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칼럼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롬 12:2)
새해를 대하는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지난해보다는 모든 면에서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의 대부분은 자신의 내면적인 면이 아니라 외부적인 환경과 조건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세우는 모든 계획들이 더 나은 외적인 환경의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계획 일색이다. 과연 그러한 외적인 것들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행복’일 것이다. 과연 인간이 육적인 물질의 조건을 통하여 내면적인 영적 행복을 얻을 수 있을지, 개인적인 나의 생각은 ‘I don’t think so.’라고 말하겠다.
인간 실존의 가치는 육적인 요소도 분명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우리의 영혼에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육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이다. 이 사실이 인간과 짐승의 차이라고 본다. 짐승은 배불리 먹으면 어떤 걱정 근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리 육적인 배가 부르다고 해서 만족해하며 걱정 근심 없는 삶을 살지는 못한다. 이 사실은 누구나가 스스로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진실이다. 성경 역시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했다. 그래서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고 하는 또 다른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하는 요소이다. 인생을 이야기할 때에 과연 사랑을 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볼 수도 없는 이 사랑은 먹는 것도 아니고 마시는 것도 아닌데 늘 목말라 하고 배고파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랑에 목말라 목숨까지도 포기하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이러한 영적인 인간에 대한 유일한 매뉴얼이 바로 성경책(Bible)이다.
새해에는 내면적인 영적 변화를 계획하라!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을 통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다. 바울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내면적인 영적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당시 세대를 본받지 말 것을 전제 조건으로 말했다. 과연 당시 세대의 무엇을 본받지 말라고 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요한은 또한 이렇게 말하였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1 2:15-17). 그렇다! 내면적인 영적 삶의 시작은 보이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사랑치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사람들이 추구한 삶은 신령한 영적인 삶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함으로 육적인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하여 살았던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도 구하는 복은 한마디로 세상의 복이다.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향해 가던 이스라엘백성들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으려 간 사이 기다리지 못하고 그들을 위한, 그들이 원하는 신을 만들었는데 금으로 된 송아지였다. 애굽에서 하나님을 기억치 못하고 종으로 살던 그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부르짖음으로 구원받아 가나안 땅에 가서 마음껏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위한 가나안의 여정에서 현실적이고 육신적인 복을 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출애굽 1세대들이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먼저 구할 것을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더하시리라!
세상을 살면서 당연히 세상의 것이 필요하고 기왕이면 여유 있게 많이 있으면 좋지 않으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나 나의 생각보다도 더 중요한 생각은 나를 지으신 창조주의 생각이다. 그 분이 우리의 마음 중심을 우리 자신보다 더 정확히 우리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모든 내면적인 영혼의 상태를 지적해 주고 계시는 것이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 6:27-33)고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계신다. 한마디로 말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며 이 땅의 임금은 공중권세 잡은 사단이라고까지 성경은 말하고 있다. 육신을 가지고 수에 칠 가치도 없는 70-80세의 인생을 사는 이 땅의 삶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히 살아야할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가 되어 영원한 천국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믿음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이 땅의 천국 백성들에게 당연히 있어지는 내적인 마음 상태는 바로 이러한 모습이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5-18). 천국에 소망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고서야 과연 이 땅에서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새해에는 육신을 위한 계획보다는 더욱 내적인 풍성한 믿음의 성장을 위한 계획을 세워 언젠가는 바울과 같은 이러한 복된 믿음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 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용호 목사(시드니 달란트교회, 호주나눔선교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