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칼럼
저희의 행위를 본받지 말라!(마 23:1-12)
오늘도 저와 여러분은 몇 명의 사람들을 만나며 하루를 보내셨는지요? 그리고 그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어떠한 모습으로 대하셨는지 기억이 나십니까? 살면서 많은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불만인 것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는 매우 친절하게 대하면서 집에서 아내인 자신과 아이들을 대할 때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남편 그리고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어른이 되면서 일종의 멘트용 가면을 한두 개씩 쓰고 살아가는 것 같다. 이 증상이 심해지면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같이 밤과 낮이 다른 이중 삶을 감추며 사는 것이다. 삶이 무슨 의미인지,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다 보니,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행복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며 사람들에게 행복하게라도 보이려고 애쓰는 외식(위선)의 모습이 어느 듯 우리 자신의 모습이 되어버린 것 같아 매우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외식(위선)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안에서 조차도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의 유교적 토양위에 외식주의적인 교인들은 누룩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스펄전 목사는 위선적 신앙을 빗대어 ‘비 없는 구름과 같고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이 바짝 말라버린 개울과도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연극 배우가 왕의 복장으로 분장하여 무대 위를 늠름히 거닐다가 연극이 끝난 후에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가난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하여 설교하였다. 사탄은 우리가 교회 가는 것과 봉사하는 것, 그리고 기도하며 성경 읽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막을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마지막 무기가 있다면 바로 외식에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기도를 외식으로 하게하고 성경을 외식으로 읽게 한다. 교회 출석을 외식으로 하게하고 봉사를 외식으로 하게 한다. 여기서 바리새인 같은 신자가 나오고 위선자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종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외식주의이다. 예수님께서 당시에 유독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한 것은 그들이 일반 사람보다 더 악하거나 잘못되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외식적인 종교행위의 삶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주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마 6:2)라고 불렀다. 하나님을 아노라고 했던 그들의 외식이 문제가 되는 것은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사탄의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방법이다. 우리가 이단을 구별하기 어렵고 막기 힘든 것은 외식 때문이다. 그들의 간판은 항상 정통이고 성경이며 경건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마 23:2, 3)라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지적하고 계신다. 위선이란 몰라서 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행치 않는 것을 말한다. 선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라고까지 성경은 말한다(약 4:17).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본받지 말아야 할 그들의 행위가 과연 무엇일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정말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았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 사람들이다. 그리고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당연히 행동이 따를 때 쓰는 표현이다.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어느 날 부자 청년이 예수께 다가와서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예수님께서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말아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라는 율법을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하시자 그 부자 청년은 ‘나는 이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라고 말한다(마 19:16-20). 주님이 말씀하신 바 그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한다. 이 부자 청년의 말이 진실이었다 보는 것은 마가복음 10:21의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 ” 이는 그 청년이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는 것을 인정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분명히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 행동했을 터인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일까? 그 말의 의미가 본문의 4절과 5절에 잘 나와 있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 유대의 율법학자들이 구약에서 지키라고 찾아낸 계명이 모두 613개라고 한다. 사실 613개의 계명이 무엇 무엇인지 보통 사람들도 아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런데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힘든 가난한 서민들에게 과연 이 613가지나 되는 계명들은 무슨 의미였을지 이해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서기관과 율법학자들의 삶의 모습은 철저한 종교행위의 삶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갔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을 위한 삶을 산 것이다. 그들의 외식은 하나님 앞에서의 빛과 소금의 삶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며 인정받는지가 더 중요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백성들을 향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꾸짖고, 무시하고, 욕하고 정죄했던 것이며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잔칫집에 가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고 혼을 내기도 했으며, 심지어 안식일에 병자들을 치유하신 예수님께도 안식을 거룩히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외식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오늘 성경본문의 결론적인 말씀은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5-12)는 말씀이다. 자신을 사랑해서 자신을 위하는 삶이 당연하고 행복할 것 같지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매뉴얼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눅 9:23-25).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숨은 이 땅에서의 목숨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한 말씀이다. 그 생명을 얻기 위해서 자신을 위하고자하는 이기적인 욕심의 삶을 부인하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죄가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갔던 사단의 유혹은 하나님과 같이 될 수도 있으니 이제부터 너희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 자신을 높이며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라고 하는 말에 미혹되어 지금까지도 외식과 위선의 삶을 살고 있다면 회개함으로 거듭난 겸손의 삶 곧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삶을 시작해야 한다.
세계적인 부흥사 무디(D. L. Moody)의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하루에 1명씩 개인 전도를 한다는 기본 방침을 세우고 노력했다고 한다. 하루는 교회에 대해 대단히 나쁜 감정을 갖고 있던 한 불신자를 만나, 그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교회에 나올 것을 요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는 교회에 나가고 싶어요. 그러나 저는 많은 위선자들이 말과 행실이 틀리면서 교회생활을 하고 있기에 교회에 나가고 싶지 않군요. 저는 그 위선자들의 꼴도 보기 싫거든요.” 그러자 무디 선생은 하나님이 주시는 순간적인 지혜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도 보기 싫은 위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 가운데도 유다라는 위선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당신도 알고 있으시지요? 그리고 그 위선자들은 아무리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고 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 이시니까요, 그들은 지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당신도 교회를 부정하고 나가지 않는다면 분명히 지옥에 갈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지옥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당신이 그렇게 싫어한 위선자들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교회에 나온다면 잠시 위선자들과 만나겠지만 교회 출석을 거부한다면 영원히 그들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교회생활을 잘해서 천국에 가게 된다면 거기에는 위선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삶이 되겠습니까? 당신이 진정 위선자들을 중오하고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치 않는다면 부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래서 위선자들과 영원히 헤어지는 기쁨을 맛보십시오.” 무디의 지혜로운 대답에 감동을 받은 이 사람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착실한 교인이 되었다고 한다. 비록 교회 안에도 많은 문제와 거짓과 부정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교회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인 것이다.
이용호 목사(시드니 달란트교회, 호주나눔선교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