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일
한 청년에게 “마음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 것 같아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손가락만 한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어쩌다 마음의 크기가 손가락만큼 작아졌을까. 그는 최근 관계의 실패를 경험한 뒤 깊이 힘들어하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그만큼 위축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한 중년 남성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을 때 스스로를 속이 좁은 사람처럼 느낀다고 했다. 아마 그는 살아오면서 마음을 돌보는 일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한 채 수많은 스트레스와 상처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채 쌓아 두었기에 이제 마음이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마음은 때로 태평양처럼 깊고 넓게 느껴지다가도, 때로는 콩알만큼 작아져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여유조차 없어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 마음은 넓어서 좋지 않은 경험이나 감정을 한편에 밀어 넣어 둘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눌러 담아 둔 부정적 감정과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가 어느 순간 건드려지면 다시 떠오른다. 특히 변화가 많은 청소년기나 삶의 전환점이 되는 중년기에 이러한 감정들이 드러나기 쉽다.
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고 권면한다.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오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섯 아이를 키우며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한 사람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마음의 회복에 시간과 노력을 들인 아이들은 점차 더 단단해지고 성품이 성숙해지며 성장했다. 반면 세상적 성공이나 즉각적인 즐거움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던 아이는 어려움과 유혹 앞에서 쉽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아는 교수님의 가족에게 큰 병환이 잇따라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분은 담담하게 모든 과정을 감당해 나가셨다.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며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그분에게는 이른바 ‘마음의 탄성’, 즉 회복탄력성이 있었다. 어려움이 와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다. 평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글을 쓰며 타인의 마음을 돌보는 일을 해 오신 덕분일 것이다. 쌓여 온 마음의 힘이 위기의 순간에 드러난 셈이다.
요즘 “청년들은 마음이 약하다”는 말을 하는 어른들도 있다. 인생의 많은 굴곡을 지나온 세대의 눈에는 청년들의 어려움이 작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늘날 청년들이 지나치게 많은 미디어와 자극에 노출되어 정작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쉽고 빠른 만족에 익숙해질수록 인내와 성찰의 시간은 줄어든다. 마음의 근력을 충분히 기르지 못한 채 도전에 맞서면 쉽게 지치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마음의 근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첫째, 일기를 쓰는 일은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글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다 보면 자신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다.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고, 더 나은 자신을 위한 목표도 세울 수 있다.
둘째,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을 방치하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인지행동치료와 같은 체계적인 방법을 통해 생각을 정돈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생각이 정리되면 마음도 가벼워진다.
셋째, 뇌 건강을 돌보아야 한다. 블루베리 같은 베리류, 호두, 신선한 채소, 오메가3가 풍부한 음식은 뇌 기능을 돕는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은 뇌를 지치게 하고 결국 마음의 힘도 약화시킨다. 마음의 근력은 신체 건강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넷째,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 잠은 뇌에 쌓인 노폐물을 정리하고 기억을 재구성하는 시간이다. 특히 렘(REM) 수면 단계에서 우리는 하루의 경험과 감정을 정리한다. 수면이 부족하면 감정 조절도 어려워진다.
다섯째, 긍정적인 태도를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삶에는 늘 변화와 어려움이 따른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지만, 부정적인 시각에 머물면 어려움에 계속 초점을 맞추며 스스로를 소진하게 된다.
마음을 잘 돌보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넉넉히 이겨 낼 힘을 기르게 된다.
마음의 근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의 작은 성찰과 훈련이 쌓이면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다.
생각이 마음의 방향을 만든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한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망연자실한 상태일 수 있고, 어떤 이는 막 잠에서 깨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깊은 사색에 잠겨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인간의 뇌는 쉬지 않고 작동한다. 인지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끊임없이 정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세상을 이해하려는 존재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지지만, 그 가운데 어떤 생각을 붙잡느냐에 따라 우리의 정서와 행동은 크게 달라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인지적 선택’ 혹은 ‘인지적 편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측면에 주목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긍정적인 가능성을 먼저 떠올린다.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이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우울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사고 패턴에는 일정한 특징이 나타난다. 자신에 대해서는 무능하거나 가치 없는 존재로 평가하고, 세상은 냉혹하고 희망이 없는 곳으로 인식하며, 미래 또한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경향을 ‘우울의 인지 삼제(cognitive triad)’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사고 구조는 우울한 감정을 강화하고, 우울한 감정은 다시 부정적인 생각을 더욱 쉽게 떠올리게 만든다. 결국 부정적 사고와 감정이 서로를 강화하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불안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유사한 인지적 패턴이 발견된다. 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다양한 정보 가운데서도 특히 위험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람들이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어떡하지”, “혹시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앞으로 삶이 잘 풀리지 않으면 어떡하지”와 같은 생각이 반복된다. 이러한 사고가 지속되면 세상은 점점 더 위협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인식된다.
문제는 이러한 인지적 패턴이 한 번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의 뇌는 익숙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반응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신건강 치료에서는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적 패턴을 변화시키는 심리치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치료에서 항우울제나 항불안제가 널리 사용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약물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균형을 조절하여 정서적 고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약물치료만으로는 장기적인 변화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며, 복용을 중단할 경우 증상이 재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많은 전문가들은 약물치료와 함께 심리치료를 병행할 것을 권한다. 특히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는 우울과 불안을 치료하는 데 효과적인 접근으로 알려져 있다. 이 치료의 핵심은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인식하고, 그것을 보다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은 ‘만약 ~라면 어떡하지’라는 사고에 쉽게 빠진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떠오를 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그때 대응할 수 있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라고 사고의 방향을 전환하는 연습이 도움이 된다.
또한 인지적 변화는 행동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질 때 더욱 효과적이다. 우울이나 불안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 고립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하고 활동 범위를 점점 줄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회피는 오히려 우울과 불안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작은 변화라도 행동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와의 연락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활동을 시도하거나,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가는 경험은 뇌에 새로운 정서적 자극을 제공한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될 때 기존의 인지적 회로 역시 점차 다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
결국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생각과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 같은 현실 속에서도 어떤 생각을 붙잡느냐에 따라 마음이 만들어 가는 길은 달라진다.
따라서 때때로 자신의 생각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생각이 나를 돕는 생각인지, 아니면 나를 더 힘들게 만드는 생각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러한 작은 성찰이 쌓일 때 우리의 마음은 보다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마음의 길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다른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은 결국 우리의 삶 전체의 방향을 바꾸는 힘이 된다.

김훈 박사 (호주카리스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