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불안장애
알코올 중독, 니코틴 중독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정신 장애는 불안 장애다.
작년부터 시작된 Covid-19으로 인해 사람들의 불안감은 훨씬 더 많아졌고 실제로 불안 증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불안증으로 진단을 받는 경우도 훨씬 더 많아졌다. “나도 병에 걸려서 죽으면 어떡하지?”라고 하는 죽음의 공포와 실직이나 관계의 어려움으로 오는 스트레스가 자신의 불안감을 훨씬 더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제한된 사람들과의 관계나 접촉은 사회적으로 더 고립되어 사람들은 정신 건강 문제에 더 많이 노출되게 되었다.
불안 장애에는 어떤 특정 대상을 향해서 두려움과 공포를 경험하는 각종 공포증을 비롯해서 매사에 염려, 걱정, 불안감으로 잠을 못 이루고 힘들어하는 범 불안 장애를 비롯해 사람들과의 관계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사회 공포증, 큰 사건 이후에 반복적으로 그 사건의 충격적 장면이 재현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과 같은 다양한 장애들이 포함된다. 이 모든 불안 장애는 ‘불안, 초조, 두려움’이라고 하는 감정적 요인이 들어있다. 불안한 감정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불안한 감정을 다루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들이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불안하기 때문에 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가까운 대상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 누군가의 위로가 불안감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여성의 경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데 자신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자신이 무척 불안해진다고 한다. 그런 불안감을 느꼈을 때 자신은 남편과 대화를 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 때 대화를 통해서 위로를 받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반면 그렇지 못할 때 밤새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불안감으로 예민해지는 경험을 계속하게 되어 남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생겨서 나중에 남편에게 화를 내게 된다고 한다.
COVID19 이후로 가정 폭력의 이슈가 많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 가까운 가족들에게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의사소통으로 잘 풀어내지 못하고 정서적이고 신체적인 학대의 형태로 풀어낼 때 그것이 가정 폭력으로 이어지게 되는 경우다. 필자는 한국에 가정 폭력이 많은 이유 중에 하나가 시대적으로 경험했던 식민지, 전쟁, 가난, 질병과 같은 수많은 트라우마가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가중시켰고 그 불안감이 가정폭력을 일으키는데 여러가지로 기여했다고 본다. 실제로 주위에 전쟁에 참전했던 분들 중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고 그것이 치료되지 않은 채 그 분들이 가정으로 돌아간 후 그 분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의 감정적 고통은 알코올 중독과 가정폭력으로 나타난 경우가 많이 있었다.
최근, 스코틀랜드에서는 가정 폭력의 한 형태로 강압적인 통제 (Coercive controlling)가 배우자에게 나타나는 경우에 그것을 범법행위로 명명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는데 호주에서도 강압적인 통제의 문제가 일어날 때 그것을 범죄행위로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강압적인 통제는 배우자의 자유를 빼앗고 감시하며 교묘한 방법으로 배우자를 자신이 원하는 삶에 의존하여 살게 만드는 것이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살인의 90%가 이런 강압적인 통제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 통계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 강압적인 통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불안감의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살지 못했고 부모로부터 강압적인 통제를 받았던 사람들이 경우가 많은데, 자신이 경험한 강압적 통제를 자신의 불안감을 줄이는데 자신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한 남성은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라면서 아버지의 체벌을 많이 경험했다. 그는 아버지의 체벌을 경험하면서 늘 빨리 커서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성인초기에 호주로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호주에서 정착한 후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경험한 것을 자신도 모르게 반복해서 행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내가 출산을 한 후에 아이가 밤새우는 것이 자신의 직장생활에 지장을 줄까봐 아내에게 소리를 쳤고, 점점 자신이 예민해지고 불안해지면서 아내의 빰을 때리고 밀쳐내고 물건을 던지는 일들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국, 그는 자신 안에 있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배우자의 삶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것으로 풀어낸 것이다. 불안감을 사람을 통제함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일시적으로 상대방을 힘으로 통제하기 때문에 나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관계를 파괴시키는 독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불안감을 많이 느낄 때 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물질을 의존하는 경우도 많다. 가장 흔한 것이 알코올과 기타 약물의 사용이다. 카페인과 술과 같은 것들은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안감을 더 가중시키게 하는 요인이 되는데도 일시적인 효과로 인해서 장기적인 나쁜 결과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생각 외로 많이 있다.
호주에 살면서 관계 문제, 비자 문제, 재정 문제 등을 함께 경험한 어느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불안하고 힘들 때 마다 알코올을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잠을 잘 수 있게 도와주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불안 증세가 더 심해지면서 술을 마셔도 잠을 잘 수 없게 되었고 나중에는 이렇게 살 바에는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불안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대마초나 니코틴의 사용도 마찬가지다. 일시적으로는 편안함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건강에 많은 해를 가져다주는 것들이다.
평소에 불안, 초조, 두려움,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은 나의 문제를 환경에 기인하는 것보다 자신을 관찰하는 것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어떤 경우에 초조, 불안,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지 그리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그 동안 해소하려고 노력했는지를 관찰해서 나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다. 만약, 너무 많은 스트레스 요인이 불안감을 높이는 요인이라면 스트레스 요인을 삶에서 조금은 줄여나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고 불안감이 많을 때 파괴적인 방식으로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면 그리고 그 요인이 어린 시절의 트로마와 관련되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전문가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건강한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COVID19를 겪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많이 불안해 진 것은 사실이지만 좀 더 건강한 방식으로 불안감을 해소한다면 이 또한 지나갈 수 있고 성장하게 만드는 좋은 삶의 과정이 될 것이다.
“부모를 용서하기, 나를 용서하기”

“부모를 용서하기, 나를 용서하기”라는 책은 이런 글로 시작된다. ‘아버지가 오늘까지 살아 계셨으면, 아동학대로 체포되었을 거야.’ 이 말을 자신의 누나가 하자 저자는 “말도 안돼!”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그렇지 않아!”라고 답을 했다고 한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화가 날 때마다 지하실에 저자를 내려가게 하고
가죽 허리띠로 저자의 등을 수도 없이 때렸고 맞으면서도 울거나 소리를 내지 않아야 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한 번도 같이 이야기를 하거나 같이 놀거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저자의 어린 시절이 행복했냐고 물으면 행복했다고 말했고 가족들이 서로 친밀했으며 부모가 아이들을 잘 돌보아 준 근사한 가정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는 평안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부모님을 너무나도 훌륭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자신을 길러준 부모님을 이상화 (idealization)하는 것으로 인해 과거의 아픈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되어지는 자기 방어의 모습이다. 마치 밝고 좋은 면만을 생각하면 내 삶에 아무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같이 여기면서 말이다.
필자가 일하는 상담소나 학교에서는 가족 상담을 할 때 가계도를 그리게 한다. 가계도란 가족의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든 도표와 같은 것으로 이름, 나이, 결혼관계 등과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기록하고 나중에는 가족간의 관계를 표시하게 되어있는 가족 평가에 사용되어지는 도구다. 그런데 가족관계를 표시할 때 내담자 (client)들은 부모님과의 관계를 표시할 때 일반적으로 좋다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관계를 표시할 때 물어보는 질문 중에 “부모님이 당신의 어린 시절에 당신의 친구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냐?” “부모님이 함께 놀아 주었냐 ?” “고민이 있었을 때 부모님과 나눌 수 있었냐?” 등의 질문을 하게 해서 이상화된 부모의 모습이 아니라 실질적인 부모와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족의 모습은 깊은 나의 정체성과도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화시켜서 보는 것이 쉽지가 않다. 학교에서 가계도를 그려보면 가끔은 가계도를 그리는 학생들 조차도 자신의 가계의 정보를 거짓으로 기입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가족과 관련된 수치심과 가족의 비밀, 또는 가족으로 인한 나쁜 기억들은 내가 없는 것처럼 여기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늘 따라다니는 부분이다. 이것의 쉬운 예는,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아버지나 엄마의 습관, 또는 말투, 행동이 나도 모르게 내 자녀와의 관계에서 반복되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없는 것처럼 여겼던 과거의 아픈 가족의 모습이 현재의 가족의 모습에서 재현되어지는 것이다.
호주에 살고 있는 일부 사람들은 내가 경험한 가족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언젠가 필자의 학교에 ‘인형 치료’를 강의하러 온 교수님께서 “여러분이 이렇게 멀리 떨어진 호주에 살고 있는 것은 그냥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 이유가 있어요!”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있는 당시의 필자는 호주에 살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왠지 마음의 한 켠을 강제로 내 보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분의 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나의 과거의 설명이 있었다. 늘 착한 아이로 살면서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던 나는 그런 삶이 아닌 나만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에 대한 부담감, 사회적인 요구의 부담감으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결국은 먼 곳 호주로 오게 한 무의식적 이유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정의 경험이 고통스러워서 모두 가슴에 묻어 버리고 다시는 기억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을 해도 그 가족을 떠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리고 사실은 그렇게 떠나는 것이 건강한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그것이 삶의 다른 모습에서 부정적 영향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남성은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학대가 너무나 싫었고 그것을 방관하던 엄마도 너무나 싫어서 부모님과 연락을 끊은 채로 살아가지만 가끔 부모와 다정한 모습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한 번씩 스쳐가는 과거의 경험이 되살아나 괴롭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주 우울감과 피곤함을 심하게 경험하고 있다. 자신은 무의식으로 과거의 아픔을 밀어 넣었지만 자신의 육체와 감정은 자극이 올 때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고 여전히 아프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를 용서하기, 나를 용서하기”의 저자는 이런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바로 용서라고 말한다. 용서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본인이 왜 용서를 해야 하는 지를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고 용서는 절대로 하지 않겠고 그들이 마땅한 결과를 경험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저자인 데이빗 스툽은 용서를 선택할 때 내가 자유롭게 풀어지고 현재 내게 중요한 다른 관계의 문제들도 제 자리를 찾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과 상관이 없고 그들과 개입할 필요가 없는 바로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용서를 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은 손상을 인식하고, 연관된 감정을 파악하고, 상처와 분노를 표현하고, 보호하기 위한 경계선을 설정하고, 빚을 청산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용서의 과정은 다양할 수 있지만 일정한 과정의 공식을 이용하는 것이다. 용서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는 한 번에 되어지기 보다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되어지는 것으로 단순하거나 쉬운 과정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자유로와지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도구라고 한다면 ‘용서’라는 것은 시도할만한 가치있는 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용서를 통해서 더욱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길 바란다.

김훈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