 위로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야기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고후 2:1). 바울은 그 사건 이후 감정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며, 다시 고린도 교회를 향한 또 다른 편지를 쓰게 됩니다.
이 편지는 바로 ‘눈물로 쓴 편지’로 알려진 서신입니다. 지금은 그 편지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4절에서 그 내용이 간접적으로 언급됩니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편지를 눈물과 고통, 간절한 사랑을 담아 기록하였고, 교회의 회개와 영적 각성을 촉구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 자신을 모욕한 자에 대한 교회의 책임 있는 대응을 요청하는 동시에, 다시금 공동체의 거룩함과 질서를 세우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교회를 정죄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시 세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썼으며, 이러한 태도는 목회자로서의 깊은 헌신과 영혼을 향한 그의 간절한 마음을 잘 드러냅니다.

4.고린도후서
디도를 통해 눈물로 쓴 편지를 보낸 후, 에베소에서 떠나 마게도니아로 가게되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약 3년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했지만, 아르테미스 신전과 관련된 은세공업자 데메드리오가 주도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기독교의 확산으로 인해 우상 숭배 산업이 위협받자, 이익을 잃을까 두려운 상인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죠. 이 사건은 바울의 사역에 큰 위협이 되었고, 결국 그는 에베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행 19). 마게도니아로 가는 도중에 바울은 드로아에 들립니다(고후 2:12). 바울은 드로아에서 전도할 기회가 있음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전도하지 않고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마게도니아에서 드디어 바울은 디도를 만난 고린도 교회가 그의 권면에 반응하여 회개하고 변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고후 7:5–16). 이 기쁜 소식을 들은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보내어 회복된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깊은 고백과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는 바울의 가장 개인적인 서신 중 하나로, 그는 자신의 연약함, 고난, 그리고 사역자로서의 내면의 갈등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방어하면서도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다고 고백합니다. 어떤 사람이란 말을 하며 3층 천에 갔다온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난과 환난을 나열하면서, 그것들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경험하는 통로였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육신의 가시를 고치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전 12:9)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이러한 위로와 회복의 복음을 함께 누리며, 더욱 성숙한 공동체로 자라가길 바랐습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마게도냐 교회들의 헌신을 본받아,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연보 사역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고후 8-9장). 이 요청은 단지 물질적 구제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초대교회 공동체 간의 연대와 사랑의 실천, 복음의 일치를 강조하는 목회적 메시지였습니다. 그는 연보를 강요하지 않고, 자발적이고 기쁨으로 드리는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나타나길 바랐습니다.

결론
바울이 쓴 편지는 단지 문서가 아니라, 바울의 살아 있는 목회 현장이자 복음 사역의 진정성이 담긴 귀중한 신앙의 유산입니다.
이 네 편지는 교회 안의 분열, 도덕적 타락, 권위의 도전, 고난과 회복의 과정을 통해, 교회란 무엇인지, 복음이 어떻게 우리의 공동체를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강력하게 보여줍니다.
바울 서신은 오늘날 우리 교회 공동체가 직면한 갈등과 분열, 그리고 영적 미성숙의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지혜와 위로를 제공합니다.
교회를 향한 그의 눈물, 그의 기도, 그의 사랑은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말씀으로 다가와, 우리가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뜻 안에서 회복되는 길을 제시합니다.
바울의 서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으며, 우리 시대의 교회가 겪는 갈등과 혼란 속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회복해 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지침이 됩니다.
구세군 160주년 기념 메시지
2025년은 구세군이 창립된 지 16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1865년, 영국 런던의 동부 빈민가에서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목사가 시작한 구세군 운동은 지난 160년 동안 세상의 어두운 골목 곳곳에서 희망과 구원의 빛을 전해왔다. 이는 단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살아있는 신앙의 도전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이 전환점에서 구세군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그 역사 속에서 드러난 복음의 본질과 시대적 소명을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신앙의 방향을 재확인해야 한다.
복음은 언제나 시대의 상처 속에서 새롭게 피어난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교회가 잃어버리기 쉬운 복음의 본래적 힘은, 고통의 한가운데서 울려 퍼질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구세군은 바로 그 고통의 현장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온 ‘하나님의 군대’이다. 구세군의 역사는 단순한 구호활동이나 자선의 역사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사랑을 실현해가는 선교적 유산이다.

- 구세군의 어제(The Salvation Army, Yesterday)
1865년, 영국 런던의 동부 빈민가에서 윌리엄 부스는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복음을 외쳤다. 그는 당시 교회가 외면하던 거리의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들, 알코올 중독자들, 여성들, 아동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했다. 산업혁명은 기술과 경제 발전이라는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 이면에는 아동 노동, 환경 파괴, 인간 소외와 같은 고통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도시 빈민들은 삶의 질적 하락을 경험하며 사회적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고, 그들은 더 이상 교회의 전통적인 언어로 복음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부스는 기존 교회의 한계를 인식하고,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거리로 나섰다. 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의 사역은 단순히 영혼의 구원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전 존재를 회복시키는 실천적 복음의 형태로 나타났다.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이사야 58:7)는 구세군의 정체성과 사명을 명확히 드러낸다. 단지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을 넘어서, 고통 속에 있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구세군의 어제는 바로 이처럼 고통의 현장에서 시작된 실천적 복음의 발자취였다.
구세군은 신학적으로 웨슬리안주의(Wesleyanism)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전통은 개인의 구원과 성화,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함께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믿음이 우리의 삶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구세군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여, ‘전인구원(Holistic Salvation)’이라는 비전을 내세우며 사역의 방향을 설정했다. 헬라어 ‘소테리아(soteria)’는 단순한 죄 사함이 아니라, 치유와 회복, 자유와 해방을 포함한 총체적 구원을 의미한다. 구세군은 인간의 영혼뿐 아니라 몸, 정신, 사회 전체의 회복을 지향한다. 복음은 단지 교리나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회복이어야 한다. 복음은 고통받는 이웃과의 동행 속에서 가장 진실하게 드러난다. 구세군의 어제는 바로 그 동행의 시작이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실천적 복음의 살아있는 전통이 되었다.
- 구세군의 오늘(The Salvation Army, Today)
160년이 지난 지금도 구세군은 여전히 거리로 나아가고 있다. 긴급 구조, 재난 대응, 노숙자 쉼터, 중독 회복 프로그램,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소, 고령자 돌봄, 아동 복지 등 다양한 사역을 통해 사회의 소외된 자리에서 복음을 실천하고 있다. 구세군은 말로 복음을 전하기보다, 복음을 삶으로 보여주는 사역을 하고 있다. 실천적 복음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강력하게 증거하는 생명의 복음이다. 교회가 점점 제도화되고, 신앙이 형식화되기 쉬운 오늘날, 구세군의 사역은 진정한 복음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되묻게 한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이사야 58:8-9)는 말씀은 구세군의 신앙고백이다. 하나님은 병원의 침상에서, 교도소의 절망에서, 중독자들의 눈물에서, 거리의 벤치에서 더 강하게 역사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성서의 핵심 주제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의 중심이자, 기독교인의 희망이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하나님 나라는 병원의 침상, 쉼터의 구석진 방, 노숙인의 벤치, 중독자의 눈물 속에도 임한다. 말씀은 교회 안에 머물 때보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더욱 강력하게 역사한다. 고통받는 이웃을 향한 작은 실천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다. 오늘날 구세군은 사회사업단체가 아니라, 복음을 실천하는 선교 공동체이다. 구세군의 표어인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빵”은 그 사명의 상징이자 핵심이다. 빵만 가지고 가면 구제이고, 성경만 가지고 가면 전도이지만, 두 손 모두 가지고 가면 그것이 선교이다. 선교는 단순히 이론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랑의 옷을 입고 행동으로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속에서 복음은 사람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며,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열어간다.
- 구세군의 내일(The Salvation Army, Tomorrow)
구세군의 미래는 단지 조직의 확장이 아니라, 복음의 실천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앙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하는가? 다시 거리로 나아가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까? 교회가 세상과 단절된 성역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현장이 될 수 있을까? 구세군의 내일은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복음의 여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가난한 자와 함께 울고, 외로운 자 곁에서 머물며, 구조적 악에 맞서 싸우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거리로 나아갈 사람을 찾고 계신다. 교회 안에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고통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실천하는 믿음을 요구하고 계신다.
“주린 자에게 네 마음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이사야 58:10-11) 이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어지고 있다.
복음은 여전히 사람들의 눈물 속에, 외로움 속에, 억압받는 이웃 속에 살아 있다. 우리가 그곳으로 걸어 나갈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구세군이 될 수 있다. 160년 전 시작된 거리의 복음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구세군의 내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혹은 편안한 신앙생활 속에서 자족하고 있다면, 복음은 다시 우리를 깨워 도전할 것이다. 복음은 안주하지 않고, 항상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간다. 구세군은 그 복음을 따라 오늘도 전진해야 한다. 사람들은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주님, 오늘 우리를 이 시대의 구세군으로 부르소서”
구세군 호주 Chatswood Corps 김환기 사관

웨슬리와 부스 그리고 산업혁명
산업혁명은 18세기와 19세기 영국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긍정적인 면도 많았지만 부정적인 사회 문제도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사회 책임과 연결시키며 활동한 두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John Wesley)와 구세군을 설립한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입니다. 감리교는 산업혁명 초기에 시작되었고, 구세군은 산업혁명 후기에 시작되었습니다.
-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간 사회의 구조를 급격히 변화시켰습니다. 기계화, 도시화, 자본주의 경제의 확산은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 이동을 촉진시켰고, 이로 인해 빈민가가 형성되며 노동 착취, 실업, 주거 문제, 아동 노동, 교육 기회의 불균형과 같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전면화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도시는 급격한 인구 증가와 열악한 위생, 노동자 계층의 삶의 질 저하로 인해 고통받았으며, 사람들은 육체적 피로뿐 아니라 정신적, 영적 고립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기존의 교회는 이러한 급변하는 사회 현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기득권 중심의 제도화된 예배와 형식적인 신앙 생활은 도시 빈민과 노동자 계층에게는 무관심하게 느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로부터 소외되었고, 그 결과 교회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복음의 본질, 즉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를 새롭게 회복하고 실천할 필요성을 절실히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손에 의한 기술 혁신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성을 잃게 하는 시대적 위기였고,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종교적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신앙적 실천이 요구되었습니다.
- 감리교 – 존 웨슬리:
산업혁명 초기에 존 웨슬리는 18세기 산업혁명 초기에 활동한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였습니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교육받은 엘리트였지만, 당대 사회의 도덕적, 영적 위기를 깊이 인식하며 자신의 삶을 복음적 사명에 헌신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는 영국 국교회의 형식화와 도덕적 무기력에 도전하며, 거리의 평범한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실천적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야외 설교를 통해 성직자의 통제에서 벗어나 누구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장을 마련했고,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 있음을 증언했습니다.
그는 감리교 소그룹(Class Meeting)을 통해 신앙을 공동체적 차원에서 살아내도록 독려했으며, 참여자들이 서로의 삶을 나누고 회개와 결단을 나누는 실천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그의 사역은 단순한 개인의 성화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성화, 즉 ‘사회적 성화'(social holiness)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신앙은 고립된 개인의 일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 전체를 향한 책임 있는 반응이다”라고 믿었습니다. 웨슬리는 교육, 의료, 빈민 구제 활동을 조직하며 산업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신앙적으로 응답했고, 감리교 운동은 이후 미국과 전 세계로 확산되며 복음과 사회 참여가 결합된 중요한 기독교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 구세군 – 윌리엄 부스:
산업혁명 후반기에 윌리엄 부스는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여파로 도시 빈곤이 구조화되고 고착화된 시기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감리교 목사로 활동하였으나, 교회가 도시 빈민을 외면하는 현실에 절망하며 거리로 나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부스는 거리의 노숙자, 알코올 중독자, 매춘 여성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회복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아내 캐서린과 함께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을 창립하였습니다. 구세군은 군대적 조직 구조를 바탕으로 엄격한 규율과 헌신을 요구하였으며, ‘신앙은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철학 아래 복음 전파와 동시에 식사 제공, 의복 지원, 쉼터 운영, 직업 훈련 등을 함께 수행했습니다.
부스는 하나님의 사랑은 말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사역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회복을 목표로 한 깊은 신앙적 실천이었습니다. 구세군은 이후 세계 각지에서 사회 복지와 긴급 구호, 재활 사역, 빈민 구조 활동 등을 지속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부스는 교회가 사회를 외면할 수 없으며, 복음은 가장 어두운 곳에 임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그의 사역을 이끌었습니다.
웨슬리와 부스는 산업혁명의 사회적 문제에 기독교적 연민과 도덕적 명료성, 인간 존엄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대응하였습니다. 그들은 추상적인 영성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을 통해 구체적인 희망을 제시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신앙과 윤리, 교육과 공동체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영적 리더였고, 부스는 복음과 구제를 통합하여 신앙을 가장 약한 자들에게 실현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이들의 사역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통로였으며, 그들은 신앙으로 시대를 바꾼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이사야 58:6-9a)
오늘은 구세군 창립자 주일입니다. 구세군은 1865년 7월 2일 빈민가인 동부 런던 거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는 구세군 창립 16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하나님은 윌리엄 부스와 캐더린 부스를 통해 구세군을 창립하셨습니다. 지금은 134 국가에서 구세군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8장 6-9절은 ‘구세군 헌장’입니다. 6-7절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단순한 금욕이 아니라 정의와 자비의 실천입니다. 억압을 풀고, 멍에를 꺾으며, 굶주린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금식입니다. 8-9절에 그러한 삶에는 하나님의 회복과 응답이 따릅니다. 너의 빛이 새벽같이 비치고, 치유가 일어나며, 우리가 부르짖을 때 “내가 여기 있다”고 응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3절에 “왜 우리가 금식을 하는데 우리를 돌보시지 않습니까?”라고 탄식할 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들은 금식의 모양은 있어도 금식의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마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율법은 지키지만 율법의 정신을 버린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영적 상태를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했습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썩어 있는 상태입니다.
구세군의 뿌리는 감리교입니다. 감리교는 산업혁명 전반부에 시작되었고, 구세군은 후반에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은 18세기 중반부터 19세 초반까지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농촌 인구가 도시로 몰리면서 도시 슬럼화, 위생 문제, 인권유린, 주거 문제, 범죄 증가, 알코올 중독자 등의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이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당했고, 안전장치 없는 기계로 인한 사고도 빈번했습니다. 석탄 중심의 에너지 사용으로 인해 대기 오염, 수질 오염, 산성비 등이 발생했습니다. 도시에서 산업화가 일어날 때, 농촌에서는 인클로저 운동(Enclosure)이 일어났습니다. 인클로저란 울타리를 치다는 의미입니다. 양모 수출이 영국 경제의 핵심산업으로 부상하면서 목초지 확보를 위해 지주들이 공용지를 울타리로 둘러싸 양을 방목하였습니다. 하루 아침에 농지가 목초지로 변하자, 농민들의 생계 기반 붕괴와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도사화가 촉진되게 되었습니다.
구세군(The Salvation Army)에는 두 가지 중요한 모토가 있습니다.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 와 “한 손에는 빵, 한 손에는 성경”입니다. 모토에는 구세군 사역의 방향성과 신학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첫 번째 모토인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는 수직적인 사랑과 수평적인 사랑이 통합된 구세군의 사역 철학을 상징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613개이고, 그것을 줄인 것이 10계명이고, 십계명을 요약한 것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마음은 하나님께”는 하나님을 향한 경건, 믿음, 헌신을 의미합니다. 구세군의 모든 활동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출발하며, 내면의 중심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데 있음을 나타냅니다. 즉, 구세군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의 사랑 고백을 듣고, 내양을 먹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고 명하신 것은, 단지 양육과 돌봄의 책임을 주신 것이 아니라, 사역이 사랑으로부터 나올 때만 진실한 섬김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사역이 의무감이나 인정 욕구, 불안정한 정체성에서 나온다면, 곧 지치고 왜곡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에서 나온 사역은 자기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돌봄으로 이어집니다.

‘구세군의 선교 선언문’이 있습니다. “구세군은 국제적인 복음주의 교회로서, 말씀(Message)은 성서를 기초로 하고, 사역(Ministry)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며, 선교(Mission)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차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선교 선언문은 3M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Message, Ministry, Mission입니다. 말씀은 성경에 기초하고, 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며 선교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돕는 것이다.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표현은 신앙이 단지 개인적인 구원에 머무르지 않고, 이웃을 향한 실천적 사랑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의 말씀처럼,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참된 신앙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구세군은 예배당 안에서의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거리와 사회의 변두리로 나아가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몸소 실천해야 합니다. 구세군은 행동하는 교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손끝이라고 합니다. 머리로 이해는 하는데 행함으로 이어지는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머리에 있지 않고 손끝에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말한 “사랑은 설탕입니다”라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작고 순수한 희생이 담긴 사랑의 본질을 보여주는 실제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어느 날, 캘커타의 ‘사랑의 집’에 설탕이 떨어졌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 소식을 들었지만 아무도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소년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사흘 동안 사탕을 먹지 않을게요. 그 대신 그 사흘 분의 설탕을 주세요.” 그리고 그는 그 설탕을 모아 사랑의 집에 가져다주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이 이야기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이란, 캘커타의 한 소년이 들고 온 사흘 분의 설탕입니다.”
두 번째 모토인 “한 손에는 빵, 한 손에는 성경”은 전인적인 복음의 비전을 상징합니다. 이는 인간의 육체적 필요와 영혼의 갈망을 동시에 돌보는 구세군 사역의 원리를 표현합니다.
‘한 손에는 빵’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욕구와 삶의 필요를 상징하며,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이나 병든 자를 고치시고 굶주린 자를 먹이신 사건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5절의 말씀처럼, 줄일 때에 먹을 것을 준 행위는 곧 예수님께 한 것이며, 이는 육체적 돌봄이 곧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의 일부임을 의미합니다. 구세군은 먹을 것, 입을 것, 쉴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 그들의 기본적 존엄을 회복시켜주는 사역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구세군은 바로 이러한 실천적 복음을 추구합니다. 굶주린 자에게 먼저 빵을 주라는 윌리엄 부스의 말은,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단계 이론과도 연결됩니다. 생리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람은 더 높은 차원의 필요, 즉 영적 갈망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빵과 함께 전해져야 합니다.
‘한 손에는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 즉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께 사탄이 시험을 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이 떡 덩어리가 되라고 하라”. 이때 예수님은 신명기 8장 3절의 사탄의 유혹을 물리칩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떡으로만 이란 의미는 떡도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구세군은 복음 전파를 단지 입술의 선포로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삶 속으로 말씀이 깊이 들어가도록 돕는 일련의 여정으로 이해합니다. 물질적 돌봄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안에 복음이 심겨져 생명의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을 추구합니다.
이 두 요소가 결합된 사역 원리가 바로 구세군이 강조하는 통합적 사역 원리입니다. 구세군은 복음과 복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복음 안에 복지가 포함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말로만 선포하는 복음이 아니라, 실제로 빵을 나누고 손을 내미는 사랑 속에서 복음의 능력이 드러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영혼과 육체 모두를 위한 전인적 케어는 구세군의 핵심 철학입니다. 이처럼 “한 손에는 빵, 한 손에는 성경”이라는 구호는 구세군의 통합선교(Integrated Mission)를 상징합니다.
한국 구세군 본영에서 사역할 때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아태지역의 사관과 병사가 함께 모인 Seminar가 열렸습니다. 주제는 ‘통합선교(Integrated Mission)’였습니다. 구세군 교회는 지역사회에 있는 예배당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미나에 다녀온 후 한국의 각 교회들은 지역사회가 필요한 병설시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구세군은 이러한 사역 원리를 통해 복음과 복지, 믿음과 사랑, 말씀과 행동이 하나 되는 실천적 공동체를 만들어갔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구세군에는 두개의 모토가 있습니다.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 수직적인 하나님 사랑이 수평적인 이웃 사랑으로 구체화될 때 온전한 십자가의 사랑이 됩니다. “한손에는 빵, 한손에는 성경”, 빵만 가지고 가면 구제이고, 성경만 가지고 가면 전도이지만, 두손으로 가면 선교입니다.
160년 전 거리에서 시작된 구세군의 복음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구세군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교회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지 않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여서 드리는 예배가, 흩어져 삶의 예배로 이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채스우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