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2020 부활 주일 메시지
오늘은 ‘부활절'(Easter)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3일 후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부활절은 AD 325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매년 춘분 후 만월 다음 주일로 정하여, 3월 22일부터 4월 25일까지 사이에 있습니다. 올해는 4월 12일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부활절과 성탄절의 설교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했습니다. 부활과 성탄은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구태여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 15장은 부활장입니다. 바울은 ‘만일’(If)이란 단어로 부활의 문제 제기를 합니다. “만일(If) 그리스도께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다(14절),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16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19절)”
그는 ‘그러나’(But)’를 통하여 상황을 반전을 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0-22)
마지막 절 ‘그러므로’(Therefore)란 단어를 통해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48) 우리의 신앙은 부활신앙에 근거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습니다. 주일입니다. 주일은 한주를 시작하는 첫날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나머지 단추도 잘 끼울 수 있습니다. 주일 예배에 승리해야 나머지 6일간 ‘삶의 예배’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만나’(to Meet God)‘ ’하나님과 교제’(to Meet with God)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며 부활의 ‘능력과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수는 없지만, 온라인이나 가정예배로 주일을 ‘주의 날’로 지킬 수 있어야합니다. 요한은 유배지인 밧모섬에서 ‘주의 날’에 주의 음성을 듣고,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요즘 유배지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나갈 수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2020 부활절’, 유배지의 요한과 같이 ‘주의 날’ ‘주의 음성’을 듣고 ‘주의 뜻’을 이루시는 ‘2020 부활절’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 인생의 3가지 지혜 (전도서 3:11-13)
솔로몬은 3권의 책을 썼다. 정확한 저작연도는 알 수 없지만, 내용을 보면 아가서는 청년 때, 잠언은 중년 때, 전도서는 노년 때 쓴 것으로 추정된다. 아가는 청년의 ‘사랑의 열정’, 잠언은 중년의 ‘지혜의 찬양’, 전도서는 노년의 ‘인생의 통찰’에 대한 글이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인생의 황혼기에 서서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 가를 설명하고 있다. 1장 2절에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며 ‘헛되다’는 말을 5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전도서는 삶의 무의미와 헛됨에 대하여 언급을 하다가, 결론 부분에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영원한 것을 사모하라 (11절)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창1:27)으로 만드셨다. 영이신 하나님은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영적존재라는 것이다. 영적존재인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인간이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한계를 분명히 하신 것이다. 인생의 실존적인 모든 문제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 전도서는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삶이 불안하다. 죽음과 관련하여 3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1. 인간은 모두 죽는다. 2.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3.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전도서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이 결론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나니”(히 9:27)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위해서 살자. 해아래 있는 모든 것은 헛되니 해 위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둘째 기뻐하며 선을 행하라(12절)
본문의 ‘선’으로 번역된 토브는 ‘선’, ‘좋은 것’, ‘번영’, ‘복’, 그리고 ‘이익’등과 같이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다. 윤리적으로 ‘악’의 반대인 ‘선’이란 의미도 있고, ‘나쁜 것’과 반대되는 ‘좋은 것’, 그리고 ‘저주’와 반대되는 개념인 ‘축복’이란 의미도 있다. 새번역 성경에는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고 했다. 구세군 예배의 특징 중에 하나는 기쁨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기뻐하는 것처럼, 주님을 만날 때 기쁨이 충만해야 한다.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헬라어 기쁨이란 단어인 ‘카라’에서 은혜 ‘카리스’, 은사 ‘카리스마’, 감사인 ‘유카리스테오’가 나왔다. 기쁨은 쾌락과 다르다. 기쁨이란 삶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삶을 지속적으로 비춰주는 빛과 같다. 그러나 쾌락은 말초적 흥분을 일으킬 뿐 쉽게 사라진다. 쾌락이 사라진 공간은 허무와 슬픔으로 가득하다. 쾌락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 마약 중독자가 쾌락을 지속하기 위하여 더 많고 강한 마약이 필요한 것과 같다. 쾌락의 역설이다. 찰나적이고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면 할수록 점점 더 강도가 높은 쾌락을 원하게 되어 결국에는 고통과 근심의 원인이 된다. 기쁨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이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셋째 하나님의 선물인줄 알라(13절)
상은 자격이 있어야 받을 수 있지만, 선물은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받을 수 있다. 선물은 은혜이다. 은혜란 자격 없는 자에게 조건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우리의 자격으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다. 본문은 구원 뿐 아니라 일상적인 일 즉 먹는 것, 마시는 것, 일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다. 선물이 선물임을 깨달을 때 감사가 넘친다. 자신의 능력으로 뭔가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않는다. 자기가 했는데 누구에게 감사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은 감사할 수 있다.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런 말이 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복이 아니다.” 하나님은 별빛에 감사하는 사람에게 달빛을 주고, 달빛에 감사하는 사람에게 햇빛을 주고, 햇빛에 감사하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빛을 주신다.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큰 것에도 감사할 수 있다. 감사는 마음의 태도이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알려진 손양원 목사의 감사로 말씀을 마무리한다. 1948년 여순 반란 사건 때 좌익이었던 안재선에 의하여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순교 당했다. 아들의 장례식 때 남긴 9가지 감사이다.
“제가 이 시간에 무슨 답사를 하고 무슨 인사를 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서 몇 말씀 드립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도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그날 손 목사는 한달 생활비가 80원일 때, 1만원의 감사헌금을 드렸다.
상처 입은 치유자 (고후 12:7-9)
헨리 나우웬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예수회 사제로 신학자이며 심리학자이다. 그는 신학과 심리학을 통합하여 연구하였다. 신학(Theology)에 신에 관한 학문이고, 심리학(Psychology)은 인간에 관한 학문이다. 과거에는 신학과 심리학 사이에 갈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통합하여 이해를 하고 있다. 창조자를 알지 못하고는, 피조물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노틀담 대학, 예일 대학,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페루의 빈민가로 가서 민중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으며, 말년을 정신박약 장애자 공동체 들어가 장애인들과 생활하였다. ‘상처 입은 치유자’는 최대의 역저로 평가 받고 있다.
첫째 상처는 위기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대부분의 상처는 말에서 시작된다. 말에는 에너지가 있다. 생명의 말은 사람을 살리는 에너지가 있고, 죽음의 말은 사람을 죽이는 에너지가 있다. 탈무드에 왕이 두 신하에게 각각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과 가장 선한 것을 알아오라고 했다. 한 신하는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은 사람의 혀라고 보고했다. 두 번째 신하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도 혀라고 했다. 솔로몬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고 했다. 야고보서는 혀를 배의 방향을 바꾸는 키와 작은 불로서 비유하고 있다. 작지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으면 평상시와 다르게 상처를 통해서 반응한다. 상처는 위기이다. 위기(Crisis)란 ‘위험과 기회’가 함께 결합된 단어이다.
10년 전 강영우 박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14살 때 축구 하다가 공에 맞아 실명했다. 사고 후 그는 불빛조차 볼 수 없는 맹인이 되었다. 일생일대의 위기이다. 하지만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강박사는 실명은 자신의 축복이라고 고백했다. 그의 유작으로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가 있다. 그 책에 삼중고의 어려움을 극복한 헬렌켈러의 이야기가 나와있다. 설리반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배운 ‘Water’란 단어를 기점으로 기적과 같은 일들을 했다. 라이온스 클럽이 개안 수술에 적극적으로 관계하게 된 것도 헬렌켈러의 간절한 요청 때문이었다. 그녀의 삶은 강영우 박사를 비롯하여 장애인 모두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인간은 상처 때문에 위기를 맞이한다. 빌라우드 수용소에서 만난 어떤 분의 간증이 기억난다. 그분은 불법체류를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차일피하다가 1년여 시간을 보냈다. 얼마 전 뜻하지 않은 불심검문으로 수용소에 오게 되었다. “사관님, 정말 잘되었습니다. 제가 결정을 못하니 호주 정부가 대신 결정해 주었어요. 비행기 표도 공짜로 준다고 하네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반응했다. 위기를 만날 때, 내가 후진 기어를 넣으면 뒤로 가고, 전진 기어를 넣으면 앞으로 간다.
둘째 상처는 스승이다.
상처는 우리를 성숙시키는 스승이다. 나무에 나이태가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살아온 만큼의 세월의 상처가 있다. 상처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상처 때문에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우리를 기도로 인도하는 모든 것은 축복이다”(Anything is a blessing which make us pray) 스펄전 목사의 말이다. 인생의 항해 중에는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들이 발생한다.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기에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은 상처는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 스승이라는 것이다. 시냇물은 돌이 있어야 소리를 내고,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품는다. 강물은 평지를 지날 때 넓어지고, 장애물을 만나면 깊어진다. 웃음은 인생을 여유롭게 하고, 눈물은 인생을 깊게 한다. 형통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고난은 인생을 깊게 한다. 고난은 고난대로, 눈물은 눈물대로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스승이다. 챨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고 했다. 인생은 희극과 비극이 합주곡이다. 두 개의 악기가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노래가 된다.
우리는 상처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지만, 반드시 응답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의 치유를 위해서 간절히 3번씩이 기도했다. 응답은 치유가 아니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11:9) 약하기에 주님을 의지함으로 더 강해질 수 있다.
셋째 상처는 사명이다.
상처가 주안에서 승화되면 사명이 된다. 소명이란 은혜로 부르심이고, 사명이란 은사로 보내심이다. 하나님은 사명을 주실 때 그것을 감당할 만한 은사를 주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려고 했다. 모세는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자신은 그럴만한 위인이 못된다고 거부했다. 이때 하나님이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묻자, “지팡이니이다” 답했다. 하나님은 모세가 가진 지팡이를 통해서 역사했다.(출 4장) 로마서 12장, 고전 12장, 엡 4장은 은사장이다. 은사의 목적은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고 밝히고 있다. 상처를 은사로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친구 중에 David 사관이 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구세군 알코올 재활센타에서 재활에 성공한 후 구세군 사관이 되었다. David는 알코올 중독자의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구세군 알코올 마약 재활센터의 매니저로 오랫동안 사역했다. 상처가 상처받은 사람을 공감하고, 치유하는 기회가 된다. 자신의 상처를 주안에서 해결할 때 약점을 감점으로 바꿀 수 있다. 상처가 있기에 진정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 미국 서부의 명문인 스탠포드 대학은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릴랜드 스탠포드에 의하여 세워졌다. 아들이 15살 때 병으로 죽자, 캘리포니아의 모든 아이들을 품고 세운 대학이다. 상처는 더 큰사역의 기회가 되었다. 대부분의 치유 사역자들은 아픈 상처가 있다. 자신의 상처만을 바라보며 자기연민에 빠지지 마라. 상처가 있기에 진정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 예수께서는 낮고 낮은 말구유에 오셔서, 가장 치욕적인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진정한 ‘상처 입은 치유자’이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