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관계의 성공을 가져다주는 의사소통
엄마가 아들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아들아, 이리와봐 ~”라고 불렀다. 그런데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같아 조금 더 소리를 크게 내어 “아들아, 부엌에 와봐~”라고 불렀다. 그 소리에 성큼 성큼 부엌에 온 아들은 “왜, 무슨 말 하려고?”라고 말을 한다.
겉으로 이 대화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엄마도 아들도 이 대화 후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무슨 이유였을까? 아들은 첫 번째 엄마가 부르는 소리는 잘 듣지 못했고 두 번째 큰 소리로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자신의 해석이 이렇게 들어갔다면 어떨까? ‘엄마의 저렇게 나를 부르는 소리는 나를 야단칠 때 부르는 소린데 …’, ‘나에게 무엇을 도대체 지적을 하려고 이렇게 큰 소리로 나를 불러서 부엌까지 오라고 하는 거야!’ 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면 방어기제가 발동하여 엄마에게 공격적으로 말을 부드럽게 하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하게 된다. 아들이 긴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언어에는 퉁명스러운 태도가 들어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엄마는 화가 나게 된다. 아들의 말을 들으며 ‘나를 저 녀석이 무시하고 내 마음을 몰라주는 구나,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네..’라는 해석이 들어가서 아들과 말을 하기가 싫어진다.
위의 예는 의사소통에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 외에 비 언어적인 의사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잘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사람의 의사소통의 65%가 비 언어적인 것이고 35%가 언어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표정과 어조등을 통해서 상대방의 상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에 나오는 예에서 엄마는 아들을 종일 보지 못해서 저녁이 돠자, 들어오는 인기척에 인사를 나누고 싶어서 자신의 아들을 불렀는데 아들은 평소에 부모님으로 부터 야단을 들은 적이 종종 있어서 큰 소리로 엄마가 나를 부르는 것은 자신을 야단치기 위함일 것이라고 해석을 했는지도 모른다.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는 반드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견해, 선입견 등이 항상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아’라고 말했는데 상대방은 ‘어’로 알아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의사소통을 잘하는데 있어서 알고 있어야 하는 정보다. 그러므로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했을 때 상대가 나의 말을 다 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의사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나의 말을 이해했는 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할 수 있다. 또한 상대방이 정확히 말하지 않았는데 추측하고 그럴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나는 항상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태도가 상대방의 말을 왜곡해서 들을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을 듣는 나는 나의 말과, 행동, 태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특히 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은 분들 그리고 머리가 좋아서 판단을 빨리하는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할 때 왜곡된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나에게 상대방이 인상만 찌푸려도 나를 싫어하거나 나를 공격한다고 바로 해석하게 되는 것, 앞에 나오는 예처럼 상대방의 어조만 들고 쉽게 상대방이 지금 나에게 나쁜 의도로 다가오고 있다고 판단해 버리고 경계하는 것 등이 잘못된 해석을 하는 경우인데 잘못된 해석을 하게 되면 그 해석으로 인해 잘못된 행동이 상대방에게 표현되거나 표출되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면 결국은 상대방과의 관계가 어려워지고 오해를 기반한 부정적 의사소통이 오가기가 십상이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빠른 판단을 하고 위험을 빨리 감지하는 것이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때 명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태도나 어조로 인해 미리 상대방에 대해서 판단하고 대화를 방어적으로 이끌어나간다면 원활한 의사소통은 일어날 수가 없게 된다.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 우리에겐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효과적인 의사소통에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진실성 (Genuiness)’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가지고 의사소통을 하는 것입니다. 칼 로저스의 인간 중심 치료법에서 나온 개념으로 자신을 잘 인식 (self- awareness)하는 것이 진실성의 한 부분입니다.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는 감정이나 생각을 바로 인식하지 못한 채 우리는 외부적인 것에 또는 타인에게만 원인을 돌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린 시절에 자신을 지켜야 했던 많은 분들이 상처로 부터 자신을 지키는 기능을 했지만 지금은 의사소통의 방해가 되는 소위 ‘자기 합리화’ 또는 ‘남탓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단지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식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끝날 문제인데 이런 사람들은 자존심을 내세우며 ‘미안하다’ 라는 말을 하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서 공감하지 못합니다. 대신에 이런 이런 이유 때문에 하지 못했고 자신은 잘못이 하나도 없고 타인이 잘못한 것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할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과는 의사소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타인과 의사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깊이 볼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의사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듣기’를 잘 해야 합니다. 제 주위에 말을 너무 많이 하는 한 분이 있습니다. 그 분과 있으면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나의 힘이 다 빠져나가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분과 이야기를 길게 이야기를 하게 될까봐 깊이 응답을 해 주시 않게 되고 그 분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가정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 사람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하고 그 분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전에 자신에게 너무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타인이 지금 어떤 상황이고 타인이 어떤 감정인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 놓는 것입니다. 내가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때 얼마만큼의 비중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를 점검해 보는 것은 나의 의사소통의 모습이 어떠한 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만약,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한다면 나는 시원할 수 있으나 타인이 답답해 하고 어려워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의사소통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화자가 있고 청자가 있으면서 서로 상호작용이 원활할 때 잘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의사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듣기’를 잘 해야 합니다. 위에서 말한 말하는 것을 줄이는 정도는 소극적인 듣기의 부분인 데 적극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하여 듣는 것을 말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었는 지를 정확하게 표현하며 그 안에 상대방에 대한 진정어린 ‘공감’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공감이라는 것은 그냥 “아휴 불쌍해, 안됐다 쯔쯧”이라고 느끼는 차원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단순한 동정일 수 있습니다. 대화에서의 공감은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했음을 표현해 주고 그 사람의 마음에 나타난 감정을 읽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런 상황 가운데서 참 좌절이 되고 의기소침해진 것 같네요.”, “당신이 그런 소리를 듣다니 진짜 속상했겠다.”
어찌 보면 간단한 말이지만 상대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많은 부부들이 진심으로 서로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읽어주지 못해 그것이 쌓여서 오랜 상처가 된 것들을 많이 보게 된다. 특히, 아내들이 상처를 받아서 남편의 공감을 요청할 때 남편들이 공감보다는 문제 해결 또는 객관적 시각으로 조언을 해주려고 하는 것으로 인해 아내들의 작은 상처가 큰 상처로 쌓이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랬구나” 그래서 “속상하겠다”라는 단순한 말부터 연습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의사소통은 모든 관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비결이 될 수 있음으로 말 한 마디,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하나 부터 변화를 시도해 보자.
이분적 사고
한 청소년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중학교 시절에 상당히 학교생활을 열심히 잘 했다. 특히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스포츠를 하며 지냈는데 자신의 그룹의 2인자로서 역할을 하면서 그룹에서 제일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친구와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똑똑한 일인자인 친구가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특목고에 진학을 하게 되어서자신은 그 친구를 따라 갈 수 없어서 힘들게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학교를 선택해서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새로운 고등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고, 의미를 발견할 수 없어서 매일같이 학교에 가면 잠만자고 집으로 돌아오는 삶을 살게 된다.
또 한 청년 초기의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은 이것저것 스포츠에서부터 다양한 악기까지 해 본 것이 많다. 그런데 그 어느 것에도 특출한 두각을 나타낸 것이 없다. 그에 비해서 그의 친구들은 스포츠이던, 악기던, 공부던 무엇이든지 잘 한다. 이 청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자 다양한 스포츠를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지만 이것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면서 우울감이 찾아오게 되었다.
위의 예시에 나오는 청소년과 청년은 왜 이렇게도 자신에 대해서 힘들어 할까?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제 중 하나를 설명하면 이들은 “대극” 또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자신에 대해서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아이는 자신이 동경하고 동일시했던 친구가 사라짐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진 경우다. 공부도 스포츠도 잘하던 친구와 어울리면서 자신도 그 친구와 같은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그 친구와 동일한 선에서 생각했는데 똑 같이 열심히 놀던 친구는 특목고에 입학을 했는 데 자신은 아주 평범한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면서 자신에 대한 실패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친구는 성공한 사람이고 자신은 실패자라는 생각, 그리고 그 친구처럼 특별하게 될 수 없다면 내가하는 것들은 전부 무가치하고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생각이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다.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나아” 라는 대극적인 생각이 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학교에 가면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고 잠만 자고 돌아오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청년도 비슷한 경우다. 두 번째 청년에게 자신과 친구들 각각을 나타내는 상징물 (동물 인형 피규어)을 골라보라고 했을 때 이 청년은 자신과 친구들 각각의 상징물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딱 두 가지 상징물을 골랐다.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물 코알라 하나와 자신의 친구 전체를 나타내는 상징물인 백조였다. 분명히 여러 명의 친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의 생각 속에는 ‘친구 대 자신’ 이라는 틀을 가지고 자신과 친구들 전체는 다른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자신과 다른 뛰어난 존재이고 자신은 그에 비해 무기력하고 가치없는 게으른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바로 이 청년에게도 “대극” 적인 이원론적인 사고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가 상담 치료 수퍼바이져들 모임에 참석하여 전문가 선생님들의 소견을 들어보니 상담 현장에서 이런 대극적인 특성을 가진 청소년들이 오늘날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청소년은 실패할 바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라는 생각으로 무기력함과 우울감에 적어 빠져나오질 못한다는 것이다.
‘대극’의 개념은 칼융의 분석 심리학에서 설명되어지는 독특한 개념인데 융에 의하면 사람의 내면은 이런 대극의 모습이 있는데 성숙한 사람은 그 대극의 조화를 구현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대표적인 대극의 개념에는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그림자, 페르소나와 아니마 아니무스“등과 같은 것이 있는데 인간의 정신은 이런 대극의 조화를 통해 전일성과 총체성을 구현할 수 있고 이런 ‘대극의 조화’는 몇 가지 과정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로는 ‘나의 그림자’를 이해함으로 자신의 대극적인 모습에 대한 자각을 하는 과정이다. 내 안에 좋은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부정적인 모습 (그림자)도 있는 것을 인정함으로 인내와 겸손을 배우는 도덕적 과정을 거치는 것이 대극의 조화를 이루게 한다고 본다. 위의 청소년들은 아직은 자아의 내면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눈이 형성되어 있질 않아서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바라볼 때 인내와 겸손을 배우기 보다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어 대극적 모습을 더 극대화 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분화와 통합이 일어날 수 있도록 양쪽의 대극 된 모습을 균형 있게 개발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내 안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있다고 할 때 한쪽만 옳은 것이라고 발달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인정하고 있는 상태로 잘 발달시키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남자기 때문에 남성성만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이 대극적으로 나타나는 분은 그것을 인정해서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필자가 잘 아는 한 남성분은 여성성이 많이 있는데 그 여성성을 잘 활용해서 남성성만 강하게 있는 남성들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좋은 심리 치료사가 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대극의 성향이 너무 강하면 그것 때문에 마음에 갈등을 많이 겪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내안에 관계에서 ‘수동, 복종’의 성향이 많이 있는 데 동시에 “ 주도, 통제”의 성향도 강하게 있으신 분은 두 가지 대극의 성향이 함께 갈등함으로 인해서 내 자신을 수용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고 내면의 갈등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보다 두 가지 성향의 모습이 모두 다 나의 모습인 것을 인식하고 필요할 때 잘 활용함으로 적응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세 번째 단계로는 대극의 조화를 위해 자신을 잘 인식하는 것이다. 여기의 인식은 자신의 연약한 그림자의 모습을 그대로 인식하는 첫 번째 단계와는 약간 다른 ‘나는 어떤 존재인가? ‘에 대한 궁극적 정체성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어떤 존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는 내가 무엇이 될 수 있는 가? 또는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 가? 에서 답을 찾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것에서 답을 찾으면 계속 환경이 바뀔 때마다 정체성에도 위협을 받게 된다.그러므로 ‘나는 어떤 존재인가’ 에 대한 정체성 질문에 대한 답은 절대적인 존재 즉 불변하는 영적인 존재 (하나님)를 발견함으로 찾을 수 있는 답이다.
청소년과 청년기는 대극적인 요소가 더 두드러지게 보여지는 삶의 단계로 대극의 조화는 주로 중년기의 ‘개성화’ 작업으로 일어난다고 칼융은 보고 있지만 저자는 삶의 어느 단계이든 이런 작업들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본다. 바라기는 대극적 사고로 힘들어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일등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하는 대극적 사고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대극의 조화를 경험한 어른들의 지혜로운 도움으로 “일등이 아니어도 세상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라는 생각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무기력함을 이겨내고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김훈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