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칼럼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요일 4:1-6)
인간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알고 싶다면 자신을 만드신 신을 찾아가 물어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자신의 존재시작에 대해 그 누구도 스스로 개입하여 선택한 부분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하나님을 찾는 일, 여기서부터 피조물인 인간의 겸손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에 대하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한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저 개인적으로 주저하지 않고 성경의 요한복음 3장16절과 17절의 말씀을 전해드릴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그렇다! 인류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를 얻게 되고 그 이후 모든 인간들이 그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죄 가운데 넘겨져 사망의 권세 아래서 종노릇하며 살게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태에 있든지 상관없이 ‘이처럼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이라는 헬라어 후토스는 ‘이런 방식으로’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아담이후 죄인 된 인간의 방식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의 방식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 가운데 고통하며 살다가 죽음으로 끝나길 원하셨던 것이 아니고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은 인간들에게 간절히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 삶의 목적은 자신들을 위하여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입고 건강하게 하는 것이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알고 그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사는 것이 이 땅에서의 삶의 목적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 22:37-40).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성육신(成肉身)하신 하나님!
인간을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천사들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계획하셨는데 그것은 자신이 만든 인간의 죄된 육신의 몸으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심으로 인간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심으로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과 그 크신 사랑에 영원토록 감사와 찬양을 돌리도록 하나님 스스로 또 다른 위(位)가 되셔서 이 땅에 오신 이 사건을 성경은 증언하기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장6-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고 말하고 있다. 이 사건을 성육신(成肉身) 곧 인카네이션(incarnation)이라고 말한다.
이 성육신의 사건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구분하는 기준임을 오늘 본문을 통해 요한은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한일서 4:1-3).
키에르케고르의 성육신의 동화
덴마크의 유명한 철학자요 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성육신의 의미를 모르는 백성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줄까 하다가 한 가지 동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라는 것은, 한 나라 임금님이 한 번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여 평민의 복장으로 거리며 시장이며 골목길을 돌아보다가 어느 시장 모퉁이에 쭈그려 앉아 동냥하는 거지 소녀를 보고 그만 반하고 만다. 뭐라 말도 못하고 궁중에 돌아와 시름시름 하다가 그만 중병에 걸리고 마는데, 궁중의 의사들이 검진을 해보지만 도무지 무슨 병인지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 중에 노련한 의사가 진단을 내리기를, ‘ 임금님의 병은 다른 것이 아니고 마음의 병인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때 임금님이 여차여차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의사가 ‘아니, 당신은 이 나라의 제왕인데 그런 여인 하나 맞이하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 이렇게 가슴앓이를 하고 계십니까. 당신은 이 나라의 제왕입니다.’ 이때 임금님이 명언을 합니다. ‘내가 그 처녀의 몸은 데려올 수 있겠지만, 어찌 그 마음까지 데려올 수 있겠는가?’ 임금님의 말을 들은 의사가 말합니다. ‘당신이 이 나라의 제왕이라도 어찌 사람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까지는 아무래도 … ’ 임금님이 말합니다. ‘길은 한 가지 있지. 내가 거지의 복장을 하고 그 처녀에게 청혼을 하는 것일세!’ 이 임금님이 우리 예수님이고, 우리가 거지 처녀와 같다는 동화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러한 마음인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인간들에게 전해지지 못하도록 지금도 얼마나 많은 적그리스도의 방해가 있는지 말로 다할 수 없다. Keep Christ in Christmas! 성탄절에 그리스도를 지키자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언제인가부터 미국에서는 유대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이 카드사에 돈을 주고 엄청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성탄 카드에서‘메리 크리스마스’를 지우라는 것이다. 대신에 Happy Holidays 또는 Season’s Greetings 등으로 바꾸라고… 그래서 시중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글자가 새겨진 카드를 구입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이다. 참 기가 막힌 현실이지 않는가!
돌아오라고, 회개하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니까!
집나간 탕자는 스스로 아버지를 기억하고 아버지가 계신 풍성한 집으로 돌아갔으나 이 시대의 우리 모습은 자신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자신의 영적 아버지가 누구인지 조차 알지 못하고 타양에서 고생하다 죽는 불쌍한 자식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 모습을 보시다가 너무나 안타깝게 여기신 하늘 아버지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오셔서 돌아오라고, 회개하라고 찾고 부르고 계시는 모습이다.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은 곧 회개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땅 가운데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신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는 가장 낮은 마음에 성령으로 입하시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 낮은 마음이란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심으로 죄의 값을 씻어주신 예수님 앞에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고백할 수 있는 그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천국이 가까웠다고 지금도 주의 종들을 통하여 안타깝게 외치고 계시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1 4:4-6)
이용호 목사(시드니달란트교회, 호주나눔선교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