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하늘이 열린 사람들

오늘은 한국의 개천절이다. 개천절이란 열 개(開), 하늘 천(天)자를 써서 “하늘이 열린 날”이다. 한국에서는 건국일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정해야한다는 주장과 다른 편으로는 1919년 4월 13일, 상해임시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오늘 ‘개천절’이 건국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개천절은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세워진 날이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 땅에 33년 사셨다. 성경은 예수의 탄생에 대한 언급과 누가복음 2장 12살 때 부모님과 함께 유월절에 간 사건을 제외하고는 30살까지의 생애에 대하여 특별한 기록이 없다. 누가복음 2장 42절에 예수께서 12살 때 유월절에 가족과 함께 예루살렘 가셨다. 절기를 비치고 마리아는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으나 그것을 모르고 나사렛으로 출발했다. 일행이 하룻길을 가다가 비로소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 예수가 없음을 발견하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다. 3일 후에야 그들은 성전에 있는 예수를 발견했다. 예수는 랍비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랍비는 예수의 총명함에 감탄을 했다. 마리아는 “네 아버지와 너를 찾는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묻자, “어찌하여 나를 찾으십니까,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할 줄을 알지 못합니까?”라고 답했다. 마리아는 예수의 모든 일을 마음에 새겼다고 했다.
예수께서는 30세 때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공생애의 시작을 알렸다. 누가복음 3장 21-23절을 보면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오셨고, 그리고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울려 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기뻐한다’고 하셨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동시에 등장하였다. 아버지는 소리로, 성령은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와 함께 하셨다. 예수께서 3년간 사역을 하셨다는 기록은 없다. 공관복음에는 예수께서 유월절 지켰지만, 요한복음에는 최소한 3번의 유월절을 지킨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이것을 근거로 예수의 공생애 기간은 3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할 때가 30세라고 했다. 민수기 4장은 보면 레위 자손이 회막의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30세이다. 30세를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육체적으로 강건하며 회막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나이를 30세 이상으로 본 것이다. 공자는 15세가 되어서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學), 30세가 되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정도의 학문의 기초가 확립(而立)된다고 했다. 요셉도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다윗도 30세에 왕이 되었고, 에스겔로 30세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
선지자 에스겔
에스겔이 25살 때 바벨론의 2차 포로로 끌려갔다. 바벨론은 1차 침략 때에는 다니엘, 2차 침략 때에는 에스겔, 3차 침략 때에는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왕인 시드기야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으로 30세가 되면 제사장으로 활동을 해야 하는데 바벨론에서는 불가능했다. 에스겔이 30세가 될 때 하나님은 그를 선지자로 부르셨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겔1:1),
에스겔을 부를 때 하늘이 열렸다고 하였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이제 새로운 사명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3:1-3)
사도 요한
계시록은 22장으로 되어 있다. 12명의 제자 가운데 사도요한만 유일하게 자연사하였다. 그는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다가 밧모섬으로 유배를 갔다. 밧모섬에서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열어 장차될 일을 보여 주셨다. 계시록은 상징과 비유들이 많이 나온다.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를 삼차원적으로 받았는데, 1차적인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밧모섬의 계시록 동굴 입구에 요한과 제자인 ‘부로고로’ 집사가 대필하는 있는 모자이크 그림이 있다. 브로고로는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이다.(행6:5-6)
계시록 1장 19절은 계시록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1장은 과거, 2-3장은 현재, 4장-22장은 미래의 사건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사도행전 1장 8절이 사도행전 28장의 모든 내용을 요약한 것과 같다. 1-7장 예루살렘, 8-12장 온 유대와 사마리아, 13장부터 28장까지는 땅끝. 계시록 4장 1절에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고 하늘의 비밀을 요한에게 보여 주셨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계4:1) 4장과 5장은 현재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고, 6장부터 22장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재림전과 재림후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하늘의 시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시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이다. 크로노스는 양적인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객관적인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주관적인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수평적인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수직적인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땅의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하늘의 시간이다. 누군가에게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그에게 하늘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사람은 3번 태어나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첫 번은 육으로, 두 번째는 영으로, 세 번째는 사명으로 태어나야 한다. 사명은 우리의 존재의 이유이고 삶의 목적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왜 사냐고 묻는다면, 분명한 답을 해주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영원의 울림 (The Echoes of Eternity)

45년 전 오늘, 호주의 ‘존 리들리’ 목사가 소천한 날이다. 1932년 11월 14일, 그는 오늘의 본문인 이사야서 57:15절의 말씀을 의지하여 “영원의 울림(The Echoes of Eternity)”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였다. 8페이지 되는 설교문은 장엄한 서사시와 같았다. 그는 갑자기 설교 원고를 옆에 두고, 훈련된 병사와 같이 큰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영원, 영원, 나는 이 말씀을 시드니 거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외치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영원을 어디서 보내실 것입니까?“ 이 집회에 참석했던 ‘아서 스테이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교회를 나왔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어 주머니에 있는 백묵을 꺼내서 거리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Eternity” 그날 이후 그는 35년 동안 50만 번 이상의 “Eternity“란 단어를 시드니의 길과 벽에 썼다. 2000년의 시작의 알리는 새해 불꽃놀이 때 ‘Eternity’란 단어가 하버브리지를 장식하였다.
오늘의 본문을 읽어 보자.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1. 지극히 존귀하고 영원하신 하나님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인간도 영적인 존재이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영이 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이 살아났다. 육신을 따라 사는 것은 죄의 본성을 따라 사는 것이고, 영을 따라 사는 것은 생명의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다. 영이 죽어 있는 인간은 고등동물 중의 한 부류에 불과하다. 말을 잘하고, 도구를 사용하고, 두발로 걷고,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고등동물이다. 영이 죽은 인간은 육신을 따라 살다가 육신이 함께 영벌을 받고, 영을 따르는 자는 생명과 평안을 얻는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늘과 땅의 차이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인간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인간은 부분만 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인간은 일부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지만, 인간은 지금 여기에만 있다. 메뚜기가 하루살이와 놀다가 헤어지며 내일보자고 했다. 하루살이는 내일이 뭐냐고 묻는다. 다음날 메뚜기는 개구리와 놀다가 개구리가 내년에 보자고 했다. 이번에는 메뚜기가 내년이 뭐냐고 묻는다. 유신론자가 무신론자에게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자고 했다. 무신론자가 묻는 천국이 뭐냐고. 서로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도 그렇다.
2. 하나님은 통회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34:18)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51:17)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동시에 통회하는 자와 함께 하시겠다고 했다. 인간을 자신을 보며 통회하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자신의 민낯을 보면 통회하지 않을 수가 없다.
9월 17일 넷프릭스에 발표된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다. 인생 막장에 몰린 사람들의 ‘Survival Game’이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456명이 모여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게임에 참여한다. 강요된 게임이 아니라 자발적인 게임이다.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 게임이다. 한사람의 목숨 값은 1 억원이다. 마지막 남은 최후 1인이 456원을 상금으로 받는다. 게임을 기획한 ‘오일남’이란 할아버지는 1번을 달고 참여한다. 살기 위하여 얼마나 잔인하고 비열하게 상대방을 죽이지를 보면서 게임을 즐긴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죽어가면서 남긴 말이다. “자네는 아직도 사람을 믿는가?”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이 살기 위해서 친구를 배신하고, 동생을 속이고, 배우자를 죽인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렸을 때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여과 없이 묘사했다. 인격이란 말은 ‘Personality’로 라틴어 ‘Persona’이다. 페르소나는 ‘마스크’란 뜻이다. 나는 사관이라는 마스크를 쓰고 지금 설교를 하고 있다. 집에서는 남편이라는 마스크를 쓰고, 학교를 가면 선생이라는 마스크를 쓴다. 오징어 게임을 전 세계인이 열광하고 있는 이유는 마스크를 벗은 자신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드라마에서 책상 위에 자크 라캉의 ‘욕망의 이론’이 놓여있었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을 철학적으로 승화시킨 사람이다. 그는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했다. 인간은 타인이 정해준 욕망을 마치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고 욕망의 전차를 타고 질주한다. 욕망은 소유(Having)와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소유(Having)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Being)를 증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소유로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오히려 두꺼운 마스크를 쓰면 쓸수록 본래의 자기와 더 멀어지게 된다. 한국교회의 부흥은 1903년에 원산에서 사역하던 하디 선교사와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의 길선주 장로의 회개에서 시작되었다. 부흥은 마스크를 벗고 민낯으로 하나님께 통회할 때 일어난다.
3.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18:12) 신앙생활의 가장 큰 적은 교만이다. 천사 루시퍼의 타락도 교만이고 인류의 타락도 교만에서 시작했다.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교만하다고 하지 않는다. 교만하다는 것을 알면 그는 겸손한 자이다. 교만은 잘 나갈 때 생긴다. 모든 일이 형통할 때 고개를 든다. 선줄로 하는가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교만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이 받으려는 것이다. 교만은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앉는 것이다.
천국에 가니, 집사가 왔을 때도 주님이 보좌에서 일어나서 반겨주고, 장로가 올 때도 자리에 일어나 반갑게 맞아 주는데, 목사가 오니까 그냥 앉아서 맞아주었다. 목사는 이상해서 왜 자신은 앉아서 맞아 주냐며 따지자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일어나면 네가 앉을까봐 일어나지 않는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와 겸손한 자와 함께 계신다고 했다. 우리는 죄성을 직시하며 통회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통회하는 자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신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새 번역으로 읽으며 말씀을 마치고자 한다. “ “내가 비록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나, 겸손한 사람과도 함께 있고,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과도 함께 있다. 겸손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고, 회개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그들의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하여 준다“
잉글랜드를 알면 성경이 보인다
런던의’The British Library’ 안에는 ‘영국 도서관의 보물들'(Treasures of the British Library)을 보관하는 전시실이 있다. 그곳에는 영국이 자랑하는 귀중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내 발길을 멈추게 한 두 곳이 있었다. ‘위클리프, 틴데일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이 전시된 곳과 인쇄(Printing) 부분으로 구분하여 ‘구텐베르그 성경’과 ‘초기 한글성경’이 전시된 곳이다. 한글성경 연도가 ‘The middle 19th century’라고 쓰여 있다.한글성경을 1850년경으로 것으로 보는데, 최초의 한글성경은 1882년에 발간되었다. 현재 ‘직지심경’의 원본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다. ‘인쇄의 역사’는 1455년에 독일의 ‘구텐베르그’가 금속활자를 처음으로 만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1377년 조선에서 ‘직지심경’이 금속활자로 발간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연유로 인쇄 부분에 ‘쿠텐베르그 성경’과 ‘한글 성경’이 나란히 전시된 것 같다.
위클리프 성경(John Wycliffe, 1320 ~ 1384)
AD400년경 라틴어인 ‘불가타 역’으로 성경이 번역된 후 다른 언어로는 성경을 번역할 수 없었다. 이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사람이 바로 ‘위클리프’다. 혹자는 그를 ‘개혁의샛별’이라고도 부른다. 마틴 루터보다 150년이나 앞선 종교개혁의 ‘샛별’로 평가한 것이다. 그는 옥스퍼드 퀸즈대학을 다녔고, 1366년에 성직자가 되었으며, 1374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위클리프는 옥스퍼드 대학의 저명한 교수이고,위대한 성직자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는 교황의 부패와 교회의 세속화에 침묵하지 않고, 정면으로 가톨릭 권위에 도전했다. 그는 생전에는 가톨릭의 탄압을 받았고, 사후에는 이단으로 몰려 ‘부관참시’까지 당했다.
그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성경 번역’이다. 당시는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그러나위클리프는 백성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성경은 반드시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382년, 그는 라틴어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다. 당시에는 활자 인쇄가 발명되지않았을 때이다. 보통 한 권의 성경을 필사하는 데 열 달 정도 걸렸고,가격도 도서관 사서(司書)의 1년치 봉급 만큼이나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의 성경이 필사되자, 영국국회에서는 법령을 제정하여 위클리프의 성경을 보급하지 못하게 하였다. 위클리프는 1384년 12월 31일 ‘개혁의 검’을 내려 놓았다. 150년 후, ‘윌리엄 틴데일’이 ‘위클리프’의 검을 다시 잡고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위클리프는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지만, 틴데일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다.
틴데일 성경(William Tyndale, 1494~1536)
‘윌리엄 틴데일’은1494년 ‘글로스터’에서 태어났다. 1510년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1515년 문학 석사학위를받은 후 성경을 연구하기 위해 1519년 케임브리지로 옮겼다. 성경연구를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의 오류를 발견한 틴데일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영국을 개혁하고자 하였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가장 진기한 보석, 지상에 남아 있는 가장 거룩한 유물이며, 신앙의 안내자요 지침서”라고 생각했다.
그가 번역한 틴데일 성경은 원어성경을 사용한 최초의 번역 성경이라는 점과 인쇄된 최초의 영어성경이라는 점에서 성경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틴데일은 딱딱하고 고답적인 문어체가 소박하고 단순한 구어적인 표현을 다수 도입하여 영어의 표현을 아름답게 가꾸었다. 그는 수많은 우아한 어구들을 후대에 남겨주었지만, 영어에 없거나뜻을 충분하게 전달하지 못할 경우는 새로운 영어단어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번역한 죄로 체포되어 1536년 10월6일 화형 당했다. 사후 75년이 지나고, 1611년 출판된 ‘킹제임스'(KJV)성경은 70%가 틴데일의 성경에 근거한다.
킹제임스 성경(James I, 1566-1625)
킹제임스(KJV) 성경을 ‘흠정역’(欽定譯)이라고 부르는데, 공인역(Authorized Version)이란 뜻이다. 제임스 1세가 영국이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유럽의 어느 나라에도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국왕이 직접 명령하여 편찬한 성경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영국 역사에 2가지 큰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교회가 아니라 왕의 명령으로 찍어낸 성경이고, 또 하나는 인쇄기로 대량 생산하여 온 국민에게 보급하는 데 성공한 영어 성경이라는 점이다.
제임스 1세는 원래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이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스코틀랜드 왕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을 계승하게 되면서, 이름도 ‘제임스 1세’로 바꾸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동시에 통치하게 되었다. 이후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하나 되었다. 제임스 1세는 영국 국왕에오른 이후 의회를 해산시키고 청교도에게 영국 성공회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는 등 독재 정치를 폈다. 이에 1620년 청교도들은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떠난다.
존 로스 성경 (John Ross, 1842-1915)
최초로 한글성경을 번역한 사람은 ‘존 로스'(John Ross)이다. 로스 선교사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중국 동북부 지역을 맡아, 조선인이 자주 왕래하는 의주 쪽을 자주 여행하게 되었고, 자연히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소속인 ‘윌리암슨’의 선교 활동과 한국에서 순교한 ‘런던 선교회’ 소속인 토마스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아 ‘스코틀랜드성서공회’의 도움을 받아 한글로 성서를 번역하게 된 것이다.
로스 선교사는 1874년 최초로 조선 사람인 이응찬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를 어학 교사 겸 조사로 채용하여 성경을 번역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서상륜과 서경조는 중국을 드나들면서 홍삼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상륜은 만주 고려문을 드나들면서 장사를 하다가 뜻하지 않게 열병을 앓게 되었는데 이때 ‘매킨타이어’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의 주선으로 ‘헌터 의사’의 치료를 받게 된 서상륜은 ‘매킨타이어’의 전도를 받고, 완쾌 후 로스에게 소개되었던 것이다. 이후로 서상륜도 성경 번역에 참여하게 된다. 번역에는 의주 출신들이 구사한 ‘하느님 아밤’, ‘예수 오맘’ 등의 서북지방 방언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는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글 문법책과 한글 역사책을 펴내기도 했다. 1882년 최초로 ‘누가복음’을 번역했고, 1887년에는 ‘로스역’인 ‘예수성교젼셔’의 신약전체를 간행하게 된다. 한편 일본에서는 ‘이수정’이 1884년에 ‘마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1885년 4월 5일 조선 땅을 밟은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이수정의 마가복음을 가지고 제물포로 들어왔다. ‘로스와 이수정’은 ‘중국어 성경’을 근간으로 ‘한글 성경’을 번역하였다.
이후로 한글 성경은 성서공회 중심으로 1900년대 신약, 1911년에는신.구약 모두 발간하였다. 이때의 성경을 ‘구역(舊譯)’이라고 한다. 지금우리가 쓰고 있는 ‘개역성경’은 1938년에 발간이 되고 맞춤법이 바뀔 때마다 교정하여 1952년 판을거쳐, 1961년에 완성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도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게 되자, 성서공회는 1998년 ‘개역개정’을 발표하여 지금은 모든 교단에서 ‘개역개정’을 사용하고 있다.
1977년에 개신교와 가톨릭이 공동으로 번역한 ‘공동번역’이 나왔으나 명칭 등 몇 가지 이유에서 개신교계의 반발로 인해 천주교회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 새로운 번역의 필요에 따라 ‘표준새번 역'(1993)과 ‘새번역'(2001)이 나왔으나 역시 교계에서 환영 받지 못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