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2022년 4월 첫 온라인 모임에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코지’ 나눠
다음모임은 4월 27일 (수, 오후 5시), 중고서적 기증과 구입도 환영 [4월 13일 발제 전문 포함]
매월 둘째, 넷째 주 수요일 모임을 갖는 독서토론모임 ‘시드니 시나브로’ (지도 구본영 교수)가 2022년 4월 첫 모임을 지난 4월 13일(수) 전현구 목사의 ‘페다코지’ (파울로 프레이리 저) 서론부 (프롤로그) 온라인 발제로 가졌다.

4월 13일 모임에는 전현구 목사는 ‘페다고지’ 서론부를 나누며 “필자는 페다고지 (Pedagogy)에 대한 서평에 앞서서 간단하게 동서양의 교육 기원과 어원 그리고 교육의 뜻을 비교하며 시작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교육에 대한 전이해를 통해서 페다고지가 지향하는 교육철학을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교육 현실에 관해서 물음을 가지고 성찰하기 위함도 있다. 교육이란 한마디로 다양해서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다. 교육 (敎育)에서 가르칠 교 (敎)와 기를 육 (育)을 사용한 이 단어를 과연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의 물음이다. 먼저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교육을 의미하는 파이데이아 [Paideia (라틴어 humanitas)]가 있다. 이것은 ‘어른이 어린이와 함께 있는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교육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여기서 ‘인간답게’란 사람마다 각자의 영혼에 딱 들어맞는 ‘명예를 주는 일’이다. 즉 각자의 잠재능력 (latent faculties)과 가능성 (possibility) 그리고 소질 (talent)에 따라 인간으로서 탁월하게 자라나게 할 수 있는 작업을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민본사상을 중심으로 다룬다. 즉 「맹자」의 ‘진심장 盡心章’에서 군자가 가지는 세 가지 즐거움을 언급한다. 그 세 번째가 바로 ‘득천하영재이교육지삼락야 (得天下英材而敎育之三樂也)’이다. ‘천하의 훌륭한 인재를 얻어 이를 가르쳐 기르는 것이 군자의 세 번째 즐거움이다’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교육이란 말이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나타난다. 서양에서의 교육의 개념은 교육의 어원인 파이데이아 (Paideia)을 중심으로 3가지가 있다, 그것은 에듀케이션 (Education)과 페다고지 (Pedagogy) 그리고 빌둥 (Bildung) 등이 있다.”라고 언급하며 “첫 번째 에듀케이션 (Education)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을 ‘안에서 밖으로 꺼내어 키워준다’는 의미다. 두 번째로 페다고지 (Pedagogy)다. 이 말은 헬라어 파이다고고스 (paidagogos)에서 유래한 말이다. 세 번째로 빌둥 (Bildung)이다.”라고 정의했다.
이어 결론부에는 “지금까지는 페다고지 (Pedagogy)서평에 앞에서 전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프롤로그 (prologue)에서 교육의 개념 정리와 지평을 넓혀 생각해 봤다. 본론 서평은 4월 27일 (수)에 謁見하겠다. 필자가 [페다고지]를 처음 접할 때는 유신정권 말기 1978년도 사대 새내기 시절 첫 여름방학 농활 때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한 동아리 모임에 참석했다가 천주교 정의사회구현 사제였던 존경하는 한 신부님으로부터 소개받은 책이었다. 어떤 비밀 결사대로 아니었고 반정부 투쟁 단체도 아니었다. 순수한 미래 교육을 걱정하는 어린 교육자의 꿈으로 바람 같은 간절함과 절박함이 절절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숨어서 읽었던44년 전에는 이 [페다고지]가 당국으로부터 불온서적으로 분리되어 [칼 막스]의 저서보다 더 위험하게 봤으며, 이 책을 소유한 사람들은 최소한 5년에서 10년까지 형을 살아야 했다. 이런 상황은 전두환 군부 정권까지 이어졌던 시절이 있었다. [페다고지]는 필자에게 교육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게 했고 교육에 대한 담론을 다양하게 생각하고 평가하게 했다. 44년 전에 읽었던 [페다고지]를 볼 때마다 필자를 다시 성찰하게 하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페다고지]의 저자인 파울로 프레이라는 브라질의 군부독재 정권과 맞서며 교육의 정체성을 [페다고지]의 교육 개념을 차용하여 브라질에 맞는 교육정책을 실천해간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교육 철학자였다. [페다고지]는 1990년도에 들어와서야 번역이 되었고 그 이전에는 海賊版으로 나왔지만 손쉽게 구할 수 없는 위험한 책 중에 하나였다. 특히 촉진자인 교육자들과 목사들에게는 필수 과목이다. 꼭 필독을 추천하고 싶다.”라며 발제를 마쳤다.
한편 시드니시나브의 다음모임은 4월 27일(수) 오후 5시 온라인으로 모인다.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는 독서에 관심있는 분 누구나 환영한다. ‘시드니 시나브로’의 목적은 “독서를 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해외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함”이며, 목표는 “창의적 사고와 합리적 사고, 그리고 융합적 사고를 통하여 삶의 비전을 구체화시키기 위함”이다. 운영방식은 독서안내자가 책을 선정하여 소개하면 독서회원 각자가 주1회 장별로 읽고 요약하여 발표한 후 상호의견을 교환하는데, 모임은 매월 2, 4주째 수요일 오후 5시에 모인다.

구본영 교수와 함께하는 독서토론모임에 관심있는 분들은 전화 (0415 706 784)나 이메일(kbymb@hanmail.net)로 문의하면 된다.
‘시드니 시나브로’는 도서기증을 환영한다. 또한 중고책방 (이스트우드 하모니센터)도 운영해 해외에서 구입하기 어려운 고가의 책자를 저가에 구입하도록 돕는다. 도서기증이나 중고서적 구입을 원하는 분들은 아래의 문의처로 연락하면 된다.
–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2022년 4월 모임 안내
.모임: 매월 2, 4주째 수요일 오후 5시
.4월 13일과 4월 27일 (수) 오후 5시
.아래 문의처로 연락주시면 온라인 모임에 합류됩니다.
지도 구본영 교수 (0415 706 784, bonyoungkoo7@gmail.com)
총무 임기호 목사 (0414 228 660, kiholim72@gmail.com, 중고서적 기증·구입 문의)
간사 임운규 목사 (0425 050 013, woon153@daum.net)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4월 13일 발제전문
페다고지 (Pedagogy) 서평
원제목은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 (pedagogy of the oppressed)
1 프롤로그 (prologue)
필자는 페다고지 (Pedagogy)에 대한 서평에 앞서서 간단하게 동서양의 교육 기원과 어원 그리고 교육의 뜻을 비교하며 시작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교육에 대한 전이해를 통해서 페다고지가 지향하는 교육철학을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교육 현실에 관해서 물음을 가지고 성찰하기 위함도 있다.
교육이란 한마디로 다양해서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다. 교육 (敎育)에서 가르칠 교 (敎)와 기를 육 (育)을 사용한 이 단어를 과연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의 물음이다.
먼저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교육을 의미하는 파이데이아 [Paideia (라틴어 humanitas)]가 있다. 이것은 ‘어른이 어린이와 함께 있는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교육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여기서 ‘인간답게’란 사람마다 각자의 영혼에 딱 들어맞는 ‘명예를 주는 일’이다. 즉 각자의 잠재능력 (latent faculties)과 가능성 (possibility) 그리고 소질 (talent)에 따라 인간으로서 탁월하게 자라나게 할 수 있는 작업을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민본사상을 중심으로 다룬다. 즉「맹자」의 ‘진심장 盡心章’에서 군자가 가지는 세 가지 즐거움을 언급한다. 그 세 번째가 바로 “득천하영재이교육지삼락야 (得天下英材而敎育之三樂也)”이다. “천하의 훌륭한 인재를 얻어 이를 가르쳐 기르는 것이 군자의 세 번째 즐거움이다”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교육이란 말이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나타난다.
서양에서의 교육의 개념은 교육의 어원인 파이데이아 (Paideia)을 중심으로 3가지가 있다, 그것은 에듀케이션 (Education)과 페다고지 (Pedagogy) 그리고 빌둥 (Bildung) 등이 있다.

1 첫 번째 에듀케이션 (Education)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을 ‘안에서 밖으로 꺼내어 키워준다’는 의미다. (From)이나 (Out) 의미가 있다. 학습자가 지니고 있는 선천적 소질을 또는 잠재 능력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표출할 수 있도록 신장/발전시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지고 태어난 기질을 촉진자가 동기부여 해 줌으로써 스스로 개발해 나가도록 돕는 것이다.
2 두 번째로 페다고지 (Pedagogy)다. 이 말은 헬라어 파이다고고스 (paidagogos)에서 유래한 말이다. 고대 교육의 어원이 파이데이아 (paideia)라고 했다. 이 뜻은 어린이와 어른이 공존하는 것, 함께 거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을 때, 이 파이데이아와 파이다고고스가 바로 어린이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파이도스 (paidos)라는 어린아이하고 아고고스 (agogos)라는 이끌다 앞에 이끌다는 듀카레 (ducare)하고 에듀카레 (educare)가 비슷하다. 이런 점에서 아웃(out)과 프롬 (from)의 의미가 있다. 원래 페다고지의 의미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귀족의 자제들을 학교나 체육관 또는 여러 가지 기타 공공장소로 데리고 다니며 이끌어 준다는 의미다. 여기서 이끌어 주는 사람은 하인으로 어른이 된다. 우리 조선 시대 하인인 어른이 돈 많은 양반집 어린 자제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가르쳐주고 인도하고 체험하게 하는 것처럼, 오늘날로 표현하면 이 [페다고지]는 어린아이들 앞에서 이끌고 인도한다. 어른인 교사가 학생인 어린이를 지도하고 관리하고 감독한다는 의미다. 이 말은 요즘 식으로 이해하면 권위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끌고 가서 현장감 있게 체험으로 알려주는 것이 된다.
[에듀케이션]과 [페다고지]의 공통점은 어린아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소질을 계발 (啓發) 시켜 준다는 점이다.
3 세 번째로 빌둥 (Bildung)이다. 이 교육 개념은 독일어권에서 주로 사용된다. 교육학에서 ‘빌둥’은 가장 기본이 되는 의미로 한국어로는 도야 (陶冶: Cultivation) 라고 한다. 각 개인이 자신의 개별성을 뚜렷이 드러내도록 하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추구하고 획득하는 과정을 말한다. 예를 들면 도야란, 원석이나 원목이 있다면 갈고 닦아서 빛나게 해서 보석이 되듯이, 원목을 자르고 깎고 다듬어서 귀한 재목으로 만들듯이 사람의 성격을 조율하고 인격을 함양하여 자기가 할 일을 스스로 찾아가서 창출해 내도록 인도하는 것이 ‘빌둥’이다. 원석이 보석이 되게 하는 것, 원목이 재목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빌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빌둥’에서는 과정이 중요하다. 인내와 기다림과 기대 그리고 사랑이다.
여기에서 각 서양의 교육의 개념들을 정리하면 파이데이아 (Paideia)는 인간답게, 에듀케이션 (Education)은 개발, 페다고지 (Pedagogy)는 지도하고 인도하는 양식, 빌둥 (Bildung)은 개성을 발휘해서 자기를 수련하는 양식, 이런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수직적인 아동 교육 중심의 페다고지 (Pedagogy)와 수평적인 성인교육 중심인 엔드레고지 (Andregogy)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지만, 각 개인의 계발을 중요시하는 Education과 수련과 수양을 통한 자기 발전을 지향하는 Bildung은 공간적인 개념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통전적으로 동서양 교육론을 정리하여 비교해보면 동양은 인간의 선천적 어리석음을 촉진자 (교수자)가 길을 인도한다면, 서양의 교육은 인간의 선천적 소질과 잠재능력을 촉진자 (교수자)가 꺼내주는 것이 된다. 교육의 과정에서는 지속해서 학습과 연습을 통해서 그 수준에 다다를 수 있다는 개념은 같다.
결론적으로 다양한 교육의 개념들은 시대적, 문화적, 개인적, 차이들이 상존한다. 교육에 있어서 모든 중심에는 학습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학습자를 촉진하는 촉진자 (교수자)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촉진자 (교수자)의 역량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지만 먼저 촉진자 (교수자)가 인지해야 할 것은 대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성숙도, 수준 · 관심, 사랑… etc)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필자는 44년동안 작금의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제시하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교사나 교수 그리고 목사는 많은데 촉진자는 없다는데 있다. 그래서 앞으로 교육현장에서는 교사나 교수 그리고 목사라는 호칭보다는 촉진자로 바꿔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그래야 촉진자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와 교육당국이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학습 현장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적 질문들…
1 주입식이며 획일적 교육은 있는데 개성 키우는 배움은 왜 없는가?
(남의 옷 ‘교과서’벗고, 내 옷 ‘배움책’ 만들어야 한다)
2 아는 배움은 있는데 할 줄 아는 배움은 왜 없는가?
3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개성이 왜 사라질까?
지식은 많은데 개성이 없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교육의 위기다.
4 우리는 배움의 시대에 주어진 물음에 대한 답 요구는 많은데
‘소통’과 ‘어울림’은 왜 없는가?
5 우리는 선생님과 교수님과 목사님은 많은데 촉진자는 왜 없는가?
6 우리는 존경은 바라면서 존중은 왜 없는가?
7 우리 대한민국은 선진국 G7에 들어갈 정도의 경제력과 국방력을 자랑하는데 노벨 평화상 외에는 왜 나타나지 않는가?
P/S
지금까지는 페다고지 (Pedagogy)서평에 앞에서 전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프롤로그 (prologue)에서 교육의 개념 정리와 지평을 넓혀 생각해 봤다. 본론 서평은 4월 27일 (수)에 謁見하겠다.
필자가 [페다고지]를 처음 접할 때는 유신정권 말기 1978년도 사대 새내기 시절 첫 여름방학 농활 때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한 동아리 모임에 참석했다가 천주교 정의사회구현 사제였던 존경하는 한 신부님으로부터 소개받은 책이었다. 어떤 비밀 결사대로 아니었고 반정부 투쟁 단체도 아니었다. 순수한 미래 교육을 걱정하는 어린 교육자의 꿈으로 바람 같은 간절함과 절박함이 절절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숨어서 읽었던44년 전에는 이 [페다고지]가 당국으로부터 불온서적으로 분리되어 [칼 막스]의 저서보다 더 위험하게 봤으며, 이 책을 소유한 사람들은 최소한 5년에서 10년까지 형을 살아야 했다. 이런 상황은 전두환 군부 정권까지 이어졌던 시절이 있었다.
[페다고지]는 필자에게 교육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게 했고 교육에 대한 담론을 다양하게 생각하고 평가하게 했다. 44년 전에 읽었던 [페다고지]를 볼 때마다 필자를 다시 성찰하게 하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페다고지]의 저자인 파울로 프레이라는 브라질의 군부독재 정권과 맞서며 교육의 정체성을 [페다고지]의 교육 개념을 차용하여 브라질에 맞는 교육정책을 실천해간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교육 철학자였다.
[페다고지]는 1990년도에 들어와서야 번역이 되었고 그 이전에는 海賊版으로 나왔지만 손쉽게 구할 수 없는 위험한 책 중에 하나였다.
특히 촉진자인 교육자들과 목사들에게는 필수 과목이다. 꼭 필독을 추천하고 싶다.
13/04/2022 시드니 독서모임에서

촉진자 (발제자) : 전현구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4월 첫 모임에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코지’ 나눠 – 다음모임은 4월 27일 (수) 오후 5시 [4월 13일 발제 전문 포함]](https://chedulife.com.au/wp-content/uploads/페다고지-저자.jpg)